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이 컬처덱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추상적이거나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다

2025.03.31 | 조회 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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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시간

뻔하지 않은, 뇌리에 꽂히는 조직문화 이야기를 들려드려요.

생각해보자. 원팀, 몰입, 혁신, 도전... 좋은 말들이 핵심가치 삼대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럼 우리의 조직문화는 곧 핵심가치 그 자체인가? 

 

일단 여러분의 회사의 문화는 어떤 풍경으로 규정되는 것인가. 구성원들이 일하는 모습? 회의실의 모습? 또는 한 달에 한 번 소풍을 놀러가는 모습? 사실 이 모든 것은 수많은 문화적 메커니즘에서 발생하는 결과값 또는 표면으로 드러난 '표상'일 뿐이다.


조직문화는 눈으로 보이는 그 풍경 아래에 존재하는 작동원리에 가깝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조직문화 프로젝트를 하나 가정해보자.

  • 대표님이 멋진 단어를 마구 쏟아내고
  • 조직문화 팀은 그걸 받아적고 있다.
  • 그리고 구성원 서베이나 워크샵을 진행했고
  • 정리해서 하나의 결론을 냈다.
  • 그리고 다시 대표님께 보고하자, 까였다.
  • 대표님은 '밸런스'란 단어 대신 좀 더 강력한 '돌파' 라는 단어로 하자고 했다.
  • 워크샵이나 서베이에선 그런 단어가 나온 적이 없다.
  • 그러나 그냥 돌파를 핵심가치로 추가하기로 한다.
  • 그리고 거기에 맞는 설명을 적었다.
  • 더불어 구체적인 행동가이드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 왜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결국 흩어질 것이라고 한다.
  • 뭔가 말이 되는 듯해 끄덕이고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모은다.
  • 그리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세세한 가이드를 20개 정도 만들어 체크리스트처럼 도출했다. 
  • 이제 체크리스트가 평가항목이 되고, 사람들의 행동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보기에 이 회사의 문화는 돌파인가? 

 

아니라면 회사의 문화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이 회사의 문화는 [강력한 탑다운과 구체적 통제]이다.

이것이 문화다. 이 회사엔 돌파, 몰입, 헌신, 겸손, 존중, 소통 등 엄청 많은 핵심가치가 가득하지만, 그것은 그냥 '추구미'일 뿐이다. 또는 대표님이 원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상에 가깝다.

 


문화를 증명하는 건 써진 단어가 아니라,써지는 원리이다. 

 

원리를 살펴보자. 큰 돈 들여 워크샵을 했고 애써 서베이를 진행했고, 비싼 전문가를 모셔다가 레포트를 만들었지만 그렇게 필요하다고 했던 구성원의 의견은 결국 묵살되었고,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내뱉은 대표님의 단어가 핵심 가치로 쏙 들어간다. 인간관을 살펴보자. 이곳은 구성원이 스스로 개념을 이해해 판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통제하고 평가한다. 이것이 이 회사의 진짜 문화다. 




그걸 컬처덱에 담을 수 없잖아요...

 

음? 그럼 컬처덱엔 무엇을 담아야 하나? 컬처덱은 조직의 '문화원리'와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행동'을 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오히려 이 회사에서 필요한 건 존중과 배려, 원팀과 소통보다

  •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대표님의 변덕을 견뎌낼 인내심
  • 그러려니의 마인드
  • 이해가 되지 않아도 적당히 알아듣는 눈치
  • 안정적이고 구체적인 가이드에 순응하는 자세

오히려 이것들을 더 원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해한다. 이대로 적었다간 블라인드에서 몹시 유명해질 것이고, 뉴스에 날 지도 모르겠다. 너무 날 것의 언어이니 살짝 순화시킬 순 있겠다. 

  • 상황변화에 재빠르게 대처할 유연함
  • 상황을 과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단단함
  • 결정된 사항을 존중하는 팔로우십
  •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정확함

이 정도는 어떤가. 하고 싶은 말이 꼭꼭 숨어 있는데다, 가스라이팅으로 바뀔 위험이 커보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방향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겠지만 이건 슈가코팅일 뿐이고, 구성원들이 고개를 가로저을 기만이자 헛소리이다. 이렇게 쓰지 말자.


만약 이러한 문화를 인지하고 있고 진짜 개선을 원했다면 

[경청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율의 확장]정도의 내용이었어야 한다. 현재 문화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이 문화를 어떤 다른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현재 모습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우린 미친 탑다운과 엄청난 통제를 할 거예요] 라고 쓰거나, 적당한 정치적 수사로 포장해서 [우린 체계가 존재하고 이 체계를 이해,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정도로 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규칙있음' 같은 개념을 탄생시킬 수도 있겠지. 

 


우리 회사의 문화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 자체를 보자.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조직 문화 프로젝트 그 자체를 살펴보자. 의사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 까라면 까는 방식?
  • 모든 선택항을 다 고려해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선택하는 방식?
  • 아니면 구성원을 기만하거나 속이거나 포장하는 방식?
  • 완전한 솔직함을 드러내고 거칠어도 그것을 정제하지 않는 방식?
  • 강력한 리더십을 전제로 모든 의사결정이 일원화 되어있는 방식?
  • 또는 자율적으로 수행하고 수행자 자체가 결과에 책임지는 방식?
  • 최소한의 룰에서 자유롭게 결정하되, 책임은 조직이 지는 방식?

어떤 것이든 나쁜 방식이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한, 나쁜 문화란 오직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에만 해당한다. 그 외에는 특성과 스타일로 이해하고 싶다. 이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진실이다. 이를 찾아내고 먼저 긍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문화는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 첫 스텝에서 꼬이기 시작한다. 혼란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한다. 

  • 대외적으로 이렇게 말하면, 채용이 안되지 않을까?
  • 이건 멋지지 않은데?
  • 이건 약간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
  • 그건 일부분이야. 어쩔 수 없으니 하는거지.
  • 아냐아냐 나는 착한 사람이야. 인정할 수 없어.
  • 이 모든 건 고객을 위해서야! (아니다, 그냥 당신의 가치관이다.)

대부분은 두려움과 통제욕구, 과시욕 같은 묵직하고 깊은 곳에서 시작된 혼돈이다.

외부에 어떻게 보일까, 직원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또는 시리즈B 받았으면 적어도 이 정도 핵심가치는 써줘야 하는 거 아냐? 이런 합리화로 멋짐을 좇기 시작하면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순화된 표현 정도가 아니라, 전혀 진실과 다른 허구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어린이가 아니다. 성인이고, 똑똑하며 복잡한 일을 수행할 정도의 역량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다. 글자로만 보면 중학생도 알아들어야 할 단순한 댄어들을 놓고 '공감하지 못하겠어요.' 라고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이 어렵고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펼쳐지는 자명한 원리와, 우리가 외치는 단어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단어를 이해시킬 구체적인 사례가 아니라, 긴 침묵과 고민, 진실된 질문. 그리고 깊은 욕망들을 인정할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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