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글 쓰는 마음, 열 번째 마음

2021.06.18 | 조회 1.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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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글 쓰는 마음, 열 번째 편지를 시작합니다.

Sidney Bechet - Si Tu Vois Ma Mere

5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토요일 오전이었고, 하늘에서는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고 있었죠. 당시 저는 한 책방에서 조그마한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작가와 독자가 대화하는 시간이었는데요. 주말이고 이른 시간에, 날씨까지 별로여서 그랬는지 참여자가 적었습니다. 작가와 저를 포함해서 딱 일곱 명이었어요.

책방 한구석에 모여 앉아 있으니, 자연스럽게 서로 안부를 묻게 되더군요. 사춘기 딸을 둔 어머니의 하소연을 시작으로 잔뜩 우울한 표정의 취준생과 코로나 19 때문에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다녀왔다는 분 등 여러 사연이 오갔습니다. 모두 흥미로웠지만, 제 시선에 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일 안쪽에 앉아 시종일관 무료한 표정과 흐릿한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여학생. 이내 학생의 차례가 되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은 무슨 위로의 말을 전할지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곧 침묵을 깬 작가는 다감하게 말했습니다. "요즘 마음속에 병 하나쯤은 다 키우잖아요. 저도 병 있어요. 그러니까 병을 너무 병으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해요." 덧붙여 김중미 작가의 책 <존재, 감> 내용 일부를 전했습니다.

"'내가 아는 단어가 이렇게 적었나?' 싶을 정도로 위로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그냥 옆에 있으면 돼요. 아무 말도 없이. 이틀이 됐든 사흘이 됐든 그렇게 옆에 있다보면 나눠지더라고요."

<존재, 감>, 창비, 2018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살아오고 위로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 결국 마음이 아프고, 허한 사람은 '그럴듯한 정답을 말하는 이'가 아닌, '함께 아파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내 편'을 찾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나아졌습니다.

행사 종료 후, 저는 용기 내어 명함을 건넸습니다. "가끔 글을 쓰는데, 위로가 필요하거나 힘들면 읽어봐요. 매주 금요일마다 뉴스레터도 보내니까,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해요. 돈은 안 받을게요." 사뭇 진지한 분위기를 좀 깨려고 한 말이었는데, 한참을 웃더군요.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새로운 구독자를 확보했습니다. :D

이 글을 읽고 계신 구독자님 마음은 요즘 어떠세요? 위로가 필요하신가요? 

앞으로 이곳에서 전하는 편지와 글이 '함께 아파하고 위로가 되어주는 내 편'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쓰는 마음

 구독자님은 슬픔이 찾아올 때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스티브 작가님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일부를 인용하며,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소개해주셨는데요. 자세히 살펴볼까요?

슬프신가요. 참지 마시고 흘려보내세요.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해소가 됩니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니, 혼자서만 삭히지 마세요.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내 속마음을 보이지는 말고요. 마음을 알아줄 친구, 또는 그녀에게 잠깐 시간 내 달라하고 전해보세요. 진심을 아는 사이니 들어줄 겁니다. 나중에는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잖아요.

<슬프면 울고 말하고 글씁니다> 에서

글쓰기를 글쓰기

이번 주 소개할 글은 글향 작가님 이야기입니다. 비, 우산, 옛 추억, 그리고 글쓰기로 이어지는 글을 읽으며 마음이 계속 간질거렸는데요. 함께 읽어볼까요?

주목받지 않아도 괜찮은 글을 쓸 것

퇴근과 동시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차가 세워진 곳까지는 스무 걸음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데 온몸을 홀딱 적실 기세다. 그때 남자 직원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접은 3단 우산을 톡 풀고 쫙 펼치며 말한다. “저 우산 갖고 왔습니다. 같이 쓰시죠. 차 있는 곳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직원의 수고로움에 감사 인사를 건네고 차에 앉으며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늘과 땅의 전쟁에 빗줄기가 총알처럼 발사되던 날. 그날도 많은 비가 내렸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학원을 마치고 간신히 마을버스에 올랐다. 집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하염없이 발사되는 빗줄기 총알을 온몸으로 맞을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갑작스럽게 내리던 비였기에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은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삑! 내리는 신호 버튼을 누르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5. 4. 3. 2. 1 땡!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발사 준비를 마친 나는 튀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잡는다. 엥? 누구야? 같은 수업을 듣는 남학생이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접은 3단 우산을 펼치며 말한다. “나 우산 갖고 왔어. 같이 쓰자.”라며 우산을 쫙 펼친다. 고맙긴 하지만 같이 쓰고 걸을 걸 생각하니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에이 몰라, 일단 비는 피하고 보자’라는 심정으로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아이였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 일단 급해서 우산 속으로 들어왔지만 둘이 나란히 우산을 쓰며 걸으려니 눈앞이 더 캄캄했다. ‘그냥 비 맞고 뛰어버릴걸. 5부터 말고, 3부터 셀걸.’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우산 속 침묵을 깨려 했다.

“고맙다. 너 아니었음 나 비 맞은 생쥐 될 뻔했네.”

“집까지 데려다줄게.”

“아니야. 저기 슈퍼 앞까지만...(제발 플리즈~)”

“그럼 씌워주는 의미가 없잖아.”

생각보다 단호박이었던 녀석은 그날 이후 조금 특별해졌다.

내 마음속에 내리는 비에도 종종 우산을 씌워주는 그런 아이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가득 차올랐을 때는 글로 담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소하고 맹숭맹숭한 글을 담아내도 괜찮은 걸까? 내 마음만 촉촉이 적셔주는 글. 우리들만의 리그 ‘브런치’에 이런 글을 올리는 건 별로 일 텐데...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몰려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를 보았단 말인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간, 영화 ‘헝거 게임’이 생각났다. 헝거게임이란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12개 구역에서 각각 조공인 2명을 뽑아서 최후 승자가 나올 때까지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게임이다. 소수의 승자에게 부와 명예를 주는 것으로 다수의 죽음이 정당화되는 게임. 나도 어느새 그 게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이러려고 글을 쓴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달달한 메인을 꿈꾸며 모두에게 주목받는 화려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었나 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단맛을 얼마나 보았다고? 초심을 들먹일 짬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고). 눈치 보지 말아야겠다.

남들에게 주목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글을 써야겠다.

그 옛날 빗줄기 총알탄을 맞을 때

살며서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던 그 아이처럼

스스로의 마음에, 또는 나와 비슷한 마음에

슬쩍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는

그런 글을 써야겠다.


벌써 올해의 절반이 지났네요. 힘센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분주한 나날의 연속이지만, 가장 나다운 행복을 모두 만들어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6월 18일 사랑을 담아, 춘프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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