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신나는 금요일의 시작을 알려드립니다. 금요일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일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특히 레터가 날아오는 날이라서 더 그렇겠죠? 오늘은 구독자님과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으면 해요.
드라마를 보면 잘생기고 돈 많은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예쁘고 매력 있는 여자 주인공에게 반합니다. (불변의 법칙) 남자는 " oo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하며 앞뒤 가리지 않고 막 들이댑니다. 이런 캔디 스토리는 병맛이지만 시선이 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드라마 속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신과 다른 반전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것은 남자의 취향이기도 합니다.
저는 영화를 볼 때 호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합니다. 그래야 잠을 안 자기 때문이죠.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파전에 막걸리를 먹는 편이에요. 전통주를 참 좋아하거든요. 믿거나 말거나 속설이지만 막걸리는 유산균 덩어리라고 믿고 있어요. 그밖에도 탕수육은 찍먹을 선호하고, 머리가 복잡한 날에는 첼로 연주곡을 듣는 편입니다. 이렇듯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각자 이끌리는 것은 천차만별이겠죠.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구독자님은 자신이 취향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나요? 오늘만큼은 내 삶의 온도를 높여주는 개인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그때그때 알아차림으로 마음껏 느껴보는 거예요. 취향은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니까요.
그럼, 서른 번째 편지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번 주 쓰는 마음의 주인공은 개짱이 작가님입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저는 개짱이 작가님 글이 너무 좋습니다. 담백하면서 재미있고, 독특한 개성과 함께 진솔한 생각을 엿볼 수 있거든요. 오늘 소개드릴 글도 그렇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결혼합니다>라는 글이에요. 어떤가요? 제목부터 느낌이 오시죠?
나는 비혼을 만만하게 여기는 비혼주의자였다. 결혼 안하고 살면 비혼이지 비혼이 뭐 별거겠나 싶었다. 그러던 내가 저마다의 이유로 결혼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대열을 멍하니 쳐다보다 어느샌가 그 틈에 끼어서 결혼에 골인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도 혼인 신고도 끝나 있었고 낯선 신혼집에 덜 낯선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러니 진심으로 비혼을 고민 중이라면 정신을 바짝 차리길 바란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나처럼 결혼에 빠지고 만다.
개짱이 작가 <우물쭈물하다가는 결홈합니다> 중에서
이번 주 글쓰기에 대한 진심을 녹여주신 주인공은 스테르담 작가님입니다.
<글쓰기는 주관적 고통이다>라는 글인데요. 제목을 보고 좀 놀랐어요. 누구보다 망설임 없이 척척 글을 쓰는 대작가님께서 글쓰기를 주관적 '고통'이라고 표현하셨던 점이 왠지 낯설었던 것이죠. 그런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역시는 역시였습니다. 글쓰기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심이신 스테르담 작가님의 글은 언제나 깊은 사색과 통찰이 들어있습니다.
나는 그저, 글쓰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고통이라 말하고 싶다. 나에겐 글쓰기가 가장 주관적이자, 객관적인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다.
스테르담 작가 <글쓰기는 주관적 고통이다> 중에서
⌜글쓰기는 주관적 고통이다⌟
때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추억이라 포장할 수 없는 그것들과의 조우는 영 유쾌하지 않다. 어쩌면 이미 지워버렸어야 할 기억들의 파편은 여전히 날카로워 마음의 여기저기를 생채기 내고 만다.
남들이 본다면 그것들은 별거 아닌 것으로 둔갑한다.
그들에게 내 좋지 않은 감정과 아픔은 머리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 또한 누군가의 아픔을 머리로 우선 인지한다. 내 지난 과거의 유사한 경험을 끌어올려 공감하려 노력하지만 그것엔 한계가 있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린다면 그건 다른 이의 아픔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이입된 내 감정이 요동한 탓이다.
나를 울리고, 나를 우울하게 하고.
또 나를 미소 짓게 하고,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건 그러니까 다름 아닌 내 주관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지독히도 객관적이다.
주관이란 각자의 우주가 고개 들기라도 하면, 마치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세상의 망치를 얻어 맞고 만다. 그렇다고 나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그것이 너무하다고 괴성을 지르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랬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이라는 숫자가 올라가니 그러한 불만은 하등 필요 없으며 그래 봤자 남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주관을 지키는 방법은 세상이 나를 인정할 때까지 바락바락 우기는 게 아니라, 세상의 객관화에 동조하며 내 주관성을 고이 간직하는 것이다.
사람에겐 요상한 습성이 있어서 뚜렷한 주관을 내세우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나 상대적으로 인지하는 우리네 정서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저 나 스스로 행복하기보단 누구와 비교하여 만들어낸 행복과 불행이 오늘도 우리 주위에 만연하다.
세상에선 객관적인 척을 해야 한다.
먹고살기 위한 공식이자 의무다.
그러나 나 자신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주관성을 회복하고 유지해야 한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객관적인 척하느라 억압된 모든 주관적 감정들을 꺼내놓아야 한다.
그 과정이 물론 쉽진 않다.
마주하기 힘든 또 다른 나를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고통으로 잊는 게 차라리 낫다.
객관성으로부터 온 고통은 주관적 고통으로 무마해야 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주하면, 당장은 괴로울지 모르나 스스로 치유되는 역설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나의 주관에 몰두할 때, 상상하지 못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지만 이후의 탈진은 왠지 모르게 후련한 이유다.
그렇다면 나를 가장 주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객관화로 희미해져 가는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무리 힘들어도 나에게 빠져드는 고통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아마도 각자의 마음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나는 그저, 글쓰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고통이라 말하고 싶다. 나에겐 글쓰기가 가장 주관적이자, 객관적인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다.
오늘도 쓰기의 고통보다, 쓰지 않는 괴로움을 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에 나는 그저 안도한다.
설령,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를 마주하게 된다 하더라도.
수많은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대형서점에 간다 해도, 모든 책을 다 읽어볼 수는 없어요. 지금 당장 나에게 끌리는 책을 나의 책장에 담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라 책장을 채워가듯, 개인의 취향에 따라 끌리는 것들로 삶을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나의 책장에 어떤 장르의 책을 담아보고 싶나요?
11월 인사이트 나이트에서 오시면,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팀라이트 작가 추천 북큐레이션으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개인의 취향을 잔뜩 느끼는 소중한 하루 보내세요.
11월의 끝자락에서, 글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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