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ANDER] 2호 : 숫자 1이 주는 낯선 설렘

효율의 세계에서 발견한 가장 비효율적인 진심, 계산되지 않은 마음

2026.04.19 |

온라인 커머스 회사에 근무하는 제 일상은 온통 숫자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매일 수억 단위의 매출을 뽑고, 소수점 두 자리까지 쪼개진 효율을 분석하죠. 단돈 10원 차이로 순위가 뒤바뀌는 최저가의 세계에서 어느 상품의 가격이 더 경쟁력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 제 일과입니다.

그렇게 거대한 숫자의 덩어리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저에게 숫자 '1'은 통계적 유의미함조차 없는, 그냥 무시해도 좋은 노이즈에 불과했습니다. 0.1%의 효율을 높이려 수억 원을 태우는 세계에서 '단 한 명'의 변심은 전략의 고려 대상조차 아니니까요.

우리는 그 한 명을 사람이 아닌 '트래픽'이나 '데이터'로 치환해버리곤 합니다. 

사실 프라이싱의 세계에서 숫자 '1'은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9,990원과 10,000원의 단 10원 차이가 고객의 뇌에 '전혀 다른 가격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처럼요. 우리는 이 숫자 하나로 사람들의 심리를 흔들고 구매 버튼을 누르게 만듭니다. 하지만 제가 뉴스레터 [ VOLANDER ]를 시작하고 나서 마주한 숫자 '1'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심리적 장치로서의 숫자가 아닌,

내 글을 읽고 메일을 연 누군가의 흔적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이 설렘. 구독자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이 묵직함은, 회사 대시보드에서 보던 몇억 단위의 숫자보다 훨씬 생생합니다.

모든 것을 효율과 심리전으로 때려 박는 세상에서, 다시 한번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거죠.  

 

문득 얼마 전 시청했던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김애란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AI와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를 '망설임'이라 정의하며,

그 예로 손석희 앵커의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1초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방송에서 무려 '20초간' 이어진 침묵. 효율의 논리로만 보면 명백한 방송 사고였을 그 공백이,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화려한 추모사보다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질문과 대답 사이, 그 서성이는 시간 속에 담긴 진심을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첨부 이미지

 

우리는 지금 AI가 1초 만에 최적의 정답을 내놓는 고효율의 시대를 삽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뭘 좋아할지 이미 알고 있고, 가장 빠른 경로로 우리를 안내하죠. 효율의 세계에선 오차범위일 뿐인 이 '숫자 1'이, 실은 누군가의 가장 고유한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구독하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거치는 그 짧은 멈춤, 그 안에 담긴 '이 글이 내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 거대한 시스템이 놓쳐버린 이 작고 조용한 연결이야말로,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계산되지 않은 진심'이 아닐까요?


🎙️ 부기장의 한마디

 사람의 생각은 온전히 언어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읽고, 듣고, 다시 해석합니다. 새로운 문장을 만날 때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새롭게 깨닫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은 언어보다 넓고, 언어는 늘 그 일부만을 정의합니다.

숫자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숫자는 언어보다 더 정확해 보이지만, 결국 세계를 번역한 언어의 한 형태에 불과합니다. 무엇을 측정할지, 어떤 기준을 둘지, 어떻게 비교할지에 대한 선택을 위한 언어죠. 숫자는 특유의 객관성이라는 인식 때문에, 숫자로 표현되지 못하는 그밖의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지워버리곤 합니다.

숫자는 이처럼 명확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좁히기도 합니다.

회사에서는 명확하게 이런 상황을 느낄 수 있죠. 매출과 전환 같은 기업 성과 0.1% 올리기 위해 일과 사람과 시간을 소모하는 사이, 정작 그 숫자가 담지 못하는 중요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무시해 왔던가요. 

숫자는 여전히 유용한 도구입니다. 

이해는 언제나 숫자가 아닌 영역에서 시작되지만 우리는 점점 그 ‘숫자가 아닌 것’을 덜 보고 있습니다. 숫자가 비추지 않는 영역까지 함께 보려는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점점 더 정확하게 틀리게 될 것입니다.

 

마치 지금 세계의 혼란들처럼요.

 

🔭 보란더의 시선

  부기장의 한마디를 읽으셨나요? 저와는 다른 지점에서 세상을 보는 그의 시각이 이 뉴스레터를 계속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효율로만 따지면 이 짓은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퇴근 후 눈 비벼가며 글을 써서 1명을 모시는 건 ROAS(광고비 대비 매출액)로 치면 마이너스 99%짜리 사업이니까요. 하지만 세상엔 계산기 두드려서 나오지 않는 데이터가 더 많습니다.

지금 저에겐 이 비효율적인 숫자 1이, 회사 매출 수십 억보다 훨씬 '유의미한 지표'입니다.

 

"당신에게는 오늘, 어떤 숫자 '1'이 머물다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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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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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르는강물처럼의 프로필 이미지

    흐르는강물처럼

    0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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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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