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늦었지만, 새해 복 듬뿍 받으시길 바랄게요. 이번 연휴에 저는 명절특선 영화를 즐겨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라라랜드'라는 영화에 다시금 빠져들었지요. 사실, 처음 보았을 때는 폭발적이었던 명성에 비해, 제가 체감했던 영화의 온도는 뜨뜻미지근했습니다. 뜨거웠던 인기를 실감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접한 지금도, 영화 속에 녹아든 전체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작은 포인트! 부분적인 뜨끈함은 전달받았습니다. 이별! 만남보다 의미 있는 헤어짐에 대한 영화의 해석이 왠지 모르게 와닿았거든요.
영화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서로의 품에 뛰어드는 대신, 각자의 꿈을 좇으며 서서히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꿈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인간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어요. "이 영화는 꿈을 향한 러브레터입니다. 허황된 꿈을 꾼다며 세상이 조롱하는 사람들의 꿈 말이죠." 라라랜드의 감독 데미안 셔젤의 말입니다.
스스로 이별을 마주하겠다는 이들을 떠올리며, 사고처럼 무기력하게 찾아온 이별이 아니라, 기꺼이 침투하겠다는 의지! 자의적으로 이별을 받아들인 두 사람을 보며, 헤어짐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별에 대한 고찰이 담긴 스테르담 작가님의 글 속으로 구독자님을 안내합니다.
✍🏻 writing한 글쓰기
이별이라는 클리셰
진부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by 스테르담

이별이란 말은 사랑만큼이나 진부하다.
남용의 결과, 빤히 의도된 힘. 새로움 없는 진부한 상투(常套), 표현, 개념.
그러하므로 '이별'은 '클리셰'라 명명해도 과함이 없다.
그러나 진부하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진부하다는 건 반복되었다는 뜻이고, 반복되었다는 건 우리네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다는 뜻이다.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것들은 떼어내기 쉽지 않다.
이별이라는 말이 진부하지만.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이유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란 어느 노래 가사는 '이별'의 정수를 보여준다. 나는 무언가를 떠나보낼 수 없고, 내가 떠나올 수 없다. 노래는 나를 가만히 두고, 이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별은 '자의'보단 '타의'라 말하고 있다. 그 아픈 서사를, 더 아픈 멜로디에 담아서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렇다.
이별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그렇다.
이별은 그렇게 우리네 의사와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이별은 왜 이토록 타의적일까?
죽음이라는 숙명을 지닌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일까?
죽음이라는 큰 이별 앞에.
그것을 맞이하기 전의 이별은 자잘하다.
한없이 사랑한 사람과의 이별도, 죽음이라는 이별에 빗댈 수 없다.
'죽도록 아픈'이란 표현이 그것을 대변한다. 아직 죽지 않은 자에게 모든 이별은, 그저 자잘한 하나의 비유와 연습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는 늘 이별이라는 클리셰에 빠져들고 있다.
진부하지만 그러할 수밖에 없다. 클리셰의 매력과 무서움은 여기에 있다. 알고도 빠져드는 건 우리네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자잘한 이별에 상처받지 않기로 한다.
클리셰에 빠져든 것을 억울해하지 않기로 한다.
이별이라는 클리셰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진부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별로 인해 만남이 보이고, 만남으로 인해 사랑이 보인다.
언젠가 이별할 모든 것들이
오늘 내 눈앞에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 글을 부르는 질문
살면서 단 한 번의 이별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연은 달라도 이별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그때 당시엔 지독하게 괴로웠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이별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완성된 것이 아닐까요? 자세히 살펴보면, 이별 후에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남겨진 것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스테르담 작가님의 글을 통해, 언젠가 사라질 모든 것들, 이별 그 반짝임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 언젠가 이별했던 경험, 그 이별로 인해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요? 구독자님의 반짝였던 이별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멀리 있는 친구만큼 세상을 넓어 보이게 하는 것은 없다. 그들은 위도와 경도가 된다.
- Henry David Thoreau
우리는 결코 이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이별 후의 삶을 고민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별하는 일은 헤어짐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사라질 순간을 위해, 글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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