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먹으러 다카마쓰까지 올 만하네
다카마쓰라는 동네는 초면이지만, 사누키 우동은 익숙한 이름입니다. 사누키는 다카마쓰가 위치한 카가와현의 옛 지명이에요. 사누키 지방은 밀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갖춰서 오래 전부터 우동용 밀가루를 생산해왔습니다. 게다가 우동 국물을 만들기 위한 멸치와 간장, 소금 생산도 발달한 덕에, ‘우동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우동의 본고장인 만큼 많은 분들이 다카마쓰를 우동 여행지로 찾습니다. 솔직히 우동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길래 이 멀리까지 와서 우동을 찾는지 의아했어요. 🤔
그렇게 어디 한번 날 감동시켜 보라는 마음으로 들어선 우동집. 그런데 우동면을 처음 씹는 순간, 왜 우동을 먹으러 이곳까지 오는지 바로 깨달았습니다. 우동의 면발은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쫄깃해서, 씹을 때마다 아주 기분 좋은 쫀쫀함이 느껴집니다. 간장 베이스 육수의 정중한 감칠맛은 단무지나 시치미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자체만으로 완벽합니다. 저는 유부 토핑의 가케 우동을 먹었는데, 달콤 촉촉한 유부 한입에 우동 면발을 호로록 하니 한번 맛보면 영영 잊지 못할 맛이었어요.
고급 식당 후기가 아닙니다. 다카마쓰 기차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어느 우동집 이야기에요.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 이 곳에서 우동 한 그릇 뚝딱 하고 다음 여정을 떠납니다. 저도 그렇게 사누키 우동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JR 열차를 타고 우타즈로 향했습니다.
소금 마을, 우타즈
다카마쓰에서 기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우타즈는 오래 전부터 소금을 생산해온 곳으로, 올해 처음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지역입니다. 인구 약 1만 8천명의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예술가와 주민들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이스라엘 사해에서 세토 바다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 농협 쌀 창고에 눈부신 소금 결정으로 뒤덮인 오브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작가 Sigalit Landau는 드레스, 신발처럼 기억이 담긴 사물들을 사해에 담가 소금 결정을 만듭니다. 사해는 염도가 매우 높아서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도, 사라질 수도 없이, 무생무사의 상태가 됩니다.
전시장에는 총 4주간 촬영된 검정 드레스가 사해 속에서 소금 결정화 되어가는 과정이 담긴 사진 네점이 있어요. 한 달만 사해 속에 있어도 하얗게 소금 결정으로 뒤덮입니다. 마치 보석처럼 아름답지만, 생명과 시간의 흐름을 찾아볼 수 없는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어서 소금으로 뒤덮인 실물 오브제가 보입니다. 첼로와 볼레로를 굵고 반짝이는 소금 결정이 얼어붙은듯 감싸고 있습니다. 결정화된 시간 속에서 죽은 듯한 황망함과 고요함이 공간을 지배합니다.
그 중에서도 소금에 뒤덮인 어망은 좀 더 특별합니다. 작가는 이번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를 위해, 이스라엘 어촌의 어부들이 사용하는 그물을 구해 사해의 소금으로 뒤덮고 염전이 주요 산업인 이 곳 우타즈에 가져옵니다. 이 소금 그물로 지중해와 세토 내해 사이에 연결고리가 만들어졌죠. 바다, 그리고 어업으로 세계가 연결되는 이 서사야 말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달밤의 보물찾기

Sigalt Landau의 <Capacity> 전시 공간에 입장할 때 코팅된 티켓을 받았습니다. 전시가 다른 곳에서 이어지니, 마을 지도를 보고 다음 전시 장소에 가서 이 티켓을 돌려주라고 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마을에서 달밤에 지도 한 장을 들고 목적지를 찾아가라는 미션을 받다니. 번거롭긴 했지만 버릴 수 있는 종이가 아닌 코팅지였기에, 돌려주고 오자는 마음으로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길찾기가 쉽진 않았지만, 기분 좋은 방황이었어요. 덕분에 마을 작은 다리에서 물에 비친 달빛도 감상하고, 동네 구석 방문객을 반기는 손수 만든 등불도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두 번째 장소에서, Landau가 전하고자 한 서사의 완결을 경험합니다.



꽁꽁 언 빙판 위에 소금 결정으로 뒤덮인 부츠가 놓여 있습니다. 소금이 민물을 만나 점차 녹으면서, 부츠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소금이 모두 녹았을 때, 부츠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강물 속으로 퐁당 빠집니다. 사해에서는 가라앉지도, 변할 수도 없이 멈춰있던 시간이 민물을 만나 염분이 녹으며 다시 흐르게 됩니다. 부츠는 결국 잊혀지고 상실되겠지만,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부츠가 물에 쏙 빠질 때,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웨딩 베일이나 예쁜 구두처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의 사물이 있습니다. 작가에게 사해와 소금은, 기억을 박제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박제된 기억과 함께 생명력과 생활감은 사라집니다. 사해 속은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마치 진공 같은 영역입니다. 소금으로 붙잡은 진공같은 기억은, 소금이 녹았을 때 다시 시간의 흐름에 녹아들게 되지요.
한편, 우타즈의 소금은 좀 다릅니다. 소금은 쌀처럼 반드시 필요한 식자재고 소금 산업이 쇠퇴해 가지만 소금을 만드는 전통은 지역의 경제와 문화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중심 요소입니다. 소금 마을 우타즈에 온 사해 소금을 마주하는 순간, 소금이 품은 이중적인 서사가 조용히 떠오릅니다.

소금으로 그린 세토해
이 광경이 아무런 고정 장치 없이, 소금 가루로만 표현한 것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옛 사카이 가문 저택에 들어서면, 푸르른 바닥 전체에 소금으로 그려진 눈부시게 하얀 물보라 패턴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소금으로 설치 미술을 하는 모토이 야마모토의 Weaving Time입니다. 한 걸음 떨어져 감상하면 세토 내해의 지형과, 세토 해에서 발생하는 소용돌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일본 전통 가옥의 바닥에 펼쳐진 광경이 매우 강렬하여, 한참을 바라보고 수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운 소금가루를 뿌려 그려서, 형태는 쉽게 아스러집니다. 모토이 야마모토는 소금으로 된 작품을 철거할 때, 작품에 사용된 소금을 모아 다시 바다로 뿌리는 의식을 행합니다. 바다에서 온 소금이 바다로 돌아가는 순환 과정 그리고 죽은 자의 뼛가루를 뿌리며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장례 의식과도 연결된다고 해요.
전시장 한 켠에는 작가와 동일한 방식으로 소금 그림을 직접 그려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있었습니다. 소금 가루를 조절해가며 정교한 형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그림을 다 그린 뒤 아쉬워도 소금 가루를 쓸어담아 없던 상태로 돌려보냈던 순간의 기억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잊혀질 수 있는 것을 소금으로 붙잡지만, 결국 소금이 왔던 자리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억과 상실, 순환을 경험합니다.
11월 9일, 봄-여름-가을에 걸쳐 진행된 2025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가 막을 내렸습니다.
당첨된 티켓 덕분에 다카마쓰의 사누키 우동도 맛보고, 지역의 이야기가 깊숙이 배어 있는 뜻깊은 예술 작품들을 만나고 왔네요. 트리엔날레 기간 내내 인파가 몰렸던 나오시마 섬은 아쉽게도 이번에 가지 못했지만, 우동&아트 투어 버킷리스트에 고이 넣어두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합니다. 사누키 우동의 쫄깃한 맛이 벌써 그립지만, 오늘은 동네 일식집에서 규동 우동 세트로 마음을 달래볼게요. 🍜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2028년에 다시 만나요 - さようなら 💫

구독자님을 위한 다카마쓰 우동 맛집 정보
📍 Merikenya Takamatsu Ekimae
- https://maps.app.goo.gl/qZ94Jq9nKjxFd2v4A
- 다카마쓰 역 앞 우동집으로 접근성이 좋고 정통 사누키 우동을 맛볼 수 있음
📍 うどんは飲みもの うどん屋もみじ
- https://maps.app.goo.gl/1pspw5Wshc8ANSeG9
- 다카마쓰 중앙 상점가 인근의 현지인 맛집으로, 니쿠 붓카케 우동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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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exduex
두 편의 트리엔날레 방문기가 너무 따숩고 재밌어서 호로록 읽었습니다! 특히 모토이 야마모토 작가 작품, 인상적이고 멋지네요. 다나 에디터님의 다음 글도 기다려 봅니다. :)
visitor.see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토이 야마모토의 소금아트는 정말 압도적이죠 🌊 좋은 글로 또 찾아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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