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냄새, 소리로 기억하는 폭력

그들에게 국가는 없다

2026.03.17 | 조회 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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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20대 초반, 열심히 읽었던 책들 중 노암 촘스키의 책이 있었다. 앱스틴 파일이 공개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지만, 노암 촘스키는 그 책을 통해 말했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고. 권력자들에게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거나 동원의 자원이거나, 때로는 제거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어서, 국민이라는 단어은 있되 국민의 실체는 없다는 분석이다. 그 책이 출간된 것이 1999년이고 올해는 2026년이니,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2026년 3월의 “그들”은 이제 국민은 물론이고, 국가 또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존재를 설계하는 ‘그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팔란티어(Palantir)의 시스템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팔란티어는 페이팔(PayPal) 공동창업자 피터 틸이 알렉스 카프와 함께 창업한 회사로, CIA의 초기 투자를 받았으며, 실리콘밸리의 언어로 세계를 설계하지만, 미국인을 위해 일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군과 계약하고, 우크라이나 전장에 알고리즘을 팔며, 가자지구의 표적 목록을 데이터로 정리하면서 그것을 '온톨로지(Ontology)'라고 부른다. 

온톨로지(Ontology)는 철학에서의 ‘존재론’을 의미한다. 이 존재론은 컴퓨터 공학과 만나며 컴퓨터로 작업하는 공간에서 존재를 규정하는 것으로 변형되었고, 컴퓨터에서 다루어지는 데이터들과 관련된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팔란티어가 그리는 온톨로지, 그 존재의 구조와 세계의 설계도 안에서 어떤 생명은 위협으로 분류되고, 표적이되며, 그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10%의 오차범위는 허용된다. 3만7천명의 표적을 죽이기 위해 3,700명의 추가적인 죽음을 불가피한 것으로 상정해두는 셈이다. 

이란 침공과정에서 사용된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 이하 메이븐)에는 앤트로픽(Anthropic)의 AI 모델 클로드(Claude)가 통합되어 있다. 메이븐은 작전 첫 24시간 동안 약 1,000개의 표적을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정리했다고 알려졌다. 이는 이전의 어떤 분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속도이다. 메이븐은 위성, 감시 플랫폼 등 다양한 출처에서 나오는 방대한 기밀 정보를 분석하고, 지휘관이 실시간으로 표적을 식별·우선순위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인데, 메이븐과 클로드의 결합이 군사 계획 수립 시간을 수 주에서 실시간으로 단축시켰다고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첫날인 2월 28일, 남부 이란 미나브 소재 여자 초등학교 샤자라 타이예베가 폭격을 당했다. 토요일 아침 수업 중이었던 학교에서 7~12세 소녀들 최소 165명이 사망했고, 96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은 AI 기반 고속 표적 선정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익히 알려졌듯, 엔트로픽 은 대규모 감시와 인간 감독 없는 완전 자율 무기 사용에 반대하며 미국방부와 법적 공방에 돌입했는데, 팔란티어는 여전히 메이븐에 클로드가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120명 이상의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인공지능이 메이븐 시스템을 통해 샤자라 타이예베 학교를 표적으로 지정했는지, 그렇다면 인간이 그 정확성을 검증했는지” 응답하라고 요구했다. 답변기한은 3월 20일이다. 

 

피아식별의 무한루프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일, 누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고 누가 없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수백 년간 전쟁의 문법이었다. 적과 아군, 우리와 그들, 피아식별의 문법은 근대 국민국가와 함께 완성되고 강화되었다. 국경이 그어지고, 시민권이 발명되고, 여권이 만들어지면서 어떤 사람은 국민이 되었지만 어떤 사람은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어떤 땅은 영토가 되었지만, 어떤 땅은 식민지가 되었다.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이분법은 결국 모두를 배제로 이끌어간다. 비국민을 배제하는 논리는 언제나 그 다음 비국민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이주민, 난민, 특정한 소수자 집단들,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계속해서 비국민으로 지목되어 왔다. 외부의 적이 소진되면 내부의 적이 발명되고, 순수한 국민을 상상하는 순간 불순한 국민이 생겨나는 무한루프, 국민과 비국민의 이분법과 그에 기반한 적대의 논리는 멈추는 법을 모른다. 피아식별 기계의 전원이 꺼지는 순간 그것을 작동시켜온 권력도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계속되어야 하고, 적은 계속 발명되어야 하며, 공포는 갱신되어야 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평화가 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조금 더 납득이 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구조를 바꾸기 어려운 이유는 그 구조의 수익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2026년 지금, 이 세계는 모든 땅이 “그들”의 영토이자 식민지가 될 상황에 처해 있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치고, 네타냐후는 '시온주의 이스라엘,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을 외치지만, 그 구호 뒤에서 팔란티어는 국경 없이 작동하고 전쟁산업은 국경 없이 수익을 낸다. 

총을 든 병사 대신 노트북 앞의 엔지니어가, 명령을 내리는 장군 대신 계약을 체결하는 CEO가 전쟁을 운영하며, 국가의 이름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수익을 얻는 이들은 국가의 이름 뒤에서 국가 없이 번성하고 있다.

국민과 비국민, 아군과 적군이라는 피아식별의 알고리즘에 갇혀 결국 스스로가 다음 비국민의 데이터셋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거나 깨닫지 못한 채 비국민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진다. ‘우리’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우리’를 소진시키는 안전보장의 역설.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국가가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침묵시키며, 안보라는 이름으로 안전이 사라지는 역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피를 먹고 자란다

인공지능은 피를 먹고 자란다. 생명에 대한 사유가 마비되고, 존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죽음을 그저 하나의 데이터로 처리하도록 설계된 존재의 구조도. 인간은 기계에게 전쟁의 역사, 배제와 식별의 역사, 누가 위협인지를 판별하는 법을, 누구의 죽음이 허용되는지를 계산하는 법을 학습시켰고,  그 결과들은 인간에게 매우 빠른 속도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브루노 라투르는 근대의 기획이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보았다. 하나는 글로벌, 즉 국경을 초월하는 시장과 자본과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로컬, 즉 국민국가와 정체성과 전통인데, 그 둘이 동시에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방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모두의 지구로 확장하려던 글로벌은 초국적기업과 같은 소수의 특권을 보호하는 언어가 되었고, 로컬로의 귀환은 자국우선주의의 틀 속에서 배제와 장벽의 언어로 변질되었으며, 그 둘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들이 포퓰리즘에, 음모론에, 민족주의에 매료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일론 머스크과 샘 알트먼은 이 방향 상실을 양분삼아 자라왔다. 그들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다만 적을 가리킨다. 저 사람들 때문이라고, 저 나라 때문이라고, 저 이민자들, 저 무슬림들, 저 좌파들, 저 엘리트들이라고 말한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달려가는 동안 인류는 더 깊은 미로로 빠지고 있다.

 

이 지구 위에 타자는 없다

2026년 3월, 다큐멘터리 “다른 땅은 없다(No Other Land)”가 한국에서 개봉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사람들의 일상이자 투쟁을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는 바젤 아드라와 유발 아브라함, 함단 발랄, 라헬 쇼르가 함께 만들었고, 베를린영화제와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각각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92분의 러닝타임 내내 탄식과 분노, 애도와 경외로 내 존재가 요동쳤다. 이스라엘군은 집을 부수고, 닭장을 부수고, 학교를 부순다. 무너진 집을 보며 한 여인은 말한다. “집을 다시 지어야겠네.” 

그 땅을 떠나지 않는 건, 그 땅이 이스라엘의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이 불법화한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가 불법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무너진 집을 다시 지어올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은 이 땅이 아닌 땅으로 가야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온 존재로 증언하는 일이다. 

영화의 한국어 공식제목은 “다른 땅은 없다(No Other Land)”로 번역되었지만, 이 하나의 지구 위에 모두가 얽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영화 제목을 “이 지구 위에 타자는 없다”로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지구 외에는 달리 갈 곳이 없지 않은가. 

팔레스타인과 이란을 향한 살상의 알고리즘이 자신을 향해 돌아섰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될까. 팔레스타인의 사람들, 이란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 현실이 곧 나의 문제임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지금 인류에게 남은 가장 시급한 일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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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2012년 9월, 평화와 교육,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피스모모(PEACEMOMO)를 동료들과 함께 창립했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하는 사람,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다정한 고양이들과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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