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 믿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온전이 이해할 수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는 누구일까 자문합니다. 스스로 오롯이 하나의 완성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아무리 나 자신 안으로 침잠해봐도, 혼자서는 스스로를 직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우리답게 살게 하는 건, 언제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다른 코뿔소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든을 코뿔소답게 만들었다. (pp.22)
삶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이들일 수록, 그 ‘긴긴밤’을 헤쳐온 존재일 수록 희미한 빛 한줄기가 간절할 겁니다. 『긴긴밤』의 화자인 코뿔소 고든 또한 깊은 어둠을 헤쳐온 존재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삶에 고통스러웠던 순간, 죽고 싶었던 순간이 있다면. 그리고 그 순간 순간에 같이 있는 존재를 통해 위로받고, 나아가 삶의 의미를 찾은 경험이 있다면 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거에요.
출사표, 상실
『긴긴밤』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 넓게는 사랑하는 이들간의 연대를 통해 살아남아온,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은 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페이지를 크게 세 개의 장으로 나눈다면, 유년기와 청-장년기 그리고 노년기로 구분한다면요. 유년기, 어린 노든의 부모 격인 존재들은 코끼리였습니다. 코끼리들 사이 홀로 코뿔소였던 고든은 코가 길지는 않았지만요. 코가 짧으면 코가 긴 존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코끼리들로부터 배웠죠.
영원히 어린이로 남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모든 존재는 어른이 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때로 무리를 떠나 스스로 세상과 부딪쳐야만 하죠. 나의 윗세대로부터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이제 스스로 세상으로 나가는 출사표를 던질 때입니다.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p.15) 코끼리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운 고든은, 스스로 온전한 한 마리의 코뿔소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p.16)
청년기 고든의 삶은 순탄치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오히려 평균의 삶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쪽이죠. 고든은 초원에서 코뿔소 가정을 이루었지만 인간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었습니다. 홀로 살아남아 동물원에 갇힌 노든은 남은 생을 인간에게 복수하는 데 쓰기로 다짐합니다. 동물원에서 만난 코뿔소 친구 앙가부와의 관계와 대화로 생을 간신히 버텨내던 것도 잠시, 겨우 만난 친구 또한 인간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노든은 끝내 세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내도, 딸도, 앙가부도, 노든에게 소중했던 코뿔소는 모두 떠나버렸다. 혼자인 것은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 다 지워버리려고 계속해서 철조망에 뿔을 박아댔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방법을 써도, 노든은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했다. (p.48)
긴긴 밤, 우리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의 연속이죠. 주변 사람들과 가끔 그런 말을 해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 같은 기회과 주어져 과거의 어린 나에게 지금의 나,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조차 믿지 않을 거라고요. 과거를 돌아보면 간절히 바랐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우연히 조우한 것들이 내 삶을 채워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사건과 관계들이 나를 지금의 내 모습으로 이끌어 주었거든요.
마치 그토록 동물원을 빠져나가고 싶어하던 장년의 고든이 홀로 남았을 때야 그 기회를 얻게 된 것처럼, 탈출 과정에서 펭귄 치쿠를 만나 동행하게 된 것처럼 말이에요. 전쟁이라는 이름의, 동물들에게는 영문 모를 폭발로 동물원이 불타던 날. 고든은 부서진 우리를 나와 이미 죽은, 또는 죽어가는 동물들 사이로 생과 사의 경계를 묵묵히 지나쳐 불확정적인 세계로 다시 한번 걸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연히 펭귄 치쿠를 만나 동행하게 됩니다. 심지어 치쿠는 우연히 주워 품고 있던 알을 꾸역꾸역 안아든 채 정처없이 걷고 있었죠.
그날 밤, 노든과 치쿠는 잠들지 못했다. 노든은 악몽을 꿀까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p.57)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울타리 안쪽에서 살던 삶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에 내던져진 노든과 치쿠 그리고 알 한개는 서로 유대함으로써 살아남는 법을 다시 깨닫습니다. 코가 긴 코끼리들 사이에서 코에 뿔이 있는 코뿔소로 살았던 노든처럼, 한쪽 눈이 다친 펭귄 치쿠가 동료 펭귄 웜보로부터 중심과 뱡항을 잡는 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요. 이 이야기는 장애, 동성애 등 인간이었다면 소외계층이었을 동물들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온힘으로 연대하는 우화입니다. 동물이기에 오히려 성애와 세대를 지우고 우연히 만난 이들이 '우리'로 나아가는 과정을 더 명료하게 보여주는 듯합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치쿠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썼다. 노든은 알에 대해 딱히 별 관심은 없었지만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어쩐지 기분 좋았다. (⋯) 노든은 목소리만으로 치쿠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발소리만으로 치쿠가 더 빨리 걷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pp.62-63)
살아, 남는 일
처음 길을 나설 때는 중심도 방향도 없었던 노든과 치쿠에게 ‘바다’라는 목적지가 생깁니다. 바다는 펭귄의 터전이죠. 정확히는 치쿠이자 곧 태어날 알 속의 아이에게 필요한 공간입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막연한 기억과 정보를 바탕으로 둘은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나이 든 코뿔소는 복수를 잊은 적은 없었지만, 바다를 찾는 치쿠와 알을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죠. 알을 들고 초원을 정처없이 걷는 일은 펭귄에게는 정말 ‘긴긴밤’의 연속이었을 거에요.
“‘함께’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노든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p.70) 결국 수척해진 치쿠는 죽습니다. 머리 속이 하얘진 노든을 현실로 다시 이끈 것은 알의 온기였습니다.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알을 돌봐 주겠다고 약속해줘.” (p.71) 같은 세대를 살아온 가까운 존재와의 약속,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과 의지가 노든을 현실로 다시 호명합니다. 다시 찾아온 ‘긴긴밤’ 속에서 노든은 알의 부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이 깨어납니다. 그리고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p.81)을 아기 펭귄에게 전해줍니다. 어린 노든이 코끼리들로부터 배웠고, 커서 코뿔소들과의 관계에서 익혔고, 장년의 노든이 펭귄으로부터 이어받은 삶의 지혜와 사랑을요. 노든은 어린 펭귄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펭귄은 살아남는 법을 배웁니다.
한편 혐오로 점철된 노든의 삶 또한 '내가 흰바위코뿔소가 되어주겠다는' 아기 펭귄과의 유대와 대화를 통해 조금씩 치유됩니다. 노년에 접어든 노든의 남은 생은 ‘어떠한 기대한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삶’이지만. 그는 마침내 “불행한 코뿔소에게 제멋대로인 펭귄이 한마리씩 곁에 있어줘서 내가 불행하다는 걸 겨우 잊고 살았다”(p.88)는 걸 깨닫습니다. 삶에는 목격자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목격자가 되어 둘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증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였고, 지쳤고, 엉망진창인’ 채로 노든과 아기 펭귄은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윔보와 치쿠가 버려진 알을 품어 준 것부터, 전쟁 속에서 윔보가 온몸으로 알을 지켜내 준 것, 치쿠가 알을 품어 준 것,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노든이 있어 주었던 것⋯⋯.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단어로밖에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p.94)
‘나’는 누구인가
아기 펭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수영하는 법을 금세 깨닫습니다. 그것이 펭귄의 본능이겠죠. 하지만 펭귄은 자신을 ‘수영하는 존재’라고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펭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인 거에요? (⋯) 다른 펭귄들도 노든처럼 나를 알아봐줄까요?” (p.99) 아기 펭귄의 질문에 노인 코뿔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삶의 통과의례와 성장은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서로의 연대를 통해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여정을 견딜 수 있습니다.
긴긴밤을 지나온 노든은 ‘인간들을 다 뿔로 받아버리고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노쇠한 노든은 이제 많이 느려졌고 인간들이 나타나도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제 노든은 아기 펭귄에게 혼자 길을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여기는 내 바다야. (⋯)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치쿠가 얘기한 파란색 지평선을 찾아서.” (p.115) ‘그냥 코뿔소로 살겠다’고 우기는 펭귄을 보며, 노든은 언젠가 자신보다 앞선 세대의 존재들이 자신에게도 해주었던 그 말을 전해주죠.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p.115)
몇 번의 밤이 지나고, 아기 펭귄은 노든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걷고, 달려서,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도 끝에 바다를 찾아갑니다. 파란 지평선을, 온 세상이 파란색인 자신의 터전을요. 두렵지만, 아기 펭귄은 바다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p.125)이라는 것을요.
읽을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이 책이 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우화는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어른으로서 보내는 편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속한 집단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자체로 오롯이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배우는 일. 삶이 때로 엉망진창이라고 느끼더라도 나를 알아볼 사람과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언젠가 홀로 서기를 해야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전해주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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