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밤 10시 30분이라는 시간이 큰 점으로 멈출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몇 개월 째 회자되고 있는 ‘그 날 밤’ 저는 일찍이 잠에 들었다가 잠시 깼더랬습니다. 마침 새벽 잠에서 깬 짝꿍이 “비상 계엄을 선포했대! 근데, 끝났대!”라고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아침까지 깜빡 모를 뻔 했죠. 덕분에 추운 겨울 밤과 새해의 아침을 거리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더슬래시 필진으로 참여하신 김유미, 이경주, 성다인님의 글들도 모두 12월 3일로 시작합니다. 그만큼 그 날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뼈아프게 인지된 시간이었습니다. 장회익씨가 쓰고 우리사상연구소가 엮은 <우리말 철학사전(2002)>에서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짚어냅니다. “인간이 시간의식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곧 인간이 주체적 삶의 영위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책 p.145-146)” 저는 이 문장이 ‘12월 3일 밤 10시 30분’을 ‘의식’하게 된 한국 시민들이 곧 헌법의 주체성을 찾게 되었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일상의 평온함으로 돌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를 고민하며, 주체적으로 거리를 채운 시민들의 발걸음이 그랬습니다.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며, 119의 환자 수용 문의로 분주했던 중에 비상계엄 소식을 들은 김유미님은, “내가 살고 있는 이 평화는 누군가의 몇마디 말로 인해 이렇게 쉽게 부숴지고 깨질수있는 얇은 빙판 같은 존재였다는걸”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내가 서 있는 이 빙판이 깨지며 저 아득하고 차가운 호수 안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습니다. 그래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고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소년’과 같은 눈 높이에서 5.18을 목격했던 이경주님은 지금의 거리를 80년대의 거리와 빗대어 그립니다. 국가폭력 앞에 정당방위를 위해서라도 물리력을 사용했던 과거의 집회와는 달리, 가지각색의 응원봉과 ‘전국 집에 누워 있기’와 같은 독특한 깃발이 펄럭이는 평화적인 대항이 사회적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저변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면서도 서울서부지방법원 습격 등 극우 백래쉬에 주목하며, “극우의 등장과 보수의 급격한 퇴조”로 이어지는 보수의 위기임을 경고합니다.
독일의 정치를 연구하고 있는 성다인님은 계엄 이후에 드러난 극우의 폭력적인 얼굴 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SNS로 결집된 젊은 세대의 극우화를 “극우 세력의 대중화”로 이름 붙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현상이 비단 한국 만의 상황이 아니며,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집권은 물론이고,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독일 포퓰리스트 극우 정당의 급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만큼, 그 어느 때 보다 (이분법을 넘어 선) 모두의 힘이 필요한 때”라고 제안합니다.
평화는 시민들의 권리입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평화를 적극적으로 누릴 권리를 다시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법의 주인인 시민들이 선출한 의사결정권자들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025년 3월의 더슬래시, ‘평화로울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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