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ANDER] 6호 : 회빙환의 시대, 여전히 TV를 켜는 이유

우리가 드라마라는 '굿판'을 통해 채우는 결핍에 대하여

2026.05.17 |
 ※ 회빙환 : 회귀, 빙의, 환생의 앞글자를 합쳐 부른 말.

 

 모두가 OTT 신작의 '빨리 감기' 버튼에 익숙해진 시대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편성표를 기다리며 TV 앞에 앉는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드라마 속에 박힌 시대의 맥락을 짚어보는 시간을 좋아하죠. 요즘 드라마들을 보고 있으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과거 <모래시계>나 <허준> 같은 대형 서사의 시대는 지났고, 화면의 규모감은 작아졌을지 모릅니다. 대신 그 자리는 환생, 빙의, 타임슬립 같은 '회빙환' 장르와 이전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소재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웅장함은 줄었어도, 우리 개개인의 세밀한 욕망을 비추는 거울은 더 다양해진 셈입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검색창에서도 발견됩니다. 회빙환이 대세라지만, 한편에서는 '회빙환 없는 로코', '회빙환 없는 판타지'을 추천해달라는 검색어들이 줄을 잇습니다. 판타지라는 치트키 없이, 오직 인물 간의 텐션과 감정선만으로 승부하는 '진짜 이야기'를 향한 대중의 갈증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모든 걸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는 판타지가 주는 쾌감도 좋지만, 때로는 이 지긋지긋한 '이번 생'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 큰 위로를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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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드라마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하게 앉아 보기보다, 리모컨을 손에 쥐고 이 채널 저 채널을 끊임없이 오가는 '동시 시청' 스타일을 즐깁니다. 요즘은 정통 서사의 묵직함이 담긴 <모자무싸>, 현대인의 공정성 갈망을 찌르는 <은밀한 감사>, 그리고 너무 오글거려 투덜대면서도 가끔 채널을 멈추게 하는 <21세기 대군부인>까지. 특히 일일연속극을 볼 때면 예전과 달리 배우들의 '직업정신'에 감탄하게 됩니다. 저 말도 안 되는 대본과 개연성 없는 상황을 진짜처럼 연기해내는 저들은 얼마나 고된 직업인인가 하고요. 사실 우리네 삶도 그 막장 드라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상식 밖의 대본을 받아 들고도 우리는 매일 '프로'로서 자신의 배역을 소화해내야 하니까요.  

 이영미 평론가님은 드라마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는 굿판"이라고 정의합니다. 대형 드라마 대신 파편화된 소재가 많아진 것 또한, 거대한 국가적 담론보다 각자의 작은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더 중요한 '각개전투의 시대'를 투영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제가 끊임없이 채널을 돌리는 행위는 제 안의 각기 다른 욕망들이 벌이는 작은 소동과 같습니다. 정통 서사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안정)를 확인받고 싶어 하면서도, 시스템의 정의(공정)에 쾌감을 느끼고, 때로는 현실의 논리를 초월한 조건 없는 지지(판타지)를 꿈꾸며 오글거림을 견디는 것이죠. 주파수를 옮겨 다닐 때마다 제 안의 다른 자아들이 번갈아 가며 숨을 쉬는 기분이 듭니다. 

  결국 드라마를 본다는 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행위를 넘어, 그 서사 속에 내 모습을 비춰보는 과정입니다. 회귀물에 열광하며 '이번 생'의 아쉬움을 달래고, 유치한 로맨스를 보며 메마른 감정을 확인하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니까요. 보란더(VOLANDER)라는 이름처럼 고도를 높여 이 풍경을 바라보면, 이런 다양함이야말로 우리가 이 시대를 비행하며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밤, 당신은 어떤 주파수에 채널을 맞추고 계신가요? 그 드라마 속에서 당신은 어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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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기장의 한마디

 기장님이 드라마 얘기하니까 생각이 나는데요. 90년대에는 드라마 시청률 60%가 낯선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침만 되면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대화에 끼기 위해서라도 같은 드라마를 챙겨봤죠. 드라마는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21세기 대군부인도 시청률은 10% 안팎에 머무르고, 제가 본방사수하는 모자무싸도 3% 수준이네요. 이제는 회빙환과 막장 같은 강한 장르 문법을 총동원해도 모두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문득 지적자본론에서 이야기한 소비사회의 3단계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 단계 “무엇이든 갖고 싶다”는 수요 중심의 시대

두 번째 단계 공급이 넘치며 차별화가 중요해진 시대

세 번째 단계 과잉 공급과 과잉 수요 속에서, 사람들이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를 중심으로 소비하는 시대

 지금의 드라마 시장은 분명 세 번째 단계에 가까워 보입니다. 과거처럼 드라마를 보면 모두가 그 드라마의 팬이 되어 응원하고, 함께 보는 이들과 경험을 나누는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소규모의 취향에 맞는 드라마 개념도 사라지고, AI를 동원해 내가 원하는 몇 개의 소재와 스토리 방향을 고르면 그에 맞춰 제작되는 개인 맞춤 드라마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그 때 우린 저 하늘에서 무엇을 내려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우주에 홀로 유영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네요

 

🔭 보란더의 시선

 이번 호와 함께 나누고 싶은 관점은 이영미 평론가님의 비평 철학입니다. 드라마를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과 대중의 심리를 읽어내는 텍스트로 바라봅니다. 화려한 CG나 스케일보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지금 우리'의 어떤 맺힌 마음을 건드리느냐는 것이겠죠. 제가 요즘 보는 여러편의 드라마가 각기 다른 맛을 내듯, 여러분의 일상도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풍성한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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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강물처럼

    0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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