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신고는 113. 대중교통을 타다 보면 불현듯 듣게 되는 광고가 있습니다.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 스파이, 간첩을 일상적으로 경계하고 신고하라는 말입니다. ‘보일 때는 이미 늦었다’라는 문구와 함께 청와대 위로 미사일이 떨어지는 사진이 광고판에 붙어있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북파 간첩’에 대한 경계가 한층 높았던 시기의 유산인데요. ‘우리’와 말투나 생김새, 행동이 비슷하지 않은 존재들을 ‘그들’로 규정하고, 경계의 대상, 신고의 대상으로 삼는, 그래서 ‘적’으로 정의 내리는 작업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주변을 경계하고 적인지 아군인지 쉴새 없이 판단해야 하는 일이 전세계적으로 강제되고 있습니다. 너는 시민권이 있는지 없는지, 합법체류자인지 불법체류자인지, 그리고 ‘우리 편’인지 혹은 타겟인지 판단하는 일 말이죠. 이 판단에는 선택지가 둘만 존재합니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 여기서 그 손가락이 나를 향하는 시나리오는 상상하지 않습니다. ‘너’를 판단하기에 ‘미사일이 그쪽에 떨어지는 상황’만 그립니다. 사진에서 그리고 영상에서 전달되는 ‘너’를 향한 폭력은 피비린내도, 먼지도, 기름 냄새도, 땀 냄새도 풍기지 않고, 심장을 흔드는 굉음도, 진동도, 울음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20초에 한 번 타겟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버튼을 누르고, 자폭 드론을 출동시키는 일을 ‘자위’라는 이름으로, ‘예방적’으로 반복합니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라는 이유도 빼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안전은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이들의 일상을 흔들고, 불안에 떨게 합니다. 그리고 온몸으로 불안과 두려움, 충격을 기억하게 강제합니다.
2026년의 더슬래시는 “땀과 냄새 그리고 소리로 기억하는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북미와 일본, 바레인, 한국에 거주하며 서로 다른 폭력을 경험하고 목격하며, 질문하는 이들이 필진으로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대적인 반이민 정책을 겪어내고 있는 한 분이 익명으로 짧은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필진들은 감각의 언어로 폭력의 경험을 그려냅니다. 아닌 밤중에 날카롭게 울리는 경보와 하늘을 흔드는 굉음, 기름 냄새가 섞인 검은 비, 그리고 어지러움. 빨라지는 심작 박동과 하얗게 칠해진 방, 단단히 경직된 몸. 삭제된 기억과 열기, 땀 냄새.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허무감. 이 모든 감각들은 ‘너’가 아니라 ‘나’와 엮인 감각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을 바탕으로 일상을 흔드는 세세한 불안에 대해 상상합니다.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나왔는데, ICE(미국 이민세관집행국)가 우리 동네에 나타났다는 알람이 떴어요. 그 순간 빨리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죠. 나는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더라도 무차별 타겟이 될까 두려웠으니까요.”
“우리 집 안으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 보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탑재된 무기 공격으로 인해 물과 전기가 단숨에 끊어질까 봐 무서웠다.”
“‘요즘 일본에 외국인이 많아져서 무섭네요’라는 인사가 미용실과 카페 등에서 흔히 들려오는 일상에서, 재일외국인 및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많은 일본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아서 거의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이란과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처럼 극대화된 폭력도, 일본과 북미에서 은근하지만 노골적으로 지속되는 폭력도, 한국이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된 무기 규제에 뒷짐을 지는 것처럼 애매하고 느슨하게 연결된 폭력도,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이분법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는 사이 “국민과 비국민, 아군과 적군이라는 피아식별의 알고리즘에 갇혀 결국 스스로가 다음 비국민의 데이터셋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거나 깨닫지 못한 채 비국민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집니다.
나는 ‘적’이 아니라 ‘아’에만 속할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 무모합니다. 네가 반드시 ‘적’일 것이라는 믿음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지구 위에 모두가 얽혀 존재’하는 만큼, 이분법이 만들어내는 폭력은 결코 먼 곳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적’과 ‘아’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선택지들을 애써 발견하지 않는다면, 그 폭력은 ‘땀과 냄새, 그리고 소리’로 기억될 것이에요.
“이 지구 위에 타자는 없으니까요”

/ 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