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건축가시선]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 고찰들, 이야기들, 현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건축모형
대학의 건축학과에서 하는 건축 설계수업은 단순히 교수님이 교과서를 가지고 이론수업을 하는게 아니라 각자의 주제, 혹은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정해진 대지에서 설계를 한다.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한명의 교수님 반에 들어가 한학기를 보낸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에서 두번 정도 교수님과 마주앉아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하며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없다. 대신 중간 크리틱, 기말 크리틱이라고 불리는 발표수업이 있을 뿐이다. 중간, 기말 크리틱에서는 우리반 학생, 우리반 교수님 뿐만 아니라, 그 학년의 전체 반, 전체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 발표를 하면서 교수님들의 날카로운 크리틱에 울고 웃고 하는 시간을 보낸다.오전에 시작한 발표는 전체학생들의 발표가 끝나면 어둑어둑한 밤이 되고 모두가 지친상태로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피 말리는 발표를 위해 학생들은 준비할게 많다. 그동안 설계를 진행하며 나온 결과물, 그리고 그 과정을 좋은 이미지와 다이어그램, 패널, 그리고 모형을 가지고 발표를 하게된다. 건축학과 학생들이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밤을 새는 이유다. 우리는 그렇게 공부하고 성장해왔다.
# 완성된 설계안을 가지고 도면을 그리고, 설명하기 좋은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발표할 하나의 패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보기 좋은 모형을 만든다. 패널은 어찌어찌 컴퓨터로 뚝딱뚝딱 만들지만 모형은 과연 어떨까.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 이 건축 모형을 도대체 왜 만들어야하는 걸까?
# 건축모형은 우리가 건축물을 한눈에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인간의 스케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공간을 건축가는 우리의 스케일로 바꿔서 파악하기 좋은 모형을 만든다. 그 모형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더 나은 상상으로 유도할 수 있고, 건축가의 의도를 아주 직관적으로 전달해 줄 수 도 있다. 설계한 전체 건물을 모형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분모형을 만들기도 하고 단면모형을 만들기도한다. 보여주고 싶거나,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을 조금 더 큰 스케일로 만들어 보여준다.그렇기에 모형엔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답은 없고, 그저 건축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면 좋은 모형이 된다.
#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교수님이 모형 만들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축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수련의 과정 뿐만아니라, 모형을 만들면서 설계 오류를 파악하기 위함도 있다. 3D 모델링 툴이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라 굳이 모형을 만들면서 파악해야만 하겠느냐마는 모니터속 모델링으로 보는 건축물과 건축가의 직접적인 시선에서 손끝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건축물에는 차이가 있다.
# 모형을 만드는 이유?
1. 초기의 스케일 파악
건축모형을 만들때는 꼭 일부분의 주변 모형을 함께 만들어서 이 건물이 주변 도시공간과 잘 어울리는지도 파악한다. 하지만 모니터속 모델링에서는 이런 주변과의 스케일적인 조화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모델링을 하다보면 우린 마우스 스크롤로 무한히 확대되는 모델링의 마법에 빠져버린다. 전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보단 과한 디테일, 그리고 시선의 왜곡, 가짜 시선을 만들어 낸다. 결국 우린 건축물을 우리의 눈으로 보게 된다. 가장 정확한 것은 우리눈으로 바라보는 모습과 뷰이다. 적절한 스케일을 파악하고, 주변과의 조화를 생각하고 매스 모형을 깎아가며 실제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 느린 건축
건축은 언제나 상상으로 시작해서 고민과 수 많은 스케치를 거쳐 탄생한다. 즉 생각과 고민이 기본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야 좋은 건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 3D 모델링은 이런 생각과 고민을 덜하게 된다. 빠르게 움직이는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과 키보드에 얹어진 왼손은 우리가 가만히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잡아먹는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가며 말그대로 뚝딱 만들어내기는 사실 쉽다. 한때는 빠르게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내고 빠른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것이 나의 강점으로 인식하고, 일을 잘한다는 평판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사실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우리의 목표는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게 아니었나. 빠르게 다양한 디자인을 양산해내는게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좋은 건물을 딱 하나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느리지만 고민이 담겨있는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데는 모형을 만들는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할때가 많다
3. 파이널 모형의 설득력
잘 만들어진 모형은 잘 그려진 CG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기본적으로 cg는 어느정도의 과장이 들어가고, 시선과 뷰의 왜곡이 포함되어있으며, 과한 빛의 효과가 들어가 있다.어느정도 용인되는 건축cg의 효과이지만 우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결국 cg는 이미지일 뿐이고 실제 지어진 모습이 이와 유사할 뿐 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형은 다르다. 모형은 실제 손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고, 왜곡이 불가하고, 사람의 위치과 시선에 따라 그 모습이 정확하게 보여진다. 삼차원의 모습을 두 손으로 돌려가며 볼 수 있고, 실제 지어지면 이런 모습이겠구나는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잘 만들어진 모형은 주변과 조화롭고, 사람의 시선을 현혹시킨다. 즉, 건축가에게 모형만큼 설득력 높은 재료는 없다.
# 버려지는 아까운 모형들
현상설계(일종의 공모전)를 진행하면 모형을 함께 제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 모형은 단순히 학생때의 스터디 모형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모형 전문 업체에서 제작하며 그 비용또한 만만치 않다.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 수백만원에서 천만을 넘는 모형도 많다. 일반인들이 주로 보는 분양사무소의 공동주택 분양모형이 건축모형을 대표하는게 현실이지만, 사실 일반인들이 보지 못한 수 많은 고민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모형들도 많다. 현상설계 당선작이 준공이 된 후 로비에 멋드러지게 전시가 되기도 하지만, 그 하나의 당선을 위해 수많은 건축사무소에서 제출한 건축모형들도 많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만들어져 함께 제출된 건축모형은 당선에 실패하면 버려진다. 지어지지 않는 건축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제출된 모형을 가지고와 사무소에 전시하기도 하지만 전시라기 보단 보관에 가깝다. 수많은 시간과, 밤새 설계한 건축가들의 소중한 고민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건축모형,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아무렇게나 방치되어있는 먼지쌓인 수많은 모형을 보면서 저것들을 한데모아 전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건축모형을 잘 볼 일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우리의 작품을 소개하고, 비록 지어지지 않았지만, 지어진 현재 건물과 비교해볼 수 도 있고, 이렇게 지어졌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볼 수 도 있는 의미있는 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전시를 통해 사무소를 홍보할 수 도 있고, 우리의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또한 보수적으로 천천히 발전하는 건축 산업에서 단순히 아날로그적이고,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건축설계라는 분야에 또 다른 비지니스 모델을 확장할 수 있는 트리거로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축은 언제나 예술의 영역이었다. 지금은 사업과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건축은 건축적 실험을 통해 발전해왔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어왔다. 예술은 작품이 될 수 있다. 그 작품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고, 다양한 루트로 시선을 끌게 된다. 하나의 건물을 짓기위해 행해왔던 다양한 스터디 모형들, 그리고 파이널 모형, CG들, 심지어 도면들 까지 예술 작품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건축 전시
이따금씩 발표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건축전시는 언제나 큰 이슈가 된다.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진행했던 안도다다오의 건축전시, 그리고 서울에서 열린 헤더윅전시 등 유명 건축가의 작품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종종 열린다. 전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북적인다. 사람들이 이렇게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건가. 유명한 건축가이기에 그 효과가 클 수도 있었겠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현상이다. 우리는 유명하지도 않고, 많은 건물을 지어보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고민을 공개하고, 우리의 작업을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람들이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면 문제 많은 공공건축의 현상설계와 건축 설계의 수준, 그리고 눈높이를 어느정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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