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퍼디난드 암살하기 [주간 묘사 제 33호]

257 짧은 소설

2024.01.10 | 조회 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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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락밴드 프란츠 퍼디난드의 곡 <Take Me Out>을 들으면서 유라는 생각했다. 반드시 그들을 죽이리라고. 그녀의 다이어리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전단지가 고이 접힌 채 끼어 있었다. 프란츠 퍼디난드가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락 페스티벌이었다.

  유라는 학원에서 야자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야자를 강제하지 않는 대신 아이들은 학원에서 야자를 했다. 유라 또한 그랬다. 그녀가 야자를 하는 동안 듣는 노래는 프란츠 퍼디난드를 비록한 락밴드들의 노래였다. 그러니까, 유라는 공부를 하기보다는 노래를 들었다. 테이크 미 아웃. 노래는 한창 계속되다가, 그녀가 암살을 다짐할 때쯤에야 끝이 났다. 그녀는 생각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암살을 꿈꾼 이유는 조상의 문제였다. 그녀의 이름은 유라 페르디난트.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프란츠 페르디난트라는 이름의 고조부가 나타난다. 유라의 고조부는 제 1차 세계대전의 표면적인 원인이었던 사라예보 사태의 주인공이었다. 그녀의 고조부와 고조모의 암살을 시작으로 거대한 전쟁이 발발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녀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세계사 시간이었다. 세계사 시간에 페르디난트라는 성이 나타나자 그는 당황했다. 자신과 같은 성의 존재. 안그래도 이목을 끄는 그녀의 외모에 더해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망명한 유럽 귀족의 후손이라는 것이었다.

  유라는 그날 학원에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불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이것이 출생의 비밀인가. 유라는 때때로 아무리 봐도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의문을 가져왔었는데,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까 그녀의 친족들은 역사의 흐름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그중에서도 그녀의 가족은 한국을 택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녀의 아빠가 거실의 불을 켜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유라가 나타났다. 아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유라는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아빠에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프란츠 페르디난트라는 게 사실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녀의 아빠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고, 그녀는 대화를 그만두고 뛰쳐나갔다.

  집을 뛰쳐나온 유라는 갈 곳이 없어 학원 자습실로 향했다. 자습실 의자에 앉아 세세한 얘기까지 다 나와 있는 세계사 참고서의 제 1차 세계대전 부분을 펴들었다.

  사라예보 사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세르비아 청년이 암살한 사건.

  바로 이 사건. 이 사건을 통해 그녀가 지금 공부나 하는 것이다. 아니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조상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그런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고조부의 이름을 락밴드 이름 따위에 쓰다니, 그녀는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애도해도 모자랄 판에! 유라는 분노에 차서 자습실을 뛰쳐나왔다. 그녀는 정처 없이 걸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다리가 아파지자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바깥에서 부모님이 소곤소곤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라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음악을 틀었다. 프란츠 퍼디난드의 노래들이었다. <40‘>, <Take me Out>, <Ulysses>….

  프란츠 퍼디난드의 노래들은 몹시 에너지가 넘치고 신이 나서, 당황스럽게도 분노하는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러나 이어폰에서 <Take me Out>이 끝나갈 때쯤엔 유라의 마음은 이미 프란츠 퍼디난드를 암살해야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노래를 들으면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대해 검색하고 예매했다. 락커들과 팬들이 무대에 모여 열기를 뿜어내는 사진을 보자 그녀 또한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유라는 왠지 자신이 락 페스티벌의 주인공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알쏭달쏭한 마음이 신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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