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벤자민] 내게 철봉을 걸 문틀 하나만 주어지기를

"우리집에 문틀 철봉 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랑이자, 나의 10년 주거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2025.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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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름한 이불을 바닥에 깔고 누웠다. 바닥의 딱딱함이 그대로 등을 찔렀다. 발 끝에 닿은 동생 침대를 쭉 밀었다. 애써 깔아놓은 이부자리가 구겨지며 벽쪽으로 밀려났다.

  왼손은 책상 다리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고, 오른팔은 차가운 싱크대 아래를 스쳤다. 종량제 봉투가 오른쪽 다리를 툭 건드렸고, 빨래가 덜 마른 냄새가 났다.

  나는 스무살에 서울에 올라와 줄곧 원룸에서 살았다. 기숙사와 하숙집도 거쳤지만 내게 허락된 개인 공간은 '방 하나' 뿐이었다. 어느덧 원룸 생활을 한지도 딱 10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간직한 소박한 소망이 하나 있었다. 문틀 철봉. 말 그대로 문틀사이에 설치하는 간이 철봉이다. 협소한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운동기구로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우리집에는 그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1인 가구에게 문틀 철봉은 아주 사치스러운 오브제이다. 문이 존재한다는 건 그 너머에 다른 공간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드나들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건 내겐 부의 상징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다른 방이 있었던 기숙사 생활과 하숙 생활이 더 호화스러웠다고도 느껴질 정도였다.

  문을 연다는 건 참 특별한 감각이다. 둥근 문고리를 쥐는 감촉, 손목을 틀어 돌릴 때의 금속음, 문틈 너머로 이어지는 다른 공간, 그리고 문을 닫을 때의 철컥 소리까지. 같은 집 안에서 문 하나를 기준으로 냄새와 소리, 온기가 달라지는 경험, 이토록 럭셔리한 생활이 또 있을까.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위 이지만 집 안에서 문을 여닫는 건 나에게 꿈과 같았다. 잠들기 전 나는 늘 상상했다. 언젠가 갖게 될 방의 구조와 가구의 배치, 그리고 거기서 살아갈 내 모습까지 말이다.

  2025년 5월, 드디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방을 드나드는 생활'을 시작했다. 내게 문틀이 무려 두 개나 생겼다.

  박스 깊은 곳에서 수 년간 잠들어 있던 문틀 철봉을 꺼냈다. 기숙사에서 살 때 사놓은 것이었다. 이틀의 시간과 2만 원의 돈이면 충분히 가질 수 있었던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 쇠막대를 걸기까지 몇 곱절의 시간과 돈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 사실에 잠깐 헛웃음이 났다.

  '끼릭끼릭' 조심스럽게 철봉을 문틀에 끼워 넣었다. 막상 설치해보니 집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봉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사를 하고 여러 물건을 새로 들였지만 문틀 철봉만큼 나의 주거 생활을 관통하는 물건은 없을 것이다. 투박한 쇠막대 하나에 지난 10년을 버텨낸 힘이 깃들어있다. 작은 방을 가득 채웠던 열정과 꿈, 매일을 살아내던 마음이다.

  나는 예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쾌적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 침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작업실 책상에서 글을 쓴다. 그러다 낯선 동선에서 문득 새로운 감각이 스친다. '아, 나는 지금 방을 드나들고 있구나.'

  작고 허름한 방을 버티던 그 마음이, 문을 드나드는 나의 일상에 조용히 걸려 있다. 이 철봉이 나의 몸을 가뿐히 들어 올릴 수 있는건 오랜 세월을 살아낸 그 마음의 힘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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