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만 있는 것
내가 이런 시골에 와서 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화분 하나도 제대로 살려본 적 없고, 학창 시절 친구들이 텃밭 농사를 지었지만, 밭 구경도 한 번 안 가본 나였다. 시골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만 있을 뿐, 거기엔 어떤 삶이 있을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넉넉하게 살아본 적 없어도 스타벅스와 CJ에서 골드, VIP 자격을 내내 유지하던 나였다. 그게 내 삶의 중심이 아니었지만, 그런 것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20대 중반, 우연히 시골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일만 보고 왔는데 내 삶이 서서히 시골에 물들었다. 결국 이곳에 정착할 결심에 이르렀다. 일은 얼마 안 가 그만뒀지만, 나는 여기에 남았다. 그로부터 벌써 8년이 흘렀다. 이제는 도시에 있고, 여기에 없는 것보다 여기에만 있는 것들이 더 많이 느껴지고 보인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이건 공기의 차이만큼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내가 느낀 농촌의 참멋은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여름이면 피리를 잡아 튀겨주시고, 봄나물 한 다발 캐서 나눠주시는 옆집 어른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언제나 눈앞에 펼쳐진 하늘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농촌의 절반쯤만 알았다. 내가 여기 삶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곳에서 나와 주변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서. 단조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시골살이에 오히려 더 많은 복잡함이 있고, 그 복잡함이야말로 나를 멈춰 서게 하고, 찬찬히 생각하게 하는 ‘느린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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