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소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과 문자, 필담, 수어와 촉수화로 소통하는 농·난청인(청각장애인)이 그렇다. 음성이 아닌 언어라고 하면 수어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수어 이외에도 농·난청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다양하다. “농·난청인으로 살아오면서 저는 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해왔어요. 같은 농·난청인이라고 해도 의사소통 방식은 모두 다르고요. 저 역시 그 다양함 속에서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해왔습니다.” 더슬래시가 만난 김소희님은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농·난청인 당사자”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소희님은 문자통역서비스를 통해 농·난청인들의 사회적 소통을 돕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은 “Auditory Universal Design”이라는 영어의 약자다. 장애 유무나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보편적 설계)’처럼, 청각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자신이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사회를 지향하며 모였다.
“저는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으며 자라왔어요.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문자통역 지원은 전무했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선생님의 입 모양과 칠판의 판서를 보며 수업을 듣는 것뿐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쉬는 시간 10분 동안 친구의 교과서를 빌려서 다시 필기를 해야 했어요. 제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이 그랬습니다.”
소희님은 대학생이 되어서야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대필 도우미와 전문속기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필서비스는 일반 도우미 근로학생이 노트북에 강의 내용을 받아 적어주는 서비스인데, 아무래도 전공이 다르다 보니 내용을 받아적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나중에야 전문속기도 받아보았는데요, 타자가 확실히 빠르다 보니까 강의 내용을 바로바로 알 수 있었고,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학창시절에는 길게만 느껴졌던 50분 수업이, 대학에서 비로소 다른 친구들과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소통하는 경험은 ‘수업을 따라 잡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다. 같은 언어를 쓰는 대중들 사이에서 홀로 외국어를 사용할 때, 언어적인 고립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고립도 경험하는 것처럼, 언어는 ‘말을 주고받는 수단’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소희님에게 언어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세상과 연결해주는 하나의 다리”다. 그러나 그런 ‘다리’가 음성언어로 축소될 때, 농·난청인들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게 된다. 소희님도 그렇게 멈추어 서야하는 순간을 종종 경험한다.
“오래 정차하는 지하철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와도 들을 수 없는 순간이 있어요. 또, 자취를 하면서 정전과 지진, 화재경보 오작동을 한 번씩은 겪었는데요.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을 들을 수가 없어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특히, 화재경보 오작동이 있었을 때는 경광등이 작동했지만 안내방송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한밤중에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황급히 뛰어나갔지만,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동일한 방식으로 닿지 못하고 미끄러져버린다. 하지만 소희님은 그러한 경험 속에서 발견한 작은 변화들 덕분에, 계속 목소리를 내보아야겠다고,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멈칫하게 되는 순간 없이” 필요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장 수능 공부를 위해 수강해야 하는 EBS 수능 인터넷 강의 대부분에 자막이 없어서 막막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EBS 방송국 게시판에 글을 올렸죠. 비장애인 학생들처럼 필요한 강의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자막을 넣어달라’고요. 답이 한 번에 오지는 않았는데요. 여러 번 요구한 끝에, 여름이 되어서야, 수능 인터넷 강의 자막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공식 답변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올린 작은 목소리가 실제 변화를 만들어낸 순간이었어요.”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장애인권동아리 활동을 하며 다양한 장애유형을 마주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활동하며 ‘목소리가 가진 힘’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축적된 작은 변화의 경험들이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소희님은 “다른 농·난청인들이 세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농·난청인들이 언어의 장벽 때문에 멈칫하지 않도록, 그래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지금은 에이유디의 문자통역서비스가 서울과 경기, 인천에 한정되어 있어서, 그 외 지역에 사는 농·난청인들은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에요. 이렇게 되면 지역 격차뿐만 아니라 정보 격차로도 이어질 수 있지요. 그래서 에이유디 동료들과 함께 문자통역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제한 없이 필요할 때마다 지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

인터뷰이/ 김소희
농·난청인을 위한 문자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기관문자통역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어/ 가연
피스모모 리서치랩 실장.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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