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레터 유닛 글향, 인사드립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죠?
스물여섯 번째 레터는 '청춘'의 노래를 띄우며 시작합니다.
10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었어요. 그날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풋풋한 청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책 테라피를 진행하던 날이었습니다. 청춘들과 보내는 시간답게 모두들 산뜻한 미소를 띠며 시작했는데, 저마다의 아픔을 털어놓으며 마음과 마음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눈물, 콧물을 줄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흉측한 몰골이 되어버렸습니다.
청춘들이 표현했던 아픈 마음들, 그 일부를 담아봅니다. <자격을 갖추기 위해 캄캄한 터널 속을 걷는 마음>, <높은 곳을 향해 찢어질 듯 내달리는 마음>, <바닥에 붙어있는 듯한 지금 나의 위치를 바라보는 마음>,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꾹꾹 누르는 마음>, <양파 같은 자신을 버리고 도자기처럼 견고해져야만 하는 마음>, <알고 있던 나는 점점 사라지고, 낯선 나와 계속 마주 하는 마음>, <눈이 되어 이 세상 모든 곳에 내려앉고 싶은데, 한 곳에만 머물러야 하는 마음> 정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간이었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구독자님도 혹시 아픈 청춘인가요? 이렇듯 아픈 시간들이 청춘을 뜻하는 것이라면, 우린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하는 걸까요? 청춘의 아픔에 대한 열띤 토론 끝에 마침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만 살았다면, 지금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팠기 때문에 더 깊고 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조금 더 아파도 괜찮다고, 아픈 만큼 성숙해질 거라고, 그렇게 고뇌하는 청춘의 아픔을 다독이며, 10월의 마지막 레터를 시작해봅니다.
이번 달 쓰는 마음의 주인공 나날 작가님! 민낯이 좀 더 예쁜 사람 나날 작가님의 <지금, 여기 나를 만나기 위한 도구> 글을 소개합니다.
나날 작가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며 글 속에서 저를 만났습니다. 튀기보다는 묻혀있는 것을 선호하고, 많은 말을 하기보다 듣는 편이 훨씬 편한 사람. 있는 듯 없는, 자세히 살펴봐야 존재를 알아차리는 사람. 저도 그런 사람이었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어요!! 글 속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마음을 함께 느껴보실까요?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사회적 가면을 쓴다. 엄마도 되었다가 딸도 되었다가 며느리도 되었다가 학부모도 되고 회사원도 된다. 그 모든 것이 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껍데기이다. 내가 현실에서도 SNS에서도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신경 쓰고, 눈치 보고, 내 주장을 하지 못했던 것은 모두 '무엇', '무엇'으로 규정되어 있는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범"이라는 말 안에 숨어있기를 바라는 나의 사회적 가면 때문이었다.
나날 작가 <지금, 여기 나를 만나기 위한 도구> 중에서
이번 주 글쓰기에 대한 진심은 우리들의 글만장자 스테르담 작가님의 글에서 느껴보실까요? <글쓰기,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글을 담아봅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글쓰기에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참 흥미롭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입덕은 해도, 탈덕을 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글쓰기 매력에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
스테르담 작가님의 글에서 글쓰기의 시작과 끝을 함께 경험해보실까요?
⌜글쓰기,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 글쓰기의 시작
누군가의 '시작'에 힘이 된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선한 영향력을 나누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 강의가, 많은 분들의 시작을 돕고 있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일이다. '시작'은 중단되었던 걸 다시 잇거나, 하지 않던 걸 새로이 하는 걸 뜻한다. '글쓰기'는 멈추기 쉽고,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데 상징적인 행위다. 멈춘 걸 다시 잇게 하고, 그 어려운 시작을 내가 돕고 있다니. 감개무량이란 말이 지금의 내 마음을 표현한다.
글쓰기 수강생 분 중 한 분을 코칭하다 마음이 울컥했다.
초등학교 때 한 선생님의 횡포로 글쓰기에 트라우마가 생겼었는데, 내 VOD 강의를 보고 다시 펜을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글을 봐달라며 글쓰기 미션지를 보내준 것이다.
얼마나 아프고 두려웠을까.
트라우마는 남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본인에겐 크나큰 상처다. 트라우마를 이겨낸다는 건 박수를 받아 마땅함이고, 여지없이 나의 응원을 보내야 하는 가슴 벅찬 '시작'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그렇게 위대하다.
- '나'를 돌아봄의 시작
글쓰기의 '시작'엔 공통점이 있다.
책을 내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결국 '글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나면 보이는 것.
바로 '나'다.
많은 분들이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를 '나를 돌아보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뭔가 잡히지 않는 허무함과도 같은 내 삶을 그나마 움켜쥘 수 있는 건 글쓰기라는 생각에서였다. 재밌는 건 나이 마흔을 전후로 이러한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외부로 향해있던 시선이, 비로소 내부로 향하는 그즈음이다. 물론, 내 강의를 듣는 수강생 중엔 20대 초반도 있음을 볼 때 삶의 시선은 나이를 불문함을 느낀다.
중요한 건, 나를 향한 시선이 결국 글쓰기를 시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글쓰기의 시작은 나를 돌아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 글쓰기,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무언가에 빠져들고 중독되는 걸 '입덕'이라 한다.
반대로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걸 '탈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독의 무서움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란 표현을 한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아니, 끝은 없어야 한다. 글쓰기는 결국 평생을 나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는 '언제 시작하느냐'의 문제다.
누구든, 언제든 글쓰기를 하게 되어 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은 자신의 존재와 흔적을 남기려 한다. 타고난 본성이다. 글쓰기와 무관한 사람도 결국 생의 마지막엔 글로 그들의 뜻을 전한다.
나를 위해 사는데, 나를 위해 바쁘다 보니 정작 '나'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그 순간은, 놓친 '나'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그제야 나와 '나'가 합치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나를 돌아보는 그 순간.
글쓰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
시작이라는 그 순간.
그러니 그 시작엔 끝이 없어야 한다.
이제야 나를 찾고, 나를 만났는데. 다시금 나를 놓칠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글쓰기를 누구라도, 어느 한 분이라도 시작했으면 좋겠다.
입덕은 없어도, 탈덕은 없는 그 이유를 몸소 체험하길 바라며.
모두의 시작을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바로 내일! 10월 30일 토요일 저녁 7시, 10월 인사이트 나이트가 진행됩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저마다의 '글 쓰는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볼 예정이랍니다. 글쓰기에 진심인 구독자님도 참석해주신다면 그 자리가 더욱 반짝반짝 빛날 것 같아요!
우리 함께 쓰는 마음, 쓰는 인생을 공유해보면 어떨까요?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청춘의 아픔을 노래한, 글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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