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금요일 아침,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레터의 문을 열어보는 글향입니다. ^^
언젠가 해운대 달맞이 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걸음이 이렇게 빨랐나? 조금 더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겠다. 너무 일찍 도착하지 말아야지.' 빛에 반짝이는 바다, 크고 작은 나무 두 그루, 잔잔한 바위들... 바람에 찰싹이는 물소리와 풍경의 조화를 보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보았던 풍경을 구독자님께도 보여드렸어요.
음식을 먹다가, 그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싶은 순간,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로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조차 마음에 들게 해주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한 날, 자연 속을 거닐며 풍경과 소리의 조화를 즐기던 순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느리게, 충분히 지금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 구독자님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나요?
<팀라이트 이달의 작가>는 그림책 테라피스트, 글향입니다. 신년운세를 보고 온 날, 점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모호함... 그 찜찜한 마음의 근원을 찾아가며 비로소 얻게 된 깨달음을 기록한 글입니다. 더불어 구독자님의 신년운세도 봐 드리는 용한 글이지요. (궁금하다면 클릭! ^_^)
사주팔자 어디까지 믿으세요?
점을 보며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지만, 돌아온 것은 확신이 아닌 여전한 모호함이었다. 용하다는 점쟁이도 나의 미래를 바꿔놓을 순 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이끄는 힘은 내 안에서 펼쳐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사주팔자 어디까지 믿으세요?> 본문 중에서
이번 주<writing 한 글쓰기>의 주인공은 나비 날다 나날 작가님입니다. 15분 남짓한 짧은 필사의 시간. 필사와 함께 시작한 글쓰기로 꼭꼭 눌러쓴 나날 작가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 속에 담긴 '절반의 생'이라는 시를 읽으며,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 그 용기를 힘껏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구독자님! 우리 함께 잠시 멈추고, 이 글 속에 머무르며 온전한 삶을 느껴보실까요?
온전한 삶을 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시는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에 실린 칼릴 지브란의 '절반의 생'이라는 시의 일부다. 이 시에 류시화 시인은 이런 시선을 담았다. '어중간하게 살지 말고, 미온적으로 사랑하지 말며, 방관자 적 태도로 행동하지 말라.'
요즘 내 마음을 계속 두드리는 단어는 '용기'이다. 용기는 무언가를 겁내지 않는 씩씩한 마음인데 나는 꽤 겁이 많다. 누군가와 얼굴을 붉히기보다는 침묵하기를 택하고, 부딪치기 보다는 그 자리를 벗어나버린다. 그럼에도 올 한 해는 '용기'를 내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겁내지 않고 무엇을 할 용기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용기였다. 내가 나인채로 존재하지 못하게 내버려 두는 상황에서 벗어날 용기, 나와 생각이 다른 이의 말로부터 멀어질 용기, 어정쩡한 상태를 끊어낼 용기. 어중간하고, 미온적이고, 방관자 같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 시는 정확하게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일 년 넘게 필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임은 마음이 괴로웠던 날 우연히 책을 읽다가 시작되었다.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라는 에세이였다. 지금 딱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문장에서 한참을 멈춰 눈물을 쏟다가 책 한 귀퉁이에 나의 이야기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마음이 박완서 작가님이 써 놓은 한 줄의 위로에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그렇게 잔뜩 쏟아 내어놓고 나니 거짓말처럼 그 감정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짐을 느꼈다. 더 이상 괴롭지 않았고, 나는 이 경험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다른 필사모임과는 달리 고전이나 명문장이 많은 책이 아닌,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들을 주로 읽었다. 우리와 별 다르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읽다보니 시시때때로 마음이 출렁였다. 작가의 문장은 그저 내 마음을 꺼내게 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우리는 우리 안에 꾹꾹 눌러놓았던 이야기들을 봇물 터지듯 쏟아내기 시작했다. 15분 남짓한 짧은 필사의 시간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글쓰기 시간이 되었다.
올해 첫 필사 책이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 였다. 매일 한 편의 시를 읽고 필사를 하다가 ‘절반의 생’을 만났던 거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용기'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렸다. 용기는 '온전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라고. 온전하게 마음을 내어놓고, 온전하게 지지하고,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어가겠다는 다짐이라고 말이다. 온전하지 못할 마음이면서 온전한 척하지 않기. 상대와 내가 서로의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그런 관계는 끝맺음을 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하던 내가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필사와 함께 시작한 글쓰기의 덕분이다. 그 글은 단순히 끼적이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 노트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마음이었다. 나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응원이었고, 내가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었다. 책 속의 작가들에게 투덜거리다가 때로는 꺼이꺼이 울며 썼던 글들은 하나같이 내 자양분이 되었다. 일 년 동안 적어온 내 마음속 찌꺼기 같은 이야기들은 조금씩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필사를 하고 글을 쓰는 이 짧은 시간을 손으로 하는 명상이라고 부른다.
시인의 마지막 문단이 내 등을 힘껏 밀어준다. ‘이제 절반의 마음으로 사는 삶은 그만해. 너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야. 너는 이제 너만의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해.’ 시인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이제 온전한 삶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믿는다. 온전한 삶을 산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자유롭게, 온 마음이 담긴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레터를 쓰다 보면, 긴 하루의 시작을 여는 편지이기에 왠지 더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이번 주는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까? 어떤 마음을 담아볼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죠. 저희들이 작성하는 레터가 구독자님께 닿았을 때, 매번 즐거울 수 없고, 매번 감동적일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구독자님께서 글쓰는 마음을 읽어주시는 그 순간만큼은 잠시, 같은 마음에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오늘도, 그 순간을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편지를 써봅니다.
순간을 멈추게 만드는 힘으로, 글향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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