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로 한 주를 채우고 나니 9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셨나요?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곤 하는데요. 오랜만에 보는 어른들은 “이제는 정말 정부가 하는 일을 참아주기가 어렵다”하다가도, 무기제조업체 현대로템의 유튜브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방산 업체의 위용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북이 띄워 보내는 ‘대남 쓰레기 풍선’ 소식에는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요. 그러면서 단발머리에 가깝게 길게 머리를 기른 막내아들에게, “너 그래서 언제 ‘남자’ 될래?”라고 질문 아닌 질문을 건냅니다. ‘남자답게’ 머리 자르라고 약속하라고요. 군사적 대응을 선호하는 사회, 무기를 찬양하는 언론, 남자다움을 권유하는 문화. 이렇게 전쟁은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 사이 뉴스에서는 ‘**의 공격으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또 한 번 들려옵니다.
피스모모는 지난 9월 11일 <커먼즈: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와 안보>라는 제목의 국제 컨퍼런스를 진행했습니다. 첫 세션에서 임은경 피스모모 교육연수팀장은 ‘전쟁 부추기는 사회, 전쟁 외면하는 교육?’이라는 발표를 통해 한국 사회에 속속들이 스며 있는 군사주의를 교육이 어떻게 재생산하고 있는지 짚어주었는데요. 발표에 따르면, 공교육에서 지속하고 있는 ‘나라 사랑 교육(안보)’부터, 영유아를 대상으로 ‘이벤트’처럼 진행되는 ‘군사 체험’까지, 한국 교육은 전쟁을 준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전쟁의 ‘위험’에서 안전을 확보할 방법은 국가와 군대에 기댈 뿐이라는 사실을 답습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럴수록 나의 불안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아이러니를 느끼면서도요.
9월의 더슬래시에 필진으로 함께한 진냥님과 푸른님은 교육, 그리고 삶의 배움 과정에서 마주하는 전쟁과 군사주의의 모습을 톺아냅니다. 청소년인권운동가로 학생인권법 제정에 힘쓰고 있는 진냥님은 모두가 “국가/교육청이 발령한 교사에게 교육받을 의무”를 가지지만, 학생으로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운 학교 구조를 꼬집습니다. 더불어 “교육을 바꾸려는 시도, 국가에게 통제당하고 소비되지 않겠다는 선언”이 “독재정권과 중앙정보부, 경찰, 군대의 폭력으로 저지”되어 왔던 역사를 짚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생에게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한 최초의 법’인 학생인권조례가 갖는 함의를 들추지요. 학생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통제되고 침해받은 권리들이 정당한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고요. 그렇게 학교 교육이 재생산하는 군사주의에 저항했던 목소리들에 다시금 힘을 보태자고요.
안타까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를 재생산하는 구조는 학교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린이 둘의 양육자로 살고 있는 푸른님은 영유아 문화센터강좌, <오감통합놀이 - 군인놀이>를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리는데요. 그러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신중한 고민 없이 폭력적인 문화를 흡수시키고 있는 어른들의 욕심을 따져봅니다. 이 외에도 ‘장난감총’, ‘어린이용 군복’, ‘초등학생 대상 병영 체험 캠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전쟁 + 놀이’의 조합, 그리고 무기 전시회에서 자식에게 “더 진짜같이 해야지!”라며 군인다운 사격 포즈를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이대로 정말 괜찮은지 질문합니다. “아무도 그 놀이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심지어 어른들이 멋있다며 부추긴다면? 그 놀이가 끝내 진짜 현실에서 재현되지는 않을지” 의심해야 한다고 말이죠. 푸른님은 그러면서 “묻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당연한 것이 정말 괜찮은지,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법을 배우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면서요.
2017년부터 전쟁의 북소리에 춤추지 않는 교육이라는 제목의 컨퍼런스를 운영해왔습니다. 이 제목은 팔레스타인계 시인이자, 작가, 배우이며, 정치활동가인 수헤어 하마드의 시 “I will”에서 착안한 것이었어요. “나는 전쟁을 알리는 너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전쟁의 북소리에 저항하며 그보다 선명하게 울리는 숨소리를 따라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선택하겠다고요. 전쟁의 북소리가 파다한 시대에서 교육의 역할은 이런 것 같습니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전쟁의 북소리’라는 것을 알리고, 그 소리에 춤을 추지 않는 선택을 하게끔, 애써 삶을 선택하게끔 힘을 불어넣는 일 말이죠. 당연하게 따르던 것들에 잠시 멈춤!을 선언도록 용기를 나누는 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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