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1편: 전쟁과 총알

총알이 빗발치는 이 전쟁의 승리는 누구의 것인가

2025.11.06 | 조회 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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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벤자민

브런치북 <서른의 나는 세살의 나를 불러본다> 연재중

 

  헬스장에 수많은 러닝머신이 균질하게 늘어서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위를 달리고 있다. 숨차게 땀흘리며 발을 구른다. 하지만 그 풍경은 역동적이기 보단 질서정연해 보인다. 숨이 차오를 수록, 달리는 이유를 묻는 '나 자신'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도 그 틈에 껴서 함께 내달린다.

 

  과연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른다. 퇴근 후에는 배달을 뛴다. 주말에는 재테크 서적을 펼친다. 우리는 하루 종일 총알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흔히 현금을 총알로 비유하곤 한다. 현금이 총알이라면, 자산은 무기 공장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다수는 무기 공장에 들어가 월급이라는 탄약을 받는다. 이 총알은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쓰인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듯, 자유로워지기 위해 돈을 모은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자유를 포기해야만 한다. 마치 넓은 평수의 감옥을 짓는 것 같다. 자유를 바랄수록 더욱 억압받는 역설이다. 자본주의는 완전한 구(球)를 이루지 못했고, 풍선 한쪽에 '꼬다리'를 남겨놓았다.

 

 

  철학자 마르크스는 이 꼬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작동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고, 그 외 잉여이익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구조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더욱 견고 해졌다.

  철학자 푸코는 사람들이 이 구조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고 보았다. 더이상 권력자는 자기 손에 채찍을 들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내면에 교묘한 마음의 소리를 심어놓았다. 바로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다. 노동자는 스스로를 감시하고, 스스로를 경쟁 속에 밀어 넣는다.

  노동자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라 믿고 있다. 실상은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 있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개조하는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견고하게 만들어진 금형에 맞춰 찍혀 나간다. 경제적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길조차 이미 누군가 깔아놓은 컨베이어 벨트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비판과 함께,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노동 파업과 시위만 일어날 뿐, 이 구조 자체를 재편할만한 혁명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어려운 혁명의 길 대신, 다른 노동자를 착취하는 잠재적 자본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 같다.

  노력 만능주의, 자수성가 신화 같은 서사는 부자가 아닌 이유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나만 잘하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이미 자본가가 된 사람들을 우상화하는 한편, 같은 노동자끼리는 서로 짓밟고 발목을 잡는다.

  경중은 다르겠지만, 누군가를 속여서 부자가 된 사람도 분명 있다. 일부는 오히려 그들을 받들어 교묘한 술수를 배우려 하기도 한다. 자기들도 그런 방법으로 부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당한 방법과 노력으로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손가락질하며 다시 아래로 끌어내리려 한다. 자기만 뒤쳐지는 느낌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의 욕망은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시켰다. 경쟁은 보다 치열해졌고, 모두의 삶의 질이 낮아졌다. 병사들은 끝없는 소모전 속에 탈진되고 있다.

 

 

  전쟁은 언제 끝날까?

 

  전쟁은 상대로부터 완전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계속된다.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는 격차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한쪽이 꼬리를 내리며 끝이난다.

  빈부의 완전한 양극화가 이뤄질 때까지,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이 사는 세상과 '그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극명하게 나누어질 때까지, 사람들은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더 처절하게 목숨 바쳐 싸울 것이다.

  물론, 전쟁에서 벗어나 '전역'하는 사람도 있다. 총알이 떨어졌거나, 전쟁의 무의미를 느낀 사람들은 전선으로부터 후퇴한다. 최전방 서울에서 경기도, 혹은 그보다 뒤의 후방지역으로. 그곳에서 조용히 안전과 평화를 누리는 듯 하다.

 

 

  내일도 누군가는 부리나케 새벽 첫 차를 타고 전선으로 향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조용히 심야 기차를 타고 후방으로 향할 것이다.

  이제 막 자본주의의 신병이 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전선으로 향할 것인가, 후방으로 나갈 것인가?

 

 

다음 편: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2편: 사회초년생의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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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스레터를 읽고 스무살이 되던 12월 31일 자정 카운트다운이 생각났습니다. 30분일찍 만나 클럽 가자던 친구의 연락 두절로 지하철역에서 혼자 쓸쓸히 카운트다운을 할 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된 것 만 같던 그때의 조급함이 떠올라 버려 너무 공감가고 웃펐네요. 그 뒤로 몇개월을 꽁해있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망친것 같았거든요.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잊으며 극복한거라 생각했었는데, 벤자민님 글을 읽자니 저도 그 몇개월 동안 성숙의 과정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알아간 것 같아요. 그저 지나간 또 다른 하루였을 뿐이라는 것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성인이 된것을 존중하고 축하해 주신 부모님의 마음과, 나의 달라진 마음가짐이지 그날 하루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날짜가 하루 지났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네요. 벤자민님 생일 축하 드립니다. 부디 하루 더 풍성한 마음으로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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