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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시선] 현상설계 어디까지 해봤니

건축의 공모전, 현상설계란 무엇일까.

2023.10.18 | 조회 4.7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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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마이서티즈

멈춰버린 우리 30대의 삶에 우리만의 향기가 한방울. 개인의 취향 가득한 30대인 저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어요.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안녕하세요. [건축가시선]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 고찰들, 이야기들, 현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현상설계? 

가양동 주상복합 현상설계 계획안
가양동 주상복합 현상설계 계획안

창작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분야에는 공모전이 있다. 문학창작 공모전, 산업디자인 공모전, 포스터 공모전, 네이밍 공모전 등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모전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한 사람의 좁은 시야에서 바라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대안들이 공모전을 통해 탄생한다. 이러한 공모전이야 말로, 순수하게 다양한 접근법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건축 또한 창작의 한 분야이기에 수 많은 공모전이 있다. 대학교를 다니던 건축학도 시절 방학이 되면 두세명이 자발적으로 팀을 이뤄서 공모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수상도 해보고, 낙방도 해보면서 공모전의 맛을 알아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의 세계로 들어오자 공모전은 현상설계라는 이름의 공모로 변화되어 단순 아이디어 공모가 아닌, 설계권을 따오는 방식으로 좀 더 디테일해졌다. 학생 때와 다른 점이라면 단순히 새롭고 신박한 아이디어로만 접근했던 설계방식이 아닌, 법규부터 규모, 면적 등 현실적인 울타리안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이라면 학생 때는 자발적인 몇몇이 모여 이루어진 건축집단이었지만, 일로 만난 사람들이 회사 일이라는 미명아래 수행하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는 점도 있겠다.

 

# 첫 현상설계, 그 맛을 보다

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첫 회사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형 건축사사무소였다. 직원만 1000명이 넘고 매년 그 숫자는 증가했다. 동시에 돌아가는 프로젝트는 수십개가 되었고, 강력한 집단지성의 힘을 경험한 곳이었다. 입사 후 신입교육이 끝나고 배정받은 첫 프로젝트는 역시나 현상설계였다.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들어갔고 나의 역할은 보고서 소스를 만들고, 신입사원으로서 이것저것 필요한 일에 불려다니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역할이었다. 첫날부터 야근을 하고 첫 주말부터 출근을 했다. 이것이 현상설계구나를 온 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나의 첫 프로젝트를 몇 주간의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마무리하고, 느낀 소감은 의외로 [재미있다] 였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인 대략 10명의 인원이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기하게도 멋져보였다. 프로들의 세계에서 나도 그 일원이 된 느낌이 들었고, 밤을 꼴딱 새고 맞이한 디데이에 제출물을 제출하고 난 뒤의 뿌듯함과 홀가분함, 그리고 당선의 기쁨. 그 맛을 봐버렸다. 그렇게 현상설계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강남역 현상설계 계획안 - CG
강남역 현상설계 계획안 - CG
강남역 현상설계 계획안 - 모델링
강남역 현상설계 계획안 - 모델링

# 현상설계, 어디까지 해봤니

현상설계는 가장 최초의 계획안이다. 발주처의 요구조건과 프로그램에 맞춰 각각의 회사는 각자의 생각과 컨셉으로 설계안을 제출한다. 아무래도 초기안이다 보니 약간의 비현실성도 섞여 있고, 과감한 디자인, 시선을 확 끄는 제안이 들어가있다. 현상설계가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실제로 지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허가 이슈, 시공이슈, 경제적인 이슈들로 인해 평범해지고, 얌전해지고, 조용해진다. 건물의 초기 멋지고 과감했던 공간들이 옹색해지는 경우가 더러있다. 이러한 과정도 건축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지만,  건축가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좋은 공간을 상상하고, 이미지화 시키는 이 초기 계획안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 어떤 것도 처음의 모습은 완벽할 수 없다. 대략 20개의 크고 작은 현상설계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대형 쇼핑몰부터, 아주 작은 주민센터까지, 그리고 신입사원부터, 팀장까지 차근차근 그 역할도 다양하게 경험했다. 그렇게 중독된 현상설계에서 과연 어떤 것들이 남았을까.건축가에게 현상설계를 많이 한 경험이 어떤 능력을 키워낼 수 있었을까.


# 결국 건축은 공간과 상상

건축은 결국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그 시작은 비어있는 땅에서 부터 시작한다. 비워진 땅을 보며 어떤 공간을 상상하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180도 달라진다. 그래서 현상설계에서 건축가들을 모두가 서로 다른 방향의 계획안을 제출하고, 서로 다른 상상을 하게 된다. 맞고 틀림은 없고, 어느정도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공간이 좋고 나쁨은 존재하는 것 같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경제적인 사항들, 법적인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최적의 공간을 설계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라도 누락이 되거나 간과된다면 좋지 못한 공간이 탄생하게 된다. 최고의 공간이 아니라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 아닐까. 건축가는 결국 다양한 이슈들을 분석해서 공간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직업인것 같다. 현상설계는 그러한 능력을 짧은 시간에 강도높게 훈련 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이 혹독하고, 피를 말리기는 하지만 그 만큼 얻어가는 것들이 달콤하다. 


# 현상설계는 기본적으로 기획과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건축법규와 규모검토는 기본적인 것이고 어떤 기획과 어떤 디자인으로 계획하느냐가 당선의 유무를 가린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디자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팀원들 모두가 하나의 대안을 만들어 초기 디자인 방향을 정하고, 정해진 방향에서 더 디벨롭된 디자인 대안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대안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디자인을 연구하고, 습득하고, 보는 눈을 키워가는 수련의 과정이 된다.많은 현상설계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디자인을 제안하고, 디벨롭하고, 대안을 만들어내고 하는 과정이 즐겁고 신나는 작업이었다. 건축은 역시나 예술의 영역이고 디자인의 업역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방정환 교육센터 현상설계 디자인 대안 작업
방정환 교육센터 현상설계 디자인 대안 작업
주상복합 문주디자인 대안 작업
주상복합 문주디자인 대안 작업


# 물론 현상설계 낙선에 대한 대가는 크다. 물론 직원으로서는 아무 문제 없지만, 회사입장에선 투여된 시간, 인력, 돈 모든 것이 그저 좋은 투자 였다. 라고 생각 해야한다. 현상설계 공모는 많지만, 그만큼 설계사무소의 숫자도 많고 당선률은 희박하다. 꾸준한 도전과 투자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떠해야하는지 아직도 고민이다.

 


# 공공현상설계. 가치있는 건물을 만들기 위한 방법? 

우리나라에선 용역비가 2000만원이 넘어가는 공공 설계의 경우 공공현상이나, 입찰 방식을 사용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공공건축물 설계는 현상설계를 한다. 전국의 수많은 공공건축물 현상설계 공모가 매일같이 업데이트된다. 첫 회사에선 대규모의 민간 현상설계를 위주로 프로젝트를 했다. 쇼핑몰, 주상복합, 물류센터 등등 민간에서 주도하는 현상설계라 심사위원이 발주처인 상황이다. 그래서 더 좋은 제안, 더 멋진 계획안이 당선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첫 회사를 나와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하고, 공공현상을 마주했다. 전국의 수많은 작은 규모의 공공 건축물에 대해 나오는 공공현상에 여러번 제안했지만 모두가 낙방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규모와 익숙하지 않은 제출물이 원인이라 생각했지만, 공개된 당선작들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주아주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건축계의 공공연한 현실이 있었다. 일부의 굵직한 공공현상은 공개 심사와 인정받는 심사위원들로 구성되어 투명하고 진짜 좋은 건축을 찾기위한 노력이라 보여지지만, 지방의 작은 공공현상들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공사비 또한 한정적이고, 좋은 건축을 찾기위한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경쟁률이 그리 치열하지도 않다. 부족한 예산, 투명하지 못한 심사, 이로 인해 치열하지 않은 경쟁률 등 많은 것들이 좋은 건축을 만들기위한 공공현상설계의 취지에서 어긋나게 된다.    

강진 반다비 체육센터 계획안
강진 반다비 체육센터 계획안

#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필요를 알고, 취지도 있으며, 제도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행이 아쉽다. 오래된 건축의 관습과 관례를 깰 필요도 있으며, 상대적으로 지방의 건축물에 대한 관심부족과, 아쉬운 예산 편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 개선되었으면 한다. 나라장터에 올라오는 수많은 건축 기회들이 이러한 몇번의 경험으로 필터링이 되어 보여진다는 것이 젊은 건축인으로서 많이 안타깝다.

 

# 이제 우리 건축을 해보자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일정부분 예술의 영역이고, 수십년동안 도시경관에 기여하게 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할 일이다. 건축을 하다보면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제약들, 법규들, 우리가 놓쳐버리는 수많은 실수들, 시행착오들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현실을 어렵게 만든다. 아무리 작고 가벼운 건물일지라도 그 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고, 수백번의 수정과 확인이 이루어진 다음에서야 비로소 건물로 탄생한다. 이러한 과정이 건축을 하는 즐거움이고 건축가가 존재해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업계 관례와 관습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볍게 취급받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건축 수준도 과거에 비해 보편적으로 꽤나 높아졌고, 많은 스타건축가들이 탄생하고 있다. 유투브에도 많은 좋은 건물들이 소개되고, 다양한 매체에서 건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더 좋은 공간, 더 좋은 건축물들이 탄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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