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나는 평상시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병원 3교대를 근무하고 있었던 나는 응급실에서 나이트 근무를 하며 정신없는 상황에서 동료에게 윤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매우 당황스러웠고 진짜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계엄이라니 전쟁이라도 터진건가?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픈 환자들은 누워있고 119에서는 환자 수용 문의를 하는 상황에서 여기 가만히 있어도 맞는 걸까? 지금 우리는 안전할까? 라는 두려움을 품고 뉴스와 라이브방송을 켠 채 일을 하며 실시간으로 그날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반복되는 영상들은 너무 무섭고 비현실적인 믿고 싶지않은 잔혹한 현실이였다. 학생 때 수업에서만 들었던 계엄이라는 상황이 갑자기 내 앞에 던져졌고 국회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군인들은 국회를 둘러싸고 포위하고 있는 영상을 보면서, 전차를 몸으로 막고 군인의 총 앞에서 총구를 잡으며 ‘부끄럽지 않냐’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저곳에 있는 사람들은 무섭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영상으로만 봐도 두렵고 떨리는데 저 사람들은 저 현장을 향해 달려가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몇 시간 후 계엄이 해제되었지만 나를 한번 삼킨 공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만약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군인들의 총구에서 한 발의 총성이라도 울렸다면 평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던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고 심지어 한국은 휴전 중이지만 이런 국제정세와 정치에 무지했던 나는 무지했기에 꽃밭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며 평안하게 살고있었고 나에게 평화는 그저 아무것도 안해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무언의 약속처럼 유지가 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내 현실 앞에 갑자기 던져진 그날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이 평화는 누군가의 몇마디 말로 인해 이렇게 쉽게 부숴지고 깨질수있는 얇은 빙판 같은 존재였다는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나서야 깨닳을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안되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내가 서 있는 이 빙판이 깨지며 저 아득하고 차가운 호수안으로 가라앉을수밖에 없을것이다.
12월7일 특검법과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동시에 진행이 되었고 그 결과는 정말 참담했다. 밖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투표권도 행사않고 웃으며 자리를 떠나던 그들에게 정말 말로 설명할수없는 분노와 화가 끓어올랐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국민들을 향해 웃으며 떠날 수 있었을까? 적어도 표정 관리라도 하던가! 바로 당신들의 앞에서 소리치는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가 들리지않는걸까? 오늘만 지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것일까? 몇 달 후 선거철에 죄송합니다, 잘해보겠습니다 하고 무릎꿇고 절하면 사람들이 다시 뽑아줄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걸까?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하고 도망갈 수 있는 걸까... 하루 종일 그 얄미운 표정들이 떠올라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지러운 머리를 식혀주었던 건 우리가 우리에게 남겨주는 조언과 위로들이였다. 그 중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이야기는 탄핵안 부결 당시 한 시민에게 “오늘 결국 패배했는데 심정이 어떠시나요?” 라는 질문에 여성분이 ‘패배요? 도망은 국민의힘이 갔는데요 왜 저희가 패배인가요? 저는 등 보인적이 없는데요’ 라는 대답을 남겼다는 내용이였고 분노로 어지러웠던 머리가 냉정함을 되찾았고 오늘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계속 이 현장에서, 기사와 SNS를 통해 서로 연대하고 함께할 것임을 다짐하게 되었다.
처음 응원봉을 들고 시위를 나갈때 ‘혼자가면 심심하겠다.’ 라는 가벼운 생각을 하고 거리를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함께였고 우리가 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열정은 뜨거웠고 매서운 칼바람도 연대의 손길덕에 우리를 해치지 못했다.
한겨울밤의 어두움도 빨개진 손으로 피켓을 흔들고 응원봉을 흔들던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동자 앞에 힘을 잃어갔다. 조심스런 손길로 옆사람에게 건네주는 젤리나 초콜릿같은 간식들, 그리고 서로의 응원봉을 보며 ‘엇 나도 누구누구 좋아하는데’ 하며 함께 응원봉 사진을 찍는 수줍은 학생들이 누구보다 목청 터져라 소리치고, 시민 발언에 참여해 똑소리나는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정치에는 무관심했던 내 모습이 대조되어 부끄럽고 민망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놀러갔니? 콘서트장이니? 진중하지 못해’ 하는 사람들, 2030 여성들이 많이 참석했다는 기사에 갈라치는 댓글들, 그리고 행진 중 우리를 바라보며 “야 이 바보들아 너네 속고있는거야 멍청이들아” 라고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진중하고 진지한 집회는 어떤 모습이였을까? 그리고 모든 집회와 시위는 진중하고 진지해야만 진정성이 있을까? 우리의 겉모습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라 가벼워 보인다고 해도 여기에 모인 우리의 마음이 진정성이 없다고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누가 그들에게 우리를 평가할 자격을 주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 시위는 진정성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무엇에 속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더라도 저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굳이 저 사람들의 마음에 들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안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우리의 방식대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표현하면서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눈을 뜨고 지켜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뉴스와 미디어를 통해 저급한 말장난과 거짓으로 잘못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때면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조금씩 지치기도 하는 현실이다. 주말마다 광장에 나가서 추운날 떨며 목소리를 내고 행진을 하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딪힐 생각을 하면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광장에 나가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시민 발언을 들으며, 내가 생각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의 공연을 보고, 사람들과 한마음이 되어 이곳에 있기만 해도, 갑갑하고 어지러웠던 마음은 조금 안정되고, 지친 마음은 회복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대통령은 체포되었지만, 앞으로도 많은 고난과 역경들이 남아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힘들고 지쳐도 혼자가 아니기에, 우리는 함께 하는 것이기에 지칠 때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손을 내밀어 줄 것이기에 나는 지치지 않고 광장에 나갈 것이다. 광장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응원과 연대로 함께하고 지지할 것이다.
/김유미
크게 특별한 고민 없이 흘러가면 흘러가듯 살고있던 응급실 간호사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피스모모의 동북아시아청년평화외교커머너(NYPC)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평화와 인권에 대한 관심에 첫 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모르는게 대부분이에요. 천천히 꾸준하게 배워가는게 목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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