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쩐지 어떤 글도, 그림도, 영상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80주년을 맞은 광복절과 75년이 흐른 6·25, 올해로 벌써 여덟 번째를 맞는다는 일본군‘위안부’ 기림의 날, 처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가자의 학살, 한국을 찾아 진실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생존자의 소식, 한때 시끄러웠던 여가부 장관 인선 논란, 수많은 사건 사고들까지… 기억하고 곱씹을 일들도, 또 분노하고 고민할 일들도 너무나 많은 여름인데, 정수리를 뜨겁게 덥히는 열기와 함께 제 머리의 여기저기도 익어서 작동을 멈춰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딱 맞더라고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막함도 함께 찾아왔고요.
그렇게 이제는 뭘 생각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싶은 지경에 이른 채, 한동안 하루하루 눈앞의 일들을 해-치우기 바빴습니다. 그러던 중에 몇 편의 한국 현대문학 중단편 작품들을 훑어볼 일이 있었습니다. 국내 정규교육 과정에서 이름깨나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들이었죠. 한 주에 한 작품씩 총 여덟 작품을 한 청소년과 함께 읽는 사이 제가 받은 질문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아내를 막 때려요?” “진짜 죽은 거예요?” (김동인 <배따라기>) “요릿집은 그냥 레스토랑 같은 거 아니에요?”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 “아내는 어떻게 돈을 버는 거예요?” (이상 <날개>) “갈보집은 뭐예요?” “유곽은?” “은근짜는?” “이십전이면 지금으로 치면 얼마나 되는 거예요?”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매당집은 또 무슨 집이에요?” “뚜쟁이는요?” “왜 첩으로 살아요?” (염상섭 <삼대>)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저는요, 뭐랄까,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막 때리는 게 당시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어” “정말 죽은 거지” “그냥 음식점은 아니고… 여자가 옆에서 시중을 들어주는 곳이야. 예전엔 정치인이라든지, 높은 사람들이 자주 가는 데였는데……” “내객들이 아내한테 왔다 가면 돈을 놓고 간다고 했지? 이건 그러니까 일종의 ‘매춘’인 건데, 매춘이 뭐냐면……” “갈보집, 유곽, 은근짜 전부 옛날에 매춘이 이뤄지던 곳을 부르는 거야” “글쎄, 그때 이십전이 지금 얼만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 반응을 봐서는 하여튼 엄청 터무니없게 적은 돈이었겠지?” “매당집이나 뚜쟁이나 다 포주 같은 건데, 포주는 또 뭐냐면……” “옛날엔 첩이 흔했어. 선생님이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에는 가끔 둘째 부인이 있는 할아버지가 막 있고 그랬었어. 그래서 한때는 축첩 반대 운동이라는 것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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