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덱은 문서 나부랭이가 맞다. 써놓고 쳐박아 놓으면 이면지인지 폐지인지 알 수 없을 것이고, PDF라면 어느 순간 이메일 67페이지에 잊혀진 첨부 파일로 끝나거나 야동보다 더 깊숙한 폴더 트리 안에 갇힌 아즈카반의 죄수처럼 썩어가는 것이다.
우선 컬처덱이 무엇인지 하나만 확인해보자.
행동강령은 상식적인 '직원'이 되길 바라고
컬처덱은 우리다운 '멤버'가 되길 바란다.
NOT CULTURE DECK
택배박스 보이면 들고오라거나, 지각하지 말아라, 인사해라, 욕하지 마라, A4용지를 집어던지면 안된다, 말은 핵심만 말해라, 효율적으로 일해라, 우선순위 잡아라... 이런 내용들은 5,000년 전 피라미드 지을 때나 지금이나 모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규율을 잘 지키고 벽돌을 최대한 많이 나르는 생산성 좋은 직원이 되길 바란다면 이런 것들을 강조하면 된다. (물론 이런 규정도 몹시 중요하다)
BE CULTURE DECK
컬처덱은 저런 기본기를 얘기하지 않는다. 우린 지역까지 사랑해야 한다, 지구를 위해 일한다, 뭐든 회사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선택해라, 우리는 하나의 문제만 해결한다, 직접 소비자를 경험해본 사람만 멤버의 자격이 있다,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 즐거운 방향으로 제안하라, 모든 걸 숫자로 얘기한다... 처럼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는 '뭐 저런 미친 사람들이 있나...' 싶은 색깔을 얘기한다.
그러니, 제대로 이해해보자.
이건 도덕율이 아니라, 컬처덱이다. 우리 조직이 얼마나 선명하고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훈계나 가정교육, 상식, 도덕선에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뭐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지금 내가 컬처덱을 만드는지, 강령을 만드는지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강령, CoC, 가이드, 업무원칙 | 컬처덱 |
상세한 규정과 행동양식 | 행동의 대원칙과 색깔을 분명히 말함 |
지키지 않았을 때를 말함 | 지키는 사람이 신뢰받을 수 있다고 말함 |
안 지키기는 사람을 기준으로 말함 | 지키는 사람을 기준으로 말함 |
이러면 안된다고 말함 | 이래야 한다고 말함 |
규정과 평가, 통제에 포커스 | 신뢰와 문화적 일관성에 포커스 |
컬처덱에 들어가는 내용은 단순하다.
1. 우린 다른 회사와 다른 개쩌는 문화가 있다.
2. 왜냐면 우린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그러니 여기서는 이런 행동을 해야 신뢰받는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름'과 '정도의 차이'를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보통 컬처덱을 쓰면 '미친 몰입, 미친 목표, 미친 실행력...'과 같이 다들 미쳐있는 무언가를 원하는데, 이건 만두를 빚을 때나 일을 할 때나 동일하게 요구되는 태도다. 표현의 정도가 다르다고 문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민주주의'와 '존나 민주주의'는 사실 아무 차이도 없다.
필자
그러니, 우리만의 제대로 된 컬처덱을 만들고 싶다면 3가지를 먼저 확인해보자.
1. 분명하게 개쩌는/독특한/이상한 아무리 봐도 설명이 필요한/외부에서 봤을 때 심히 유니크한/우리만 알고 있는 행동패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지향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2. 그리고 이걸 지키지 않는 사람을 조져버릴 목적이 아니라, 분명히 이걸 지키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멤버들에게 상처 받았거나 눈에 거슬리거나, 하아..손톱 좀 안 깎았으면, 일하는 시간에 핸드폰 좀 안 했으면, 제발 자기 자리 청소 좀 했으면, 왜 공유를 이렇게 안 하지?, 왜 보고를 이따위로 하지? 라는 불만에서 출발했다면 그냥 '사내 규정'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계몽시키거나 아니면 집에 보내거나, 뽑지를 말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집단생활 에티켓과 5천년 넘게 이어진 노동자의 덕목은 컬처덱에 들어가는 내용이 아니다.
3. 구성원은 믿지 못하겠다면 아예 만들지 마라. 컬처덱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꼭 이런 경우가 있다.
- [도전]만 적어놓으면... 소통을 안할 것 같은데..
- [소통]만 추가하면 [혁신]은 어떻게 하지?
- [혁신]을 적어놓으면 [공유]문제는 어떻게 하지?
- [공유]하란다고 너무 많은 걸 공유하면 어떻게 하지?
..... 이렇게 가다보면 걷는 법부터 말해줘야 할 거다. 구성원은 바보 멍청이가 아니고, 만약 저렇게 하나하나 말해줘야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건 조직문화가 아니라 채용의 실패다. 애당초 구성원을 [하나하나 강하게 말해야 들어먹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냥 대놓고 앞에서 잔소리를 하자. 컬처덱이라고 이름 붙이고 정성스런 잔소리 모음집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이다.
물론 컬처덱은 독특한 것만 골라서 적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향점'이다. 직원들의 불성실이나 일부 인원들의 분탕질을 통제하고 제지하기 위해 만드는 문서가 아니다. 또는 대표 자신이 불안해서, 그냥 뭔가를 정리하고 싶어서 만드는 문서도 아니다. 뭘 적든 그것은 기업의 마음이지만 적어도 '왜 이런걸 적고있지? 이게 본질이 맞나?' 라는 질문을 놓진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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