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일년 중 하루일 뿐이야

행복은커녕 절망적이었던 나의 생일날들

2025.10.30 | 조회 1.0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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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벤자민

브런치북 <서른의 나는 세살의 나를 불러본다> 연재중

  생일 하나쯤 갖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생일입니다. 일년에 하루 있는 날이죠. 그런데 저는 일년 중 하루일 뿐인 보통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동안 평범한 날에 특별함을 우겨 넣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를 게 없는 하루에 화려한 포장지를 씌우려고 한 것이죠. 내가 주인공인 날, 축하 받는 날, 일년 중 단 하루. 이런 말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생일을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생일은 행복해야 한다는 이미지에 취해 있었습니다. 행복의 그림자만 쫓아다녔어요. 하지만 그림자의 그늘이 드리운 곳은 춥고 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년 중 하루일 뿐인 제 생일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어릴 적, 생일이란 늘 축하 받는 날이었다. 돌잔치, 롯데리아 파티, 학교 친구들과의 생일파티가 매년 이어지며, '생일 = 축하받는 날' 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대학을 들어간 뒤 부터 그 공식이 점점 깨지기 시작했다. 파티를 열어주던 반 친구도, 맛있는 걸 챙겨주던 부모님도 없었다. 대학 신입생 동기끼리 떠들썩하게 열리던 생일파티도 학기 초에만 반짝 했을 뿐, 가을 생일인 나는 해당 없었다. 어린 시절엔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정 부렸지만, 이제는 케이크 초 하나 불기조차 어려워졌다. 항상 훈훈한 생일을 보냈던 나는 갑작스러운 온도변화에 속이 싸늘히 식어갔다.

 

 

  SNS를 열면 생일 축하를 받는 친구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다들 케이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친구의 생일 축하 자리에 온 듯했다. 그는 선물 받은 내역을 일일이 사진찍어 올리기도 했다. 내가 보낸 선물은 거기에 없었다. "생일 진짜진짜 축하해!!" 댓글로 한마디 더 얹었다. 이 메아리가 내 생일에도 돌아오길 바랐다. 나도 이 친구처럼 즐거운 생일을 보내고 싶었다.

  10월 초 부터 계속 은근히 티를 냈다. 대화 중 슬쩍 내 생일을 흘려 말했다. 그럼 누군가가 이렇게 묻곤 했다. "생일에 뭐 할 거야?" 그 질문에 기대를 안고 "아직 별일 없어"라고 말하면, "생일인데 친구들이 만나서 재미있게 놀아"라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친구가 생일 파티에 왔으면 했는데, 자기는 그 정도의 친구는 아니라는 것처럼 들렸다.

"요즘 날씨 진짜 좋다 ㅎㅎ 10월 말쯤 어디 놀러가고 싶은데"
"나 요즘 과제 땜에 죽을 것 같아 ㅋㅋ 그래도 생일 주간이라 기분은 좋음 ㅎㅎ"
"근데 진짜 10월 너무 빨리 간다 벌써 내 생일 코앞..."

  생일이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이대로 혼자 쓸쓸히 생일을 보낼 순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생일에 뭐해', '별일 없어', '재미있게 보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 진짜 별일 없이 지나가는건 아닌가 불안해하며 수업 중 괜히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누구한테 또 말해보지..' 이제 남은 얼굴이 별로 없었다.

  어떤 약속을 잡아야할지, 누구랑 약속을 잡아야 할지도 몰랐다. 문득, 생일 당일에 친구가 "서프라이즈~" 하며 케이크를 얼굴에 들이 밀 것만 같았다. 그 서프라이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약속을 잡지 말아야 했다. 그래, 나는 친구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생일에 대한 언급은 더이상 삼갔다. 준비한 친구가 당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생일 당일이 되었다. '서프라이즈'같이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생일의 초침은 째깍째깍 지나갔다.

 

 

  생일 약속을 잡지는 못했지만, 생일 축하 알람은 꾸준하게 울렸다. 간단한 메시지, 꽤나 긴 메시지, 커피쿠폰, 치킨쿠폰 등이 휴대폰을 번쩍였다. '생일 축하해' 로 시작하는 말은 꼭 '그 누구보다 행복한 날이길 바래'라는 말로 끝났다.

  모두가 나의 행복한 생일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녀석들 모두 나를 만나지는 않았다. 작은 휴대폰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생일 축하 퍼레이드는, 어두운 방안에 혼자 누워있는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생일이 아직 아닐 때는, 행복한 생일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생일이 지나고 나면 짓이겨진 마음이 눈물처럼 힘없이 흘러내렸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생일에 제대로 축하도 받지 못하다니.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태어난 날에 태어남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묻곤 했다.

 

 

  물론, 생일 축하를 받은 해도 있었다. 낮에는 대학 친구들과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짜장면을 먹었다. 저녁에는 아르바이트 같이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이자카야에 갔다. 다음날 저녁에는 아는 형이 맛있는 회를 사주었다. 그토록 원했던 생일 케이크와, 생일 축하 노래도 빠지지 않았다.

  좋았다. 그런데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기보단, 그저 안도감과 다행스러움을 더 많이 느꼈다. 나도 생일 케이크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과 메시지로 생일 축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롭고 절망적이었던 생일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내가 생각한 생일은 이것보다 더 기뻐야 했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게 아니라, 가슴이 터질만큼 큰 감동이 있어야 했다. 서프라이즈 파티, 커피말고 다른 선물, 교문에 걸리는 플랜카드 등 더 큰 축하를 바라는 마음이 피어 올랐다.

 

 

  외롭거나, 아쉽거나. 내게 생일은 여전히 행복한 날이 아니었다. 왜 그런 걸까. '일년에 하루 뿐인 생일인데...'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문득 모든 날이 다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 1일 부터 12월 31일 까지 모든 날은 일년에 하루 뿐이다. 그중 하루가 우연찮게 내 생일이 된거지, 내가 태어나서 그 중 하루가 생긴 게 아니었던 거다.

  그렇다면 외로워 할 이유도, 행복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나. 나조차도 기억 못하는 탄생의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나의 출생과 관련 없는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것부터 틀린 것 같았다. 점점 생일은 특별한 날이기보단, 보통의 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저 그런 날로 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생일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때부터 생일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저 평범한 하루일 뿐인데 신경 써서 생일 축하해주고, 선물까지 해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가슴이 뭉클했다.

  예전에는 생일이 끝나면 '이게 다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나 많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일은 사실 축하받는 날이 아니었다. 감사하는 날이었다. 나를 세상에 내어 주신 부모님에게,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주는 친구들에게.

 

 

  생일날의 퇴근길, 시린 손을 부여잡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해요."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에도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어."

  여자친구가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들고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따스하게 빛이 났다. 우리는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너무 신이난 나머지 소원 비는걸 깜박하고 초를 불어버렸다. 뾰루퉁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보통의 날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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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며 서른을 앞둔 내가 얼마나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매일 미래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데만 집중하느라 정작 그 속에서 느꼈던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글을 다 읽고 나서 잠시나마 멈춰 서서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마음속에 꼭 담아두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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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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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듯이가겠습니다의 프로필 이미지

    나는듯이가겠습니다

    1
    about 1 month 전

    당찬 상민님, 생일 많이 많이 축하드립니다!!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제 생일 당일은 해마다 제게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저랑 같이 보냅니다. 전날은 가족, 다음날은 친구나 지인들.^^ 자유로워졌어요!

    ㄴ 답글 (1)
  • 나는듯이가겠습니다의 프로필 이미지

    나는듯이가겠습니다

    1
    about 1 month 전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ㄴ 답글 (1)
  • 제나의 프로필 이미지

    제나

    1
    about 1 month 전

    하루 지났지만 생일 축하해요 벤자민님!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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