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제네바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울이 아직은 더울 때여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이국적으로 느껴졌는데요. 한국과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국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 수 있는 순간들이었습니다.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프랑스 마을로 갈 수 있고, 프랑스 숙소에서 전철을 타고 스위스에 있는 유엔 회의장을 갈 수 있었습니다. 국경을 '밥 먹듯' 오갔지만, 여권 검사는 커녕, 그 누구도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확인하지도, 인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국경을 오갈 때마다 로밍해 온 핸드폰에 한국 외교부가 보낸 문자만 끊임없이 도착할 뿐이었어요. 현지에서 만난 스위스 교민분은 "오늘 장 보러 독일에 다녀왔어. 거기가 훨씬 싸거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경을 건너려면, 바다를 건너거나 군사 분계선을 넘어야 하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죠.
사실 한국에 살면서 '국경' 자체를 인지하는 일도 흔치 않습니다. 북을 가까이 접하고 있는 국경선 마을에 가지 않고서는 국경은 눈에 띄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일본과 한국 고등학생 서른 여명과 방문했던 파주 국경선 마을은 한국 사회에 살면서 자주 잊고 지내는 국경은 물론, 사람과 사람, 사람과 비인간존재를 가르는 여러 '경계(境界)들'을 마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경계들을 누가 만들었는 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런 경계 때문에 서로를 경계(警戒)하게 되지는 않는지 말이죠. 11월 더슬래시는 '한일 피스 큐레이션(Peace Curation)'이라고 불린 이 일정에 함께했던 피스모모의 진선과 인턴 사라, 참여자 마코토님의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국경'때문에 멈춰 설 일이 없는 유럽에 살았던 사라 브란트마이어님은 코로나19로 강 저편을 건너지 못하는 슬픔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생을 그런 슬픔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남과 북의 분단을 무겁게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울타리가 아니라 한 국가를 둘러 싼 물/바다/강, 그리고 무장 군사에 의해 정의되는 경계를 낯설게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계들이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고, '그들'을 비인간화함을 통해 '우리'를 안전하게 하려는 '안보' 프레임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그런 경계들이 누구를 보호하고 있고, 그러면 우리가 정말 안전해지냐고요.
세키하라 마코토님도 강 하나를 두고 남과 북이 갈라서 있는 공간, 이쪽에서 저쪽을 망원경을 놓고 구경하는 국경에 서서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을 관람하듯' 북을 바라보는 모습을 낯설게 관찰합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스타벅스를 높게 세워 둔 애기봉 생태평화공원의 전망대가 '우리(남한)는 너희(북한)와 다르다'는 상징적인 메시지임을 아프게 꼬집으며, "그들을 다른 것,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자신은 괜찮다, 지켜지고 있다, 또 지켜져야 할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싶다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묻습니다. 일본의 외국인 혐오 풍조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하면서, "그들이 없어지면, 또 자신이 그은 경계가 지켜지면 그들은 만족할까. 그렇게 됐을 때 그들은 또 새로 배제할 대상, 자신이 지켜지는 경계를 설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코토님의 관찰은 독특한 종교 때문에 '경계 지어 짐'을 경험하며 자란 진선님의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진선님은 어린 시절을, 수혈을 받지 않고, 순대를 먹지 않는 종교 때문에 또래 집단의 경계에서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여자라면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종교 집단에도 속하지 않아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인생'이었다고 돌아봅니다. 그러면서 "집단 속에서 이질적인 존재는 취약한 존재"라며, "적을 구분짓고, 보호할 대상을 선별하는 이 세상 속에서 경계 바깥에서 사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라고 짚어냅니다. 그래서 오히려 흐릿한 경계 위에서, 애매한 위치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이는 "자신이 그은 선을 보다 얇게" 만들고, "다름"을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의식 아래, 다름에 대한 공포감이나 긴장을 없애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마코토님의 성찰과 맞닿습니다. 경계를 두르고, 무장할 수록 돌아오는 것은 무장 경쟁과 두려움, 그리고 고정된 갈등 뿐이라는 사라님의 성찰과도요.
그래서 2025년의 마지막 더슬래시 저널을 통해 여러분께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한 달 여 남은 올 해, "이도 저도 아닌 어딘가에서(진선)" "경계의 저편으로 뛰어들어(마코토)" "숨겨진 경계(境界)를(사라)" 경계(警戒)하며 보내시는 것은 어떠실런지요?
2025년 11월
가연 드림

/ 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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