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2022년에 이어 두번째로 진행된 2023한일청년평화포럼에 다녀왔다. 피스모모에 합류하게 된 이후로 군 문제에 관심이 늘어나서, 그룹별 필드워크로 요코스카 기지를 선택했다. 평화라는 키워드로 바라 본 요코스카 기지와 주변의 인상을 나누고자 한다.
요코스카 기지는 재일 미국 해군 사령부가 있는 미군시설이다. 1871년 요코스카 조선소가 설립되었고, 일제 시기에는 일본군 해군에게, 45년 이후에는 미군 해군에게 이용되고 있다. 현재 요코스카의 주요 시설 및 공장이 반환받아야 하는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평화의 관점으로 무기에 대해 알아가기
도착하자마자 보트에 타서 요코스카 항구의 모습을 한 시간에 걸쳐서 둘러보았다. 탄약을 보관 중인 콘크리트 시설, 순양함, 기뢰를 추적/파괴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커다란 배들을 사이로 요리조리 바다를 누볐다. 보트를 직접 운항하시며 설명을 해주시는 선장님은 굉장히 열정적이셨다. 각각의 배와 장비들에 대해서 얼마나 위협적인 무기들인 지에 대해서 설명을 상세하게 해 주셨다. 나는 사실 이 부분에서 조금 위화감이 있었다.
내가 이전에 활동했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에서는 한중일 청소년을 대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중일의 관계사를 배우고 평화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캠프를 매년 진행했었다. 역사가 좋아서 오는 참가자들이 전쟁과 군사무기에 매료되어 있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일종의 게임과도 같이 '강한 것'에 매료되어서 보이는 현상 같기도 하다. 이런 배경을 가진 이들에게 전쟁이 아닌 평화의 프리즘으로 역사와 세상을 읽도록 돕기가 쉽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섬세하게 준비를 해도, 결국 필드워크지로 고를 수 있는 옵션들의- 예를 들면 전쟁기념관 등- 의도는 절대 평화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평화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전시자의 의도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개인적인 맥락 속에서 선장님이 요코스카 미군기지 반대활동을 하시는 분이신지, 관광객들 대상으로 가이드를 해주시는 분인 지 궁금했다. 사실 어느 쪽이든, 무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다른 내용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중에 이 위화감에 대해서 오키나와 미군기지 관련 운동을 하는 분과 잠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미군기지 관련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무기가 내 삶을 파괴하는 것 대한 걱정이 크기 때문에 무기의 스펙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아시는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무기들의 위협이 너무 두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세히 알아야 대응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상세히 조사 중이다."같은 문장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내가 느낀 무기전시회장에 놀러 온 거 같은 불편감이 좀 덜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똑 닮은 어느 거리들의 풍경
항구 뒤에 있는 요코스카의 주요 거리를 돌아보았다. 오키나와나 동두천, 평택을 다녀온 입장에서 요코스카의 거리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요코스카의 특색이 더해진 스카잔(요코스카의 주일 미군들이 낙하산 천 등으로 만든 점퍼에 동양풍 자수를 넣은 것에서 유래함) 정도만 빼면 군사문화를 관광상품으로 소비하고 있는 풍경도, 미군들에 의해/미군을 위해 지어진 온갖 이국적인 가게들도 전형적인 미군 기지 근처의 모습 같았다.
함께 필드워크에 참여한 한국 기지촌 여성 연구자는, 길을 걸으며 당시 성매매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을 만한 장소들을 짚어내기도 했다. 기지 반대 운동 소개 후에 해당 여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활동가들에게 질문했을 때, 아무도 그들의 행방을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국가라는 주체들에 의해 폭력에 휘둘리는 약자들 사이에도 이른바 순위가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약한 존재일수록 더 쉽게 잊히고 만다. 갈등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과정 자체가 평화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한 일이었다.

요코스카의 반전/반기지 운동
기지 근처 부두와 거리를 돌아본 뒤 미카사 교회에서 지역운동가 니이쿠라 히로시 씨, 고토 마사히코 씨에게서 일본의 군사증강과 요코스카 기지의 관계, 요코스카의 반전/반기지 운동에 대해서 소개를 들었다.
2019년도 5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요코스카는 미 해군과 동맹국의 함대가 나란히 사령부를 둔 세계에서 유일한 항구다"라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 답사 때 자위대와 미군시설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왔기 때문에, 요코스카의 군사적인 위치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군의 경우 미군의 하위 조직 같은 인상을 주는 배치가 많은데 일본은 어쨌든 대등한 입장으로 ‘보이는 상태’인 것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분명히 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일본일 텐데, 걸프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각각 가장 많이, 또는 선제공격으로 토마호크를 발사한 것은 요코스카의 모항의 '파이프'와 '카우펜스'라고 한다. 군사비는 세계 9위인 541억을 지출 중이고, 세계 군사력 랭킹 2021에는 5위를 차지했다.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무기 장비들과 부두시설들이 요코스카에 어마어마하게 설치가 되었고, 최근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근거가 삽입되고, 캠프 데이비드 정신 타령 같은 것을 하고 있으니, 요코스카 시민들은 전쟁의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요코스카는 1960년대부터 반토마호크, 핵탑재함기항 반대운동, 해외로의 공격적 군사행동에 대한 항의 활동 등을 계속해왔다. 정권에 따라 요코야마 시장이 함께 반전, 반기지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군기지와 고령화/고립되고 있는 반전/반기지 운동을 어떻게 계승/확대해 나갈 것인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기도 하다.
대안으로 평화/긴장완화의 메시지를 내기 위해 1) 다양한 시민단체에 의한 중층적인 운동, 2) 여성이나 청년층이 참가하는 운동, 3) 다른 분야의 시민운동/자치실천과 연계, 4) 국제적 연대에 대한 고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함께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먼저 1번 목표와 3번 목표를 한데 묶어, 다양한 시민단체로의 확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피스모모는 7월에 <COMPSA2023, 커먼즈: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와 안보>라는 콘퍼런스를 진행했다. 여기서 평화를 위해 얼마나 다양한 이들이 손을 잡을 수 있는지 배우게 된 것이 정말 많다. 예를 들어, 환경 운동과의 연결성은 어떨까? 군수산업과 군사활동이 내뿜는 탄소배출량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6%를 차지한다는 점을 안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주로 하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에게도 반전문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활용한 담론을 만들어가면서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다. 혹은 군문화와 전쟁으로 인한 폭력으로부터 젠더문제, 비인간존재들에 대한 관심을 연결시키거나 평화권 등의 담론을 통해 인권 활동가들과 연대할 수도 있다.
여성이나 청년이 참가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일본 운동계 전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세대가 다른 이들 간에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형식의 기존 운동 방식은 아무래도 우리 세대에는 맞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여성이든 청년이든 '마이너리티'로서의 존재가 기존 운동 방식에 풍요로움을 덧대는 '쿼터제' 같은 방식으로 호명되는 것이 그닥 달갑지 않다. '여기 일부에 너희 자리도 있으니 들어오라'는 외침 대신, '어떻게 하면 함께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국제적 연대에 관한 것이다. 세계의 군사적 긴장이 심각한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군비경쟁이 과밀화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무력 충돌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비 지출, 무기 거래, 군사 훈련, 군사 동맹 등 전쟁준비 중이다.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안보 관련 의사결정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따라서 피스모모에서는 동북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내는 조기경보가 필요하다고 판단, 조기경보의 목소리를 모아낼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래도 대부분 고령이라 외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요코스카 분들께, 조기경보 등의 자료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공유하겠다고 약속하며 필드워크를 마쳤다.
한 사람의 독재자가 멋대로 인권을 유린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우리는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국가가 내리는 모든 결정에 우리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거기에서 예외적으로 군사문제, 전쟁에 대한 문제만은 전문가들이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혹은 일부 특수한 사람들만 발언권이 있는 것처럼-예를 들면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들처럼- 생각할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힘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시민들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할 때이다.

/김진선
피스모모. 한일의 역사갈등 관련 활동을 약 6년간 해왔다. 활동 중 평화학을 접하게 되어 귀동냥으로 공부를 이어왔다. 언어의 부재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찰나 피스모모를 만나게 되어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일본의 청년 활동가 친구들과 함께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작은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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