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사전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정의되는 말인데요. “생계·생존·생활을 위한 모든 것들 또는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화폐를 얻기 위해서 특정한 대상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모든 활동”이 노동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노동은 다른 노동보다 더 가치 있게 평가됩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있게 여겨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고, 그 부의 축적은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얻은 마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시장에서 가치있다 여겨지지 않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노력하지 않은, 그래서 빈곤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여겨지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자신의 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것처럼 축소되고는 합니다.
노동자의 요구가 정당한 목소리로 대우받지 못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발견됩니다. 지난해 말,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했던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했던 것이 그렇고요.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 결정에 따라 일자리를 내려놓았던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요구를 모르쇠로 받아넘긴 것도 그렇습니다. 최근 건설노조가 노조 교섭 과정에서 ‘불법’을 일삼았다며 건설노조 조합원 950여명을 범죄 혐의를 붙여 수사한 것도요.
이번 더슬래시에서는 자본주의 피라미드를 비트는 노동을 이야기합니다. 이수정, 김엘림, 박혜민, 가연 총 네 분의 필진이 함께하셨는데요. 노동과 교차하는 청소년과 여성, 군사, 정치, 평화 영역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수정님은 “청소년은 일터가 아닌 학교에 있어야 ‘정상’이고, 모든 청소년은 학생이라는 생각”, 그래서 학생으로서의 보호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외면당한 청소년 노동자들의 고통을 차분하게 가시화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려놓은 이상적인 청소년의 모습 때문에 그에 빗겨 선 청소년/노동자들은 어떠한 돌봄과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흐릿해져 있던 것이죠.
사회에서 그려놓은 이상적인 틀에 빗겨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평등을 감수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군사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김엘림님은 두 번째 기획 글에서 남성만큼, 아니 남성보다 더 뛰어나야 했던 여군들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여군들은 ‘상상된’ 남성 군인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남성이었다면 요구받지 않았을 학력 조건과 시험, 훈련들의 문턱을 넘어야 했죠.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