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건축가시선]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 고찰들, 이야기들, 현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건축업의 현실
드라마, 영화에서 이따금씩 등장하는 건축가들. 보여지는 예술가적인 이미지와 언제나 깔끔한 하고 센스있는 패션에 스마트한 부분이 강조되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건축가들은 과연 어떨까. 개인의 이미지야 개인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건축업계의 현실에 관한 것이다. 생각보다 열악한 국내 건축설계업은 10년전 보다 설계비가 더 낮아졌다는 선배들의 푸념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된다. 건축설계를 하고 그 대가를 받는 설계비에 대한 인식은 어느정도의 수고비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공사비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일반인들의 안타까운 인식이 설계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한 덤핑수주라고 하는 저가 입찰로 인해 우리가 스스로 자처한 현상이기도 하다. 설계비에 대한 소비자가격은 따로 없지만, 민간아파트 기준으로 평당 4~5만원을 받고 있다는 대한건축사협회의 통계치도 나와있다. 평당 분양가가 1억원에 육박하는 시대에 대비해 설계비는 정말 처참한 수준이다. 건설 공사비에서 건축설계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건축설계비는 공사비의 4.1%수준으로 선진국의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이다.독일은 9.1%, 프랑스는 9%, 미국은 8.2% 정도라고 하니. 심지어 이들 국가는 단위면적당 공사비 또한 우리나라보다 높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설계를 업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가들은 박봉일 수 밖에 없고, 몇몇 스타건축가가 아닌 이상 정당한 대가의 설계비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건축은 그 프로세스가 워낙 길고, 어떤 물건을 사는 것 처럼 딱 실물이 존재하기가 어렵다보니, 건축 설계를 하고 설계비를 주는 것이 그저 고생한것에 대해 몇푼 챙겨준다는 인식이 생기기도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 또한 어디서부터 잘못된것 인지 모를 검토라는 분야가 있다. 일종의 가설계라고 하는데, 계약을 하지 않은 예비 건축주에게 우리는 이렇게 설계해서 얼마에 해드릴수 있다. 정도의 간단한 검토건이 일년에도 수십개씩 들어온다. 물론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큰 규모를 사업하는 시행사는 건축사무소에 검토를 의뢰해서 받은 결과물로 따로 사업성을 검토한다. 그들이 해야할 일을 우리가 대신 무료로 서비스해주고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언젠가 그들과 계약을 할 수 도 있다는 희망과, 한번 잘 못보이면 안된다는 갑을관계에서 형성된 어쩔 수 없는 검토건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이 너무나 만연해 있다. 오늘은 한 시행사로부터 들어온 검토건에 대해 우리에게 기회를 줬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일이라는 소장님의 말을 듣고, 정말 어디부터 잘못되어 버린건지, 어느새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적응해버린 우리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건축가는 우리의 전문성을 팔고, 그 정당한 대가를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왜 서로의 가치를 교환하는 평등한 입장이 아니라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저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직원의 입장에서 하는 불평일 뿐인것일까. 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이 된다면 그 희망의 관계를 놓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 대형건축사무소, 소규모건축사무소의 실정이 다르지 않다. 검토건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넘쳐나고, 아무런 힘없이 해줘야하는 상황이다. 서비스 개념의 검토건은 그저 건축전문집단의 능력으로 간단한 법규검토와 규모검토정도라 큰 에너지 소비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을의 입장에서 언제나 서비스를 해줘야하는 국내건축실태가 안타깝다. 언제부터 잘못되어온것일까. 왜 우리 건축가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우리의 정당한 권리와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 못하게 된것일까.
# 과도한 경쟁의 폐해
건축계에선 협업보다 경쟁이라는 제도가 한몫 한다. 사업과 예술의 영역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업계특성상 수주의 개념이 존재하고, 수주를 위해선 누군가보다 더 싸거나 더 잘해야한다. 그런데 더 잘 한다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일반인이 더 잘한다는 판단을 하기 어려우니 우린 더 싸게 하는 것을 선택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저가수주가 만연해져버렸고, 건축주 입장에선 더 싼 업체를 찾기 마련이다. 싼 업체를 이기위해 더 싼 제안들이 들어오고, 헐값으로 일을 해야하니,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없게 되고, 자연스레 설계수준이 낮아지게 된다. 낮아진 설계수준이 기준이 되어버리니, 건축주는 당연히 설계사를 못믿게되고,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할 이유찾지 못하게 된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채 계속해서 저가 수주가 이어지고, 서비스 검토를 해주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 못한다. 심지어 큰 규모의 건축설계는 시간이 오래걸리다보니, 매년 바뀌는 건설시장의 변동으로 건축주가 사업을 접기도 한다. 건물은 지어지지 않았고, 사업은 없어지면서 설계사가 그동안 해온 설계업무와 인허가 업무에 대한 대가도 같이 사라져버린다. 그동안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다.
# 우리가 자초한 결과
우리 건축가들이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자본에 굴복해버린 결과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대한 전문성과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사업의 굴레 변방에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다. 최근 대형건축사무소 두 곳의 재건축 수주 싸움을 봐도 우리나라 건축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설계비 300억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설계권을 따내기 위한 진흙탕 싸움이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건축가는 본인의 생각을 본인만의 언어로 설득하면 될 일 아닌가. 상대 설계안을 분석하고, 잘못된 점을 기어코 찾아내어 서로를 깎아내린다. 웃기지 않은가. 그저 본인의 설계안이 완벽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 국내 굴지의 설계사무소가 그렇게 싸우고 있으니 일반인들 눈에는 과연 어떻게 보일까. 해당 사건 뿐만아니라, 대형 설계사무소 시절 현상설계(공모전)를 하면 언제나 상대 설계안을 공모제출 전에 어떻게서든 빼내온다. 베끼겠다는 것이 아니라, 설명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교묘한 방법으로 상대의 대안을 비교대안으로 내세우고, 우리 대안이 더 좋다는 것을 어필한다. 그 현상설계의 중심에서 대안을 만들고, 머리를 짜내고 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당시는 그것이 일을 잘하는 것인 줄 알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현상설계 수주의 필승전략인줄 알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야할 것은 결국 우린 건축가이고, 건축가는 도시에, 건축주에게 좋은 건축물을 제안하면 되는 것이다. 건축업계의 잘못된 관습이 작은 건축사무소, 개인 사무소, 건축가들의 권리를 죽였고, 우리가 설 자리를 점점 없애고, 훌륭한 건축가들이 현실을 버텨내야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건축가가 되는 길은 그저 좋은 건축, 좋은 공간을 설계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가장 첫 번째로 드는 걱정은 바로 버틸 수 있을까가 되었다. 사무소를 개소하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그저 나의 불안한 감정과 약해빠진 정신, 내 실력에 대한 의심 등 나로인한 이유들 뿐이었다. 연차가 쌓이고, 건축사무소의 현실을 알아가면서 더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사업의 영역에 들어와버린 이 건축업계에서 그저 소소하게 좋은 건축에 대한 고찰만을 추구하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늘어간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좋은 건축을 위해 고민하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싸우고 있는 몇몇의 훌륭한 건축가들과 지금의 한국 건축을 이끌어온 선배건축가들의 노력을 알기에 그들과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숭고한 사명감 같은 것은 아니며, 그저 건축을 배워왔고, 전문가라는 자격증과 그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으로 부터 비롯된,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건축물을 남기고 싶은 한 젊은 건축가의 다짐이다.
# 건축의 다른 비지니스 모델
건축은 언제나 건설경기에 쉽게 영향을 받고 늘 을의 입장에서 일은 많지만 정당한 대가는 받지 못한다. 현실은 현실로서 받아들여야한다.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 남아야할까. 설계업의 특성은 거의 100프로 인력으로 운영되며, 고객 1명에게 1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제 고민해야할 것은 1명에게 1000만원의 가치를 팔것이냐, 1000명에게 1만원의 가치를 제공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요즘의 수많은 사업의 모델이 후자쪽으로 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함이다. 사업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선 1명을 위해 존재하기 보단, 다수를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야한다. 건축가는 어떻게 다수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어떤 비지니스 모델을 확장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다. 건축의 플랫폼화, 좋은 건축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혹은 좋은 공간에 대한 자체적인 공급과 운영, 예술로의 발전과 전시기획, 건축도서와 잡지 발간, 건축 컨텐츠 제작 등 다양한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머리 속에 혼재해있다. 구체적인 방법과 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생각한다. 물론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설계능력이 기본이겠지만, 그 전에 수요를 늘리고, 좋은 건축, 공간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건축주들을 우리가 먼저 만들어줘야한다. 유현준 교수님의 건축유튜브는 어느새 구독자 100만을 넘었고,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면서 좋은 건축에 대한 눈을 높이고 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건축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에는 큰 몫을 하고 계신다. 건축에 대한 좋은 뉴스들이 등장하고, 좋은 컨텐츠들이 등장하면서 현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기대해 본다. 불안한 건축업계의 현실을 변화시킬 방법은 장기적인 계획으로 건축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일부 대형시행사, 건설사들에게 국한 되어있던 건축설계에 대한 수요를 더 많은 일반 사람들에게 내어주며,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작은 위치에 있는 나부터 고민하고 실천하고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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