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만 하면 2주 안에 물구나무서기를 마스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매일 연습해도 6개월 정도가 걸립니다. 만약 2주 만에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결국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2017년,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주주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입니다. 개인이나 팀 차원에서 높은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그 높은 수준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수준에 다다르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의 범위를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친구의 사례를 인용한 것인데요.
공교롭게도, 저는 실제로 물구나무 서는 연습을 해왔다 보니 이 메시지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잘한다'는 건 생각보다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물구나무를 선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어떤 상상을 하게 되나요?
두 팔로 바닥을 짚고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텐데요. 어떤 분들은 머리와 팔꿈치를 바닥에 대는 요가 자세를, 어떤 분들은 벽에 기댄 모습을, 또 어떤 분들은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균형을 잡거나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멈춰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시간 기준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수준이 있습니다. 초보자에게는 3초도 버티기 힘든 순간인데, 어떤 분들은 1분은 서 있어야 '잘 선다'고 할 것이고, 그 시간을 발을 차올리는 순간부터 잴지, 몸이 완전히 멈춰 안정된 순간부터 잴지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조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무엇을 '잘한다'라는 것은 '물구나무를 선다'는 것만큼 분명히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들 투성이입니다. '잘하면 돼'라는 표현은 그만큼 무책임한 이야기일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엇을 '잘한다'고 할지조차 명확히 하지 못하면, 그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베이조스가 물구나무 이야기를 통해 하려던 말의 의미도 바로 이것 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직에서는 이런 수많은 무책임한 말, 문장, 단어들로 대화하고, 논의하고, 일을 계획하고 실행을 도모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제가 기업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리더들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아래와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세일즈 인센티브를 줘서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어요."
여기서 말하는 '동기부여'는 무엇일까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야근하며 늦게까지 일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정규 근무시간에만 근무하지만, 근무 외 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세일즈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결과와 상관없이 세일즈 인센티브를 받을 만큼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는 걸까요?
'동기부여'는 '물구나무'만큼이나 그 정의가 다양하게 내려질 수 있는 단어이지만, 조직의 현장에서는 매일같이 듣게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동기부여'뿐 아니라 조직 현장에서는 모호한 표현들이 훨씬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령, '조직 역량 강화', '업무 프로세스 효율화', '마케팅 범위 확대'와 같은 표현들은 그 표현만으로는 사실 무엇을 목표하는지 충분히 알기 어려운 문장들이고, 같은 문장을 봐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단어들인 것이죠.
물론 사람의 마음에 용기를 주는 수많은 표현들은 '잘해보자'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고 그것의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실행을 기대하는 상태라면, 조직은, 특히 조직의 리더는 기대하는 높은 수준이 무엇인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스스로, 또는 구성원들과 함께 대화하고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력의 범위를 안다는 것
다시 물구나무로 돌아와 볼까요?
저는 발을 차올리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자유 물구나무를 선 상태(벽에 기대지 않는 상태)에서 손을 되짚어도 되지만 10초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연속해서 10번을 시도했을 때 3회 정도는 5초 정도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이런 수준이 되려면, 자유 물구나무를 반복해서 시도할 수 있어야 하고, 반복해서 시도할 수 있으려면 발을 차올리고 균형을 잡지 못해 바로 다시 내려오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이 두려움을 없애려면 발을 차올려서 균형을 잡지 못했을 때, 한 손을 옆으로 짚어서 몸이 뒤로 넘어가지 않고 옆으로 다리를 내리는 연습을 해야 하고, 이 연습은 벽에서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반복하는 방식으로 훈련할 수 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는 2017년 주주 서한에서, 물구나무 스토리에 바로 이어 6페이지 내러티브 보고서 이야기로 넘어가는데요. 아마존에서는 토론이나 발표를 할 때 파워포인트를 활용하는 대신 서술형 구조로 된 6페이지 분량의 내러티브 문서를 작성합니다.
제프 베이조스는 '고품질'의 6페이지 내러티브 보고서와 그렇지 않은 문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 차이를 세부요건으로 명문화하기는 쉽지 않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그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한다고 합니다.
특히, 그 문서가 훌륭하지 못할 때, 그것은 대개 작성자가 높은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문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6페이지 메모를 하루 이틀, 혹은 몇 시간 만에 쓸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문서를 만드는 데 일주일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하며, 조직이, 그리고 리더가 '단 2주 만에 물구나무서기를 완성하려 하는 구성원을 제대로 코칭하지 못했다'고 표현합니다.
조직은 무엇을 설계해야 할까요
개인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요? 모든 영역에서 높은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모두가 성장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야에서 높은 기준을 달성하는 것이 누구에게는 좀 더 빠르게, 누구에게는 꽤나 오래 걸리는 일이겠지만, 저는 누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속도대로 그 잠재력을 발휘한다고 믿습니다.
조직은 개인에게 요구하는 기대 수준을 충분히 정의하고, 그 과정이 어떻게, 얼마나 노력을 요하는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이 조직의 방향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 기대와 과정을 인지했다면, 치열하고 꾸준하게 실행하며 조직과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반면 구성원의 욕구와 조직의 방향이 현저히 다르거나, 구성원이 기대 수준이나 그 과정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다면 아쉬운 결과가 남겠죠.
노력을 들이지 않고 결과에 다다르려는 시도는 물구나무서기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최근 미국의 한 아이비리그 대학교 경제학 강의에서 벌어진 일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재택으로 치른 시험의 평균은 96점이었는데, 같은 학생들이 대면 시험으로 전환하자 평균이 48.6점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AI를 학습에 활용하면서 정작 스스로 쌓아야 할 실력은 쌓이지 않았다는 의심이 나온 이유입니다. 지름길처럼 보였던 도구가, 사실은 그 결과를 만드는 데 필요했던 시간과 노력 자체를 건너뛰게 만들고 있는 것이 최근 벌어지는 현상인 듯합니다.
물구나무서기도, 6페이지 문서를 쓰는 능력도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요한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기대하는 수준의 역량도, 그것을 바탕으로 한 조직의 성장도 생각과는 다를 겁니다.
우리 조직은 구성원이 어떤 과정과 노력을 통해 어떤 수준으로 역량을 높이고 조직에 기여하는지,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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