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시선

[건축가시선] 지어지지 않는 건축물의 의미

구축되지 않는 건축에 대한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2024.04.04 | 조회 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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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레터

평범한 30대 직장인 건축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안녕하세요. [건축가시선]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 고찰들, 이야기들, 현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건축에서 한가지 딜레마가 있다면 그것은 건축이미지, 건축CG의 중요성 일 것이다. 모두가 이 건축 이미지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그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가 경험했던 건축에선 그랬다. "이미지 그거 중요한 건 알겠는데, 더 중요한 것은 계획이고, 컨셉이고, 발전방향이다." 학교에서부터 줄곧 들어온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멋진 건축이미지에는 감탄해 마지않는다. 참으로 딜레마다. 프로의 세계로 들어온 후 그런 건축업계의 경향은 더 뚜렷했다. 건축 이미지, 건축CG는 무조건 외주의 영역이었다. 그나마 학교에서의 작업은 최종이미지를 내가 한땀한땀 고민하며 만들어갔다면, 프로의 세계에서는 그 마저도 전문업체에 맡긴다. 요새는 조금 나아졌지만 대략의 모델링 후 사례이미지를 주면서 "이렇게 해주세요~" 한다. 전문업체에 맡긴다는 의미는 더 잘하는 사람에게 더 멋지게 만들어 달라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그런 것 까지 하기엔 인건비와 시간이, 즉 리소스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해온 이미지 물론 멋지지만,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진짜 건축이 아닌걸까.

# 건축의 A to Z를 논한다면 빈 대지로부터 시작해서 완공된 건축물로 끝이 난다. 완공 후엔 사용승인과 입주, 분양, 관리, 유지보수 등등 다양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건축가의 영역에선 빈 대지 to 완공된 건물이다.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이 걸리는 이 느리고 긴 템포를 이해한다면 건축이미지 제작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초기의 계획과 멋드러진 이미지는 수시로 변경되기 마련이고, 그 변경은 대부분 현실성(시공과 경제적 문제 등)문제로 다운그레이드되어간다. 그래서 컨셉과 개념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결국 남는 것은 멋진 디자인이 아니라, 초기의 개념 정도. 그마저도 남아있다면 다행. 이렇게 디자인을 바꿔도 우리 초기 개념은 살아있잖아? 라며 애써 위로하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다면 초기의 멋진 이미지, 현상설계 때 제출했던 그 대단했던 조감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주구장창 만들어왔던 지어지지 못한 디자인들, 이것은 나의 고민이자 딜레마였다. 

# 이제 후배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지어지지 않는 이 건축계획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막연히 지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이 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나는 건축 선배로서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 대부분의 직장인들, 사회인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주변엔 온통 같은 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매일 만나는 직장동료는 당연하겠거니와 협렵하는 업체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학교 선후배들 비슷한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린 우리의 업에 너무 젖어들어 우리 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랜만에 만난 건축인이 아닌 내 오랜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하는 일은 마치 컨셉카를 만드는 일과 같아 보여. 신기하고 재밌어>

# 젖어있는 휴지 같았던 나의 건축고민에 새로운 뽀송한 휴지 한 롤을 가져다주었다. 자동차 회사에서 매년 내놓는 신차나 페이스리프트 등 멋진 것은 알겠지만 약간의 변형은 당연한 결과물이나 흔해 빠진 시시한 결과물에 불과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이따금씩 등장하는 그 회사만의 컨셉카를 보며 우린 기술력을 확인하고, 디자인에 감탄하고, 실제로 만들어져 상용화되면 어떨까를 상상한다. 그 회사의 미래를 기대하고 인정하고, 관심을 끌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컨셉카이다. 때로는 영화나 광고에 나오기 위해 제작하기도 하며 특수한 제작 목적과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도 자리 잡고 있다.

현대 아이오닉 컨셉카 'SEVEN'
현대 아이오닉 컨셉카 'SEVEN'

# 초기의 건축제안도 어찌보면 이 컨셉카를 만드는 일과 같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지어지지는 않지만 그 대지의 이상적인 디자인과 계획을 볼 수 있고, 그 회사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지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열린 결말과 같은 건축의 컨셉카. 나는 이 컨셉카라는 단어가 머릿속 깊숙한 곳에 잠식되어 있던 나의 고민의 뭉텅이를 바깥으로 끄집어 내준 기분이 들었다. 지어지지 않으면 의미없다고 생각했고, 매번 사장되어 갔던 나의 디자인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주었다. 그래 디자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당시의 나의 고민이 녹아있는 수많은 디자인에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지 못해 서버 깊숙한 곳 한켠에 방치되어있는 나의 지난 작업물들, 기록들을 하나씩 끄집에 내어 새로운 컨셉카를 만들어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려고 한다. 어리숙했던 지난 디자인들을 디벨롭하고, 당시의 고민들을 상기시키고, 새로운 디자인 작업물들을 가치있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나의 애정어린 수많은 컨셉카들을 다시 세상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디자인 영감을 만들어 내고, 아카이빙을 하는 것의 의미는 지어지지 못한 건축계획에 대한 마지막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회사에선 수많은 검토건을 진행한다. 실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스무개 중 하나 될까말까 할 정도로 새로운 대지에 새로운 건물을 가상으로 올려본다. 그 모든 것이 지어지지는 않지만, 그 대지를 마주하고 했던 고민들, 이야기들, 생각들이 결국 그 당시의 최선이고, 그 대지가 지닌 가치이다. 진행되지 못한 그 수많은 작업들이 사실 방치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서버 속 깊숙한 곳에 묻혀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오랜 건축관습이 새로운 컨셉카를 만든다는 신념이 만나면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묻혀버린, 기억에서 잊혀지는 고민이 아니라, 그 고민의 결과를 하나의 컨셉카로 만들어냈으면 한다.

<포트폴리오 작업 중>
<포트폴리오 작업 중>

 

 "지어지지 않는 건축물의 가치는 그 대지를 바라보는 너만의 이상적인 디자인, 너의 생각, 너의 이야기, 너의 능력이 모두 녹아있는 컨셉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그것들을 스스로 소중히 여겨 아카이빙
한다면 지어지지 않는 건축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진 열린 건축이 되는 거야." 

라고 이젠 조언해줄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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