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중여행기] 싱가포르 편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9월이 찾아왔습니다. 서양에서 숫자 9는 '완전을 위한 기다림'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하는데요. 완전한 수 10이 되기 직전의 수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름은 특히 늦게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더위에 많이 지치셨을텐데,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선선한 바람과 함께 올 한해 고생하신 결실을 맺는 완전한 가을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완중여행기를 준비했는데요. 제가 그동안 여행한 국가 중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나 이 나라에 대해 잘 알아!'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들고 왔습니다. 바로 '싱가포르(Singapore)'인데요! 그 이유는 제가 이 곳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직접 살아보는 것만큼 그 나라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겠죠? 생생한 경험담을 기반으로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할게요.

동남아인데, 동남아같지 않은 나라

 아마 싱가포르를 생각하면, 이런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실텐데요. 휘황찬란한 불빛과 멋지게 들어선 마천루들이 머리 속에 그려지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임에도,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지기도 해요.

 아마 그 이유는 역시나 '경제 부국'이라는 점에 있을텐데요.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요.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2024년 IMF 통계 기준, 91,100달러로 세계 5위입니다. 이 수치는 미국(85,373달러)보다 높고, 노르웨이(94,660달러)에 버금가는 수준이에요. (우리 나라는 3만 4천 달러 수준이라고 하네요.)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크기가 721.5㎢(서울의 약 1.2배)밖에 되지 않는 이 국가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참 흥미로운데요. 사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 국가 중 일부였어요. 영국에 지배 당하고 있던 말레이시아 정부가 1957년 독립하였는데, 당시 싱가포르 주가 문제거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말레이시아가 독립하게 되며 '부미푸트라 정책(말레이인 우대정책)'이 대두됐기 때문이에요. 이 정책은 쉽게 말해 원래 이 땅의 주인(말레이인)들을 우대하겠다는 정책이에요.

 당시에, 영국은 또 다른 식민지였던 인도와 홍콩 등에서 쿨리(해외에서 활동하는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왔는데요. 그로부터 이어진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이 싱가포르 주에 꽤 많이 자리 잡게 된 것이었죠. 부미푸트라 정책처럼 이민자들을 배척하자는 의식이 팽배해졌고, 결국 싱가포르는 쫓겨나다시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싱가포르는 비록 이런 수모를 겪었지만, 독립 이후에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중계무역과 금융의 허브로서 급성장하기 시작해요.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외국 회사들로부터의 적극적인 투자 유치였는데요. 예를 들어, 보통 30%에 달하는 법인세를 파격적으로 면제해주는 등의 노력으로 글로벌 기업이 비즈니스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지금의 싱가포르는 1960년보다 경제적으로 745배나 성장했다고 해요.(총 GDP 기준) 말레이시아로서는 조금 씁쓸하지 않을까요?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는 비결

 이런 경제의 급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는 것인데요. 싱가포르의 교육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제가 교환학생 생활을 다녀온 난양공대(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대인데요. 영국의 교육 평가기관 QS에 따르면 전세계 대학 순위 중 난양공대는 무려 26위에 랭크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대학의 최고 순위는 서울대의 41위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순위에요. 

 더 재미있는 건 싱가포르에 이 난양공대보다 순위가 높은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NUS :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가 있다는 것인데요. 무려 8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아시아 대학 중에는 최고 순위에요. 세계 30위 권에 무려 2개의 대학교를 랭크시킨 것인데요.

 앞서 싱가포르의 면적이 서울보다 약간 크다고 말씀 드렸는데, 이 작은 나라에서 아시아 최고의 대학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비결이 너무 궁금했어요.

 4개월 간 직접 경험한 것에 따르면 기대가 컸는지 생각보단 실망이었어요. 규모가 있는 세계 최고의 공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특정 과목에 대해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구성되어 있었지만, 크게 한국의 교육 수준과 비교하여 우월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특히 수학은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사람들이 경쟁력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보았는데요. 저는 답을 '언어'에서 찾았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싱가포르에는 중국계 인구가 정말 많은데요. 그 비중이 무려 76%에 달해요. 국민 대부분이 중국어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싱가포르에 거주하면서 중국어 간판 등 어렵지 않게 중국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국가 제 1언어는 또 영어에요.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어요. 영어와 중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다면, 이거 완전 '취업깡패' 아닌가요?

 그런 점에서 싱가포르인들이 글로벌 인재로 엄청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죠.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나라

 싱가포르는 대표적인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데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쿨리(저임금 해외 이주 노동자) 영향으로 다양한 인종이 정착하여 터를 이뤘습니다. 그렇기에 여행자는 작은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첫 싱가포르 여행에 왔을 때, 리틀 인디아(인도 문화권), 캄퐁 글램(말레이 문화권), 차이나 타운(중국 문화권)을 하루에 돌아보며 한 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할 수 있음이 매우 신기했어요.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서로 어우러져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에는 국가적 노력이 정말 주요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인종 간에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싱가포르의 모든 신분증을 흑백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저도 이번에 이걸 알게 되면서 예전에 발급 받았던 신분증을 꺼내보았는데요. 정말 흑백이더라고요. 피부색에 따라 서로를 판단하고, 차별하지 않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한 것이죠.

 싱가포르의 제 1언어를 영어로 정한 것에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 등 다양한 인종이 자신의 언어가 아닌 모두에게 공평한 언어로 똑같이 소통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죠.

 이러한 싱가포르의 특성으로 재미나게 볼 수 있는 현상이 또 한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호커센터(Hawker center)'입니다. 

 이 호커센터는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푸드코트 같은 곳인데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파는 여러 상점에서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해 가운데에 있는 공간에서 식사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죠. 호커센터가 싱가포르의 다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었던 주요한 역할로 평가 받는 이유에요.

 맥락과는 별개로 저는 이 호커센터를 정말 강력 추천하는데요. 다양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흔히들 싱가포르는 물가가 비싸고, 음식 가격도 굉장히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로 싱가포르 서민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호커센터를 가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 거에요. 제 기억으로는 메뉴당 5~7천원 수준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었습니다.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강력하게 추천드려요😝

한국과 참 닮은 나라

 제가 싱가포르에 짧게나마 거주하면서 느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싱가포르가 한국과 참 닮아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 면에서 닮아있는데요. 

 첫 번째는 '식민 지배의 아픔과 경제 급성장'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싱가포르도 식민 지배의 아픔을 겪은 나라입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침략을 받았고, 무자비한 학살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쓰라린 식민 지배의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와 묘하게 닮아 있어요.

 그리고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점에서도 참 닮아 있죠. 두 나라 모두 식민 지배 이후에 1970년을 거치며 엄청난 경제 급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이런 기반에는 승부욕이 강한 국민성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난양공대에서 만난 싱가포르 친구들의 경쟁이 대단했거든요. 국가적으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수준 높은 인재를 배출해 국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죠.

 물론, 부작용으로 엄청난 학업에 대한 압박도 가지고 있죠. 실제로, 싱가포르 친구들도 우리나라처럼 어린 나이부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겪어 왔더라고요. 눈부신 성장의 씁쓸한 이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싱가포르 남자들도 군대에 간다.'는 사실입니다.

 싱가포르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징병제 국가인데요. 만 18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입대해야 해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입대 시기를 연기할 수 없다고 하죠. 또 한 가지 재미난 점으로는 기본적인 의무 복무기간은 2년이지만 체력테스트를 통과하면 2개월 단축이 가능하다고 해요. 그래서 대부분 1년 10개월 가량 복무하죠. (비만이면 사실상 2개월 연장...)

 그래서 제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친구들은 웬만하면 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이었고, 그런 점에서 괜히 반갑고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게는 군부심을 장난 삼아 부리기도 했는데, 싱가포르 친구들한테는 부리지 못했답니다🤣

싱가포리언(Singaporean)에 대한 개인적 감상

 마지막으로, 싱가포르에 거주하면서 느꼈던 싱가포르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나눠보고 싶은데요. 이건 어떠한 근거도 없고, 제가 단지 싱가포르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관찰한 것이기에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재미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싱가포리언은 정직하다.

 싱가포리언은 정직하다. 한 번은 학생증을 잃어버려 교내 행정실 같은 곳에 찾아갔다. 학생증을 잃어버렸다고 말했고, 재발급을 요구했다. 희끗한 흰 머리의 60대는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물어보셨다. 

 '진짜 재발급 받을거야?'

 '네. 당연히 받아야죠. 잃어버렸는걸요.'라고 나는 대답했다.

 '기다려보는게 어때? This is Singapore'

 물건을 잃어버려도 싱가포르의 국민들이 찾아줄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자신 있는 한 마디였다. 나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른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아주머니는 자신에 차 있었다. 한국에 돌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재발급 소요기간이 있었기에 언제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 학생증을 그냥 재발급받았지만 자신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는 아주머니가 조금 멋져 보이긴 했다.

 이런 국민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넘겨 짚자면 아마 강력한 법의 규제가 그 배경 아닐까. 냄새가 고약한 과일 두리안을 지하철에 들고 타면 500SGD(약 5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없고, 이 질서가 정직한 문화를 만든 것 같다.

둘째, 싱가포리언은 순수하다.

 싱가포리언은 순수하다. 난양공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여기가 고등학교 기숙사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던 적도 있다. 싱가포르는 밤 10시 30분부터 오전 7시까진 술을 팔 수 없고, 심지어 대학교 시험기간엔 술을 팔지 않는다. (허가된 술집은 시간, 시기에 상관없이 판매가 가능하다.)

 이런 영향인지 싱가포르의 대학생들은 정말 순수하게 논다. 한 번은 자몽에 이슬 1병을 10명이 나눠 먹으면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술 뿐만 아니라 노는 것 자체가 순수하고 귀엽다. 마음에 드는 학생이 있으면 기숙사 문고리에 과자와 함께 쪽지를 걸어두기도 했다.(물론 내 방문에는 한 번도 없었다.)

 한 번은 교내 아웃도어 액티비티 동호회에서 주관하는 캠핑을 다녀오기도 했었는데, 어느 멀리 떨어진 섬까지 가서 UCC를 만들고, 트래킹을 하고, 라면 맛있게 끓여먹기 대회를 하고, 춤 동작을 외우는 대회를 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 술은 1모금도 없었다

 한국에서 온 한 남자가 잠자리고 뭐고, 그냥 땅바닥에 기안 84처럼 지쳐 쓰러져 있던 새벽에 우리 팀 대장은 나를 깨워 귀신 체험을 하러 가자고 했다. 초등학교 수련회에서 하던 귀신 트래킹을 두 시간 마친 후에야 나를 재워주었다. 1시간 쪽잠 자고 일어나, 또 다시 해맑게 배를 타러 간다는 싱가포르 친구들을 두고, 그랩 택시를 불러 기숙사로 도망치듯 달려 나왔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과정을 한 200명 정도가 했다는 것이다. 정말 순수하고, 귀여운 친구들이다. 

 매우 힘들었던 경험임에도 순수한 매력을 가진 싱가포르 친구들은 내 머릿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왜 이렇게 순수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수함을 가졌다는 것... 어쩌면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부분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