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줄곧 한일 통/번역(주로 통역)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오고 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며 일본어(또는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 강제(?)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통역 그 자체의 마술적인 순간에 깊게 매료되었다. 출발어를 들으며 거의 동시에 도착어로 발화해야 하는 내 몸. 불가능할 것 같은 동시성. 점점 출발어 발화자가 되어가는, 하지만 완벽히 동일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낯설어지는 시간이다. 내가 당사자로서 퀴어 공동체와 적극적으로 휘말리며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자 현재진행형인 과제)은 ‘보편적이고 당연하다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낯설게 보는 시선’이다. 이 배움에 힘입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나의 통/번역 노동을 돌봄으로 낯설게 조명하고자 한다.
광장에서 떠오른 질문
2024년 12월, 계엄 이후 열린 광장을 기억한다. 페미당당 활동가가 레즈비언으로서 광장에 나왔고, 우리의 퀴어성은 누군가의 농담거리가 아니라는 힘찬 발언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저런 애들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거야"라고 말하던 어느 남성의 말 또한 기억한다. 나는 그 남성의 겨우 몇 발자국 뒤에서 무지개 깃발을 등에 묶고 차디찬 아스팔트에 앉아있었다. 그렇다면 누구의 목소리는 들릴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떤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지? 한국인? 유권자? 여성? 퀴어? 노동자? ‘저런 애들’이 바로 나였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광장에 있어도 나는 그 순간 직접적으로 광장에서 고립되었다.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로 근무할 때의 수요시위 현장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혐오세력들은 수요시위 무대와 마주본 상태로 차마 글로는 옮기지 못할 혐오발언을 쏟아내고, 때로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특히 청소년, 여성, 일본인 참가자가 무대 위에서 연대발언을 할 때면 더 과격한 혐오발언으로 방해했다.
이런 그들에게도 통/번역이 함께 한다. 계엄을 옹호하고 폭력을 선동하던 모 목사의 발언을 영어로 통역하던 청년이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역사부정세력 중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가 있다. 수요시위를 방해하거나 극우 심포지엄에서 통역을 맡거나 또는 각종 언론에 두 언어로 기고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언어는 무엇이길래 언어(권력)로 폭력을 행사하고 혐오를 확산하는 도구로 삼는 것일까? 나는 이들과 얼마나 다를까? 언어를 선택하고 지울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나 역시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그렇다면, 언어는 어떻게 우리 모두를 포용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노동?
통/번역 노동은 많은 경우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료들과 ‘통/번역을 하는 존재가 느껴지는 통/번역은 좋은 통/번역이 아니다’라고 자주 말하고는 한다. 이 말처럼 우리는 투명해야 한다고 요구받고 스스로 투명해지기를 훈련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통/번역 없이는 대화가 성립되기 매우 어렵다.
이는 돌봄 노동과 매우 닮아있다. 돌봄은 여전히 사적이고 여성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며, 보이지 않는(또는 보고 싶지 않은) 노동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돌봄 없이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 언어 접근성을 높이는 통/번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현장에서 통/번역은 ‘있어야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것’, 혹은 ‘영어로 대체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왜 우리는 통/번역을 ‘당연한 존재’로 여길까? 한국 사회에서 왜 많은 사람들이 영어 능력을 갖추리라 당연히 기대받는 것일까? 이런 물음 속에서 통/번역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은 사실상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겨지는 돌봄 노동자이지 않을까? 나는 분명히 몸을 가진 존재로 발화자와 함께 하고 있는데도 항상 투명해지기를 노력한다.
함께 돌보는 공동체의 가능성-<한일청년평화포럼>
2024년 8월, 한국 제주에서 <한일청년평화포럼>(아래부터 <포럼>)을 개최했다. 한국 또는 일본(또는 모두)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일 약 40명의 청년 세대 활동가들이 모여, 4박 5일간 ‘국가폭력’을 큰 틀 삼아 제주 4.3, 세월호, 제주와 오키나와 등 다양한 현장을 방문했다. 나는 <포럼> 기간 동안 이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트라우마, 기억 그리고 연대를 통/번역하며, 서로 다른 세계관과 경험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한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러던 <포럼> 중반, 한 한국 대학생 참가자가 조심스레 다가와 “통역 너무 힘드시죠...”라며 내 손에 목캔디 박스를 쥐어주었던 순간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풍경이 있었다. 통역사가 메모할 수 있게 돌아가며 마이크를 들어주고, 야외에서 서로에게 양산을 씌워주고, 통역 담당자의 세션이 길어지면 자기 말을 압축하거나 '눈치껏' 교대하고, 세션이 끝나면 각자 번역기 앱으로 대화하던 참가자들. 나는 언어 접근성이 높은 위치에서 타인의 돌봄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나만이 돌봄의 주체가 아니었다. 내 몸을 경유해서 서로의 마음을 듣고 읽고 느끼는 이들 또한 나를 돌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돌봄은 일방향이 아닌 순환하는 관계였다. 이것이 우리가 4박 5일 간 만들어낸 돌봄의 윤리가 아닐까.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 불편한 내용, 익숙하지 않은 관점이라도 경청하겠다 약속하고 실천하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통역사이자 번역가였다.
나는 이 상호의존적 돌봄을 사랑의 노동(labor of love)이라고 생각한다(모이라 와이글 2016:2024). 문화비평가 와이글에 따르면 ‘우리는 노동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욕망,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기회 삼아 스스로를 타인들과 결속하고,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를 새로이 만들어’간다. 4박 5일간 쉼 없이 돌보고 돌봄 받는 나날은 어쩌면 이것들을 모두가 함께 감각한 공동체이지 않았을까. 물론 이러한 공동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어적 접근성을 높이고, 소통 방식을 다양화하고, 권력관계를 인식하고, 감정 노동을 분담하는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나아가며:서로를 통/번역하며 함께 흔들리기
광장에서 떠오른 질문-누구의 목소리는 들릴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나는 <포럼>에서 조금 찾은 것 같다. 홍한별 작가는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에서 번역을 하는 이유를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지 않아도 번역을 할 수는 있지만(기계), 사랑하지 않는다면 번역을 할 이유가 없다'고. 경계를 넘는 용기와 사랑. 들릴 자격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와 사랑으로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곁을 내어주는 것. <포럼> 공동체가 나에게 준 배움이다.
<포럼>에서 우리는 성명서를 함께 쓰기 위해 일정 내내 느낀 것들을 각자 단어로 적어 붙이고 그것을 조합했다. 서로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참가자들이 아래에 번역을 달아주었다. 나중에 그 사진을 다시 보니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천 조각을 바느질로 엮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퀼트 같다고 느꼈다. 완벽한 소통이나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려 노력하고, 때로는 오해하고 상처받더라도 다시 말하고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시도. 우리가 건너는 다리가 흔들리더라도 서로의 두려움과 주저함을 보살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 우리는 더 나은 우리를 꿈꿀 수 있다는 그 연대의 힘이 나를 추동한다.

참고문헌
・모이라 와이글 (2016:2024). 『사랑은 노동:산업혁명부터 데이팅 앱까지, 데이트의 사회문화사』 김현지 옮김. 북이십일 아르테.
・홍한별 (2025).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위고.

유진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퀴어 페미니즘 실천 안에서 듣기, 돌봄 그리고 상호 취약성을 기반으로 한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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