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냄새, 소리로 기억하는 폭력

나의 불안과 그들의 불안, 그 정체를 가려내는 일

배외주의가 ‘외국인 문제’로서 정치화·주류화된 다카이치 정권 일본에서

2026.03.18 | 조회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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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2019년 2월 24일, 오키나와에서 미군 후텐마 비행장나고시 헤노코 이전에 따른 바다 매립에 대한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투표율은 50% 넘었고, 반대표가 70%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지사는 일본 정부에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지 건설 공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있다.

이 주민투표 날을 계기로 ‘224 음악제’가 열리게 됐다. “내 일을  가 결정한다—이 당연한 것을 오키나와에서는 여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음악제 공식 사이트에서 발췌)라는 목소리와 함께 매년 2월에 개최된다. 올해는 나하시 중심부에서 열렸고, 오키나와 내외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다채로운 아티스트들의 음악공연과 함께 다양한 토크쇼도 열렸다. 그중 하나‘군사기지와 평화교육×한국과 오키나와’ 토크쇼에 한국에서 평화교육 활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피스모모가연, 진선이 출연했다.

나는 마침 근무하는 대학교가 봄방학에 접어들어 내 파트너의 활동 거점이 있는 나하에 머물고 있던 김에 토크쇼를 들으러 갔다. 진행자는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인 백충 변호사. 음악 공연에는 내  친구 한국 아티스트 이랑,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래퍼 모멘트 준(Moment joon),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능력을 키워 온 재일동포 예술단금강산가극단이 출연한다고 들어 더욱 흥미로웠다. 행사 전반에 걸쳐 ‘코리아’ 관련이 많아 보이는 건 오키나와의 평화를 생각할 때 한반도와의 관계 역시 빼놓을 수 없다는 취지였으리라.

토크가 끝난 후 나하의 거리에서 두 피스모모 활동가들과 우연히 마주쳤다. 무심코 말을 걸어 인사를 건넨 건 한국에 사는 친한 재일동포 후배가 피스모모에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 후배의 말로 하면 ‘기적 같은 만남’으로 기고 요청을 받아 이 글을 쓰게 됐다.

기고 의뢰 내용은 2월 8일 일본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하고, 현재 다카이치 정부가 국민과 비-국민을 더욱 엄격하게 구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겪고 있는지, 그 심정을 전해주는 글을 써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남의 심정을 내 마음대로 대변할 수는 없지만 선거 결과에 대한 내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불안을 넘어 이제는 “어처구니없어서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느낌이랄까.

*

해방 전에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건너오신 부모님 사이에 1968년 도쿄에서 태어난 나는 조선학교[1]를 다니며 재일동포 사회 속에서 자라 왔다. 나에게 민족과 국적에 대한 차별은, 예를 들어 진학 문제, 주거를 마련하는 문제, 또는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과정 등에서 주로 제도적인 장벽으로 크게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이라 기억한다.

1990년대에 접어들 무렵 일본은 소위 ‘버블 경제’로 들뜨고 국제화가 추진됐다. 그 전까지는 식민지 역사적 배경으로 일본에 건너와 계속 살아온 외국인, 즉 재일동포가 주로 많았지만, 90년대를 거쳐 재일동포 이외 외국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 정부가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 중남미 각국에 이민을 갔던 ‘닛케이진’ (일본계 이민 후손) 이 귀환하고 일본에 사는 경우 3세대까지 정주 재류 자격을 부여한 정책, 그리고 현재 외국인기능실습제도로 불리는 ‘뒷문 정책’―정규 노동이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명분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재일외국인은 1990년에 전후(戰後)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 굳이 ‘전후’라고 한 건, 1945년 시점 일본에는 200만 명을 넘는 조선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보이지 않은 존재로 간주됐고 지금과 같은 배외주의적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재일동포와 새로 늘어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내가 기억하는 변화의 계기는 이른바 ‘치마저고리 훼손 사건’이다.[2] 당시 핵·미사일 개발을 빠르게 추진하던 북한에 대해 일본 언론은 미국 정보를 근거삼아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럴 때마다 애먼 조선학교 학생들이 헤이트 크라임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는 아직은 인터넷과 SNS 등이 없었기 때문에 혐오의 분위기는 TV 방송을 중심으로 한 언론들로 만들어졌다. 나는 당시 기자로서 그것이 물리적 혐오범죄로 이어져가는 상황을 취재하면서 (당시 기자였던 내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 피해 여학생은 “(북으로) 귀국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나마 편안했던 내 고등학생 시절과의 차이에 충격을 먹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1995년 Windows95 출시와 인터넷 보급으로 익명 인터넷 게시판 사용자가 크게 늘었다. 한일 월드컵 공동주최, 그리고 당시 고이즈미 총리 방북이 이루어진 2002년을 계기로 인터넷상에서는 ‘조선·한국’이 완전히 부정적 기호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한일 월드컵 공동주최는 그때까지 한국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새로운 한국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경험이었다. 국가와 언론이 앞장서서 조성한 한일 우호 분위기가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었던 반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의도적인 반통념적 주장이야말로 진실이다’ 라는 새로운 문화를 바탕으로 확산된 인터넷에는 이런 분위기에 반감을 품은 일부 사람들의 부정적 담론도 폭증했다. (물론 애초에 한반도에 대해 달갑게 여기지 않은 식민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해, 평양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처음으로 회담한 당시 김정일 총비서는 과거 일본인 납치사건을 인정했으며, 5명의 피해자가 일본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북한 때리기는 연일 언론의 집중공세가 되었고, 비슷한 종류의 담론은 인터넷 사회에서도 극대화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토대로 2007년 인터넷상에 나타난 집단이 ‘재특회’이다[3]. 그들은 식민지 지배 과거사를 부정함과 동시에, 그 역사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와 ‘특별영주’ 재류 자격을 가지게 된 재일동포들을 겨냥하여 그들이 사회보장 등에서 다양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등 허위 주장을 펼쳐 차별을 선동했다. 그들은 2009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뛰어나와 두 가지 직접행동을 감행한다. 하나는 한 필리핀 가족을 겨냥한 시위. 당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자녀가 있는데도 미등록 체류가 되어 강제송환의 위기에 놓인 필리핀 부모를 지원하는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법무장관의 재량으로 재류특별허가를 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 가운데, 재특회는 필리핀 가족을 향해 '불법' 외국인이자 범죄자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이타마현 주거지까지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또 하나는 교토조선제1초급학교 습격 사건. 교토조선제1초급학교는 운동장이 없어 1940년대 설립 초기부터 지역과의 합의에 따라 인근 공원을 체육 수업 등으로 사용해 왔다. 그럼에도 재특회는 일본사람들의 공원을 조선학교가 부당 점거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으로 학교를 습격하고 “간첩의 자녀들”, “북조선으로 돌아가라”등 헤이트 스피치(혐오 표현)를 퍼부었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처음으로 나와 공격한 대상이 이들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돌아보면 매우 상징적이다.

2010년에는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 제도’의 대상에서 조선학교만이 제외되었다. 이 제도는 일반 일본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외국인학교와 국제학교도 대상으로 포함됐고 조선학교는 법적으로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북한 납치 사건’ 문제를 구실로 배제됐던 것이다. (그 후 일본 지역 5곳에서 소송이 제기됐으나 모두 패소했다.) 그런 ‘정부 차원의 제도적 차별’에 호응하듯 재특회 등은 재일동포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나 한국계 가게가 모인 상가 등을 중심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퍼뜨리는 ‘시위’를 확산해 나간다.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때로는 수백 명 규모로 추악한 ‘시위’가 벌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문제화되자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행동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2016년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행 해소를 위한 조치의 추진에 관한 법률’(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이 법은 외국 출신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특화한 이념법으로 금지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약하다는 점, 그리고 ‘본국(일본) 외 출신자’라는 규정에 의해 아이누[4], 오키나와[5], 피차별 부락[6] 출신자 등이 제외되거나, 또 ‘적법하게 거주하는 자’라는 요건에 의해 미등록 체류자가 제외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 문제가 있다. 그래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반인종차별 이념법으로서 그 의미는 작지 않다. 실제로 법 제정 이후 헤이트 스피치 시위는 일단 진정되었다.

다시금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23년 무렵이다. 이미 30년 가까이 정착해 온 사이타마 지역의 재일 쿠르드족 공동체 (약 2000~3000명으로 추정)가 뜬금없이 표적이 된 것이다. 지역에 사는 쿠르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다툼이 의도적으로 부각되고 SNS에서 확산되자 일부 언론도 이를 부추겼다. 임시방면 중인 난민 신청자가 적지 않은 쿠르드 사람들을 위험한 ‘불법 체류자’로 보는 이미지가 순식간에 퍼졌다. 그런데 이것 또한 민간 차원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24년 난민 신청자를 송환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단행했는데, 이 법 개정을 위한 국회심의가 언론을 통해 난민 신청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리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정부와 민간, 위와 아래의 공명 (맞물림)은 2010년의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 제도’ 때와 비슷하다. 일부 유언비어를 확산하는 장치로서 SNS가 이에 박차를 가하고, 쿠르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혐오 시위가 거듭 벌어지게 되었다.

시간을 잠시 되돌려보면, 2018년 출입국관리법 개정 때 당시 아베 정부는 정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즉 앞서 언급한 ‘뒷문’이 아니라 ‘정문’을 열었다는 셈이지만, ‘이민 정책’을 일관하게 부정하는 입장은 바꾸지 않고 ‘외국인 인재 활용’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 후 2024년 개정 출입국관리법 시행과 쿠르드 공동체가 ‘문제화’ 된 계기를 거쳐, 2025년 7월 참의원 의원 선거에서는 ‘일본인 퍼스트 (일본인 우선주의)’를 내세운 참정당이 크게 세를 늘렸다. 2005년 200만 명, 2022년 300만 명을 넘은 일본 체류 외국인 수는 2024년 말 시점에서 377만 8977명이 되었다.

이 참의원 선거에서 참정당은 ‘일본인 퍼스트’를 내걸고, 외국인 문제를 기존 이주노동자 문제뿐 아니라 과잉 관광, 외국인 부동산 소유 문제 등과 엮어 쟁점화했다. 이에 뒤질세라 집권여당 자민당 역시 같은 프레임으로 ‘외국인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규칙을 지키지 않은 외국인’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배외주의적 정책을 전개했다. 이 흐름에 대해 재일외국인 문제에 밝은 사회학자 타카야 사치 도쿄대학교 준교수는 '이민의 비정치화'에서 '외국인 문제의 (배외주의 정책으로서의) 정치화'로 바뀐 변화, 또한 빠른 주류화 (다만 외국인 노동자 정책에 대해서는 쟁점화하지 않음)라고 정리한다. 이런 ‘정치화’ 아래서 ‘외국인’은 일본의 질서를 위반하고 ‘일본’ 및 ‘일본인’과 대립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간주됐고, 배외주의적 정책은 정부·여당의 지지를 얻기 위한 상징적인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다.[7]

실제로 이런 분위기는 배외주의적 혐오 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이민 반대 시위로 나서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젊은 여성, 아이를 데린 부모들의 참여도 적지 않다.) “요즘 일본에 외국인이 많아져서 무섭네요”라는 인사가 미용실과 카페 등에서 흔히 들려오는 일상에서, 재일외국인 및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외국인이 우대받고 있다”, “외국인 범죄율이 높다” 등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정당한 선거운동이랍시고 퍼뜨리고, 일본인을  피해자로 간주하는 ‘일본인 퍼스트’ 담론에서 몸 피할 곳이 없었던 지난 여름의 참의원 선거 기간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나날이었다. 더구나 나와 같은 식민지배 역사 배경을 가진 특별영주자도, 일본에 오래 살고 영주권을 얻은 사람도, 국정선거이든 지방선거이든 일본에서 외국인에게 참정권은 없다. 애초에 선거 참여도 못하는데 화제로 삼아 공격받는, 외국인으로서는 그저 부당하기만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게 최근 일본 선거의 풍경이다.

이런 가운데 2025년 10월, 원래 극우적 입장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정부가 출범했다. 연립 여당도 비교적 온건 중도 성향인 공명당에서 신자유주의적 우파 성향인 일본유신회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2026년 1월, 다카이치 정권은 ‘신임을 묻는다’며 중의원 의원 선거를 단행했다. 지난 여름 참의원 선거의 악몽이 생생한데 또다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나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선거를 통해서 배외주의와 맞서는 일본 유권자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가시화되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2월 8일 선거는 여당 자민당의 역사적 압승으로 끝났다. 참의원 선거 때는 불안과 두려움의 한편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생각도 나지 않고 거의 체념에 가까운 허무감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것이 어처구니없어 더는 못 버티겠다는 느낌으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아서 거의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하긴 2010년대 재일동포를 겨눈 헤이트 스피치가 심해졌을 때부터 SNS를 자주 안 쓰게 됐다.)

*

이렇게 타이밍적으로는 마치 도망가듯이 나하 224 음악제를 찾아 갔던 것이다. 거기서 이런 상황에 대한 분노를 항상 표현해 온 Moment joon의 랩을 만났고, 내 나름으로 그 분노를 나눠 가진 기분이 들었다. 이랑의 노래에도 힘을 얻었다. (금강산가극단의 공연은 조선학교 졸업생으로서는 익숙함과 동시에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토크쇼에 참여한 피스모모 활동가들을 만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쓰면서 성찰해보면 나보다 훨씬 더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을 느낀다. 식민지 유래인 나의 재류 자격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나에겐 정규직 일자리가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발언하는 기회도 있다.

그 동안 일본에서 배외주의적 분위기가 퍼진 이유로 ‘평범한 일본인의 불안감’이 거론되며 그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났다. 과연 그럴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불안의 정체는 정말로 ‘외국인 문제’ 일까. 나는 나 자신의 불안의 정체를 들여다보고, 끝까지 가려내고, 그것을 전달하고, 또한 그들 역시 자신의 불안의 정체를 들여다보고 가려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 당장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을 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1] 해방 후 재일동포들이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역사,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만든 학교. 일본 전국에 유치원에서 초, 중, 고, 대학교까지 52개교 (2023년도 기준) 있다. (역자 주)

[2] 북핵 개발 뉴스가 나온 당시 조선학교 여학생들이 등하교 중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찢기는 등의 폭행을 당한 사건. (역자 주)

[3] 정식 명칭은 ‘재일 (코리안) 특권을 허용하지 않은 시민 모임’ 인데 명칭 그 자체가 허위사실이므로 저자는 정식 명칭을 명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덧붙임. (역자 주)

[4] 홋카이도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해 살던 선주민족. 근대화 시기 일본의 점령으로 일본 국가에 편입되었다. (역자 주)

[5]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 민족이 사는 류큐 왕국이었지만 근대화 시기 일본의 점령으로 일본 국가에 편입되었다. (역자 주)

[6] 전근대 일본에서 봉건적 신분제도 아래 부당한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이 살던 지역(집락). 신분제도가 폐지된 이후도 그 지역 출신자가 결혼·취직 등에서 차별을 받는 사회적 문제가 존재했다. (역자 주)

[7] 2월 17일 일본학술회의 공개 심포지엄 ‘지금, “배외주의”를 생각한다~함께 사는 사회는 가능한가’에서 발표한 다카야 사치의 보고.

 

첨부 이미지

/한동현

재일조선인 2세. 일본 영화대학에서 영화가 아니라 사회학을 강의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공동제작 사업도 함께하고 있다. 재일외국인이나 일본의 다문화 상황에 대해 사고하고, 때때로 글도 쓴다.

 

일한 번역

조미수(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연구위원)

김진선(피스모모 거버넌스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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