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더슬래시의 주제는 평화와 일입니다. 평화 활동을 주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평화 활동에 진심인 세 분의 필진, 효니, 졔졔, 주원에게 글을 부탁했어요. 세 분은 피스모모의 오랜 회원이기도, 더슬래시의 열렬한 독자이시기도 합니다. 평화라는 아젠다는 참 크고 넓어서, 평화/교육 단체에서 상근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도 ‘평화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참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평화 활동가 답지 않게’ 매일 일어나는 이슈와 상관없이 일상을 살아갈 때가 너무 많으니까요. 평화 활동가라면 모든 일에 세심하게 감각하고,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행동에 앞장서야 마땅하다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기대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은 커녕 ‘평화’와 관련한 활동조차도 하지 못하던 시기에 저는 당당히 '평화 활동가'이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평화 활동가의 영역을 일상에서 분리하지 않았지만, 평화 활동가라고 한다면, 모름지기 평화 단체에 소속되어 대가를 받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며, 팔레스타인지지 활동은 물론, ‘각종 평화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졔졔도 “저는 활동가로 소개되기엔 자격이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일'의 사전적 정의에는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라는 두 가지 목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평화라는 지향을 위해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이라면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지향과 현실이 부딪히는 일은 종종 발생합니다.
마케팅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지만, 피스모모의 오랜 평화교육 진행자인 효니는 기업의 의사 결정과 수익 창출을 위한 설문 조사 과정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삶’이 너무 적은 응답(Too small sample)으로 배제되는 순간을 불편하게 마주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며, 소수의 목소리도 귀담아듣는” 평화교육의 관점과 통계학적인 관점이 충돌하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효니는 “통계학적으로는 합리적이고, 분석 효율성 관점에서는 타당한 절차”이지만, “누군가의 삶이 오류로 취급되거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이 구조적으로 평화적”일지 자주 흔들리며, 고민한다고 말합니다.
“전쟁 장사하는 기업의 계열사”에서 일한다는 졔졔는 “직접 전쟁 장사에 가담하고 있진 않지만, 같은 계열사에서 돈벌이한다는 건 가깝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연루되고 가담하는 일”이라며, 본인은 “주중엔 평화에 반하는 일, 퇴근 후와 주말엔 평화에 합하는 일 사이에서 양발을 걸치고 가랑이가 찢어지는 삶”을 산다고 표현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Pureun
구독자만 읽을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