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2 [주간 묘사 제 32호]

방승현 짧은 소설

2024.01.03 | 조회 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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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정된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 사람은 내가 마치 종종 이런 제안을 받아본 사람인양 날 대했지만 부러 묻지는 않았고 그래서 엄한 입술을 달싹일 필요는 없었다. 만약 물어봤다면 나는 기억 먼 곳을 더듬다가 결국 그런 적이 없다고 어렵게 대답을 내놓을 것이었다.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는 행동조차 생소하게 느낄 지경이었다. 그곳은 교회 앞이었고 상가 건물의 뒤편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제쳐야만 급수탑 앞 공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신년을 맞이하는 불꽃놀이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래서 무언가 대화를 엮어 나가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좁은 공터에 모인 너무 많은 사람과 그 소음에 그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결정적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에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게 들어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다가 이와 비슷한 장면에 대한 인상 같은 게 가볍게 머릿속을 지나고 나면 그때가 언제였는지를 짧게나마 추적해야 했다. 그도 그런 것을 반복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도 종종 말을 멈추고, 혹은 말이 끝난 직후 잠깐 침묵했다가 주변을 살폈다. 처음엔 떨어진 동전 같은 거라도 있나 싶어 나의 시선도 자연스레 따라갔지만 그런 행동이 반복되자 더 이상 나도 좇으려 하지 않았다. 열부터 수 세기가 시작되고 끝이 났을 때, 우리는 남들처럼 포옹했다.

  다른 동료와 마찬가지로 이후 그 사람을 본 일은 한 번도 없다. 동료. 업무상 수신된 이메일에 적힌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자면 그들은 그랬다. 그날 이후 이 단어가 머릿속에 자꾸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길을 거닐며 마주치는 낯선 것들과 같이 계속해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오용된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을지를, 개인적 사건들로 미루어보기 시작했다. 잊어버린 것에 대하여. 삶을 유지하기 위해 외면할 수 없는 것을 먼저 상대하느라 배제한 것들. 나는 어떤 집에 대해 생각한다. 잠시 방문했던 곳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오래 지냈던 곳일 수도 있다. 나는 긴 복도를 지나서 모두가 잠든 아주 고요한 새벽 불이 꺼진 거실로 들어간다. 몸의 감각으로 외워둔 몇 발짝을 걸어 다섯 칸 정도 되는 계단을 내려온 뒤 찬장으로 가 작은 잔을 꺼낸다. 달걀술은 부엌 어딘가에서 이미 가져왔다. 걸어오는 사람의 방향으로 반쯤 틀어져 있는 식탁 의자에 풀썩 앉아 술과 잔을 나란히 놓고 한 잔, 두 잔 정도를 마시면 곁들일 간식 생각이 나겠지. 그렇지만 아직 옷도 제대로 벗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도로 술을 가져다 놓고, 술잔은 물로 대충 헹궈 싱크대에 둔다. 술잔은 거기에 있다. 소파에서 불편한 자세로 자던 꼬마가 일어나 싱크대에 놓인 술잔을 깨끗이 물기를 없애 찬장에 도로 집어넣을 때까지. 거짓말처럼 그때와 같은 모양으로 나는 소파에서 깬다.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중 어떤 것도 기억해 낸 장면보다 분명하지는 않다. 확신의 찬 목소리가 들린다. 그 사람은 나의 엄마이고, 나는 매일 밤 기다리곤 했어요. 언젠가 당신의 외로움이 끝나기를.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대신에 한 번쯤은 나에게로 다가와 어떤 이유도 없이 안아주기를. 이후에도 사람들의 생활은 계속 어려웠다. 부동산 업체는 보이지 않는 희망을 돈을 주고 팔아댔고 그러기 위해 여전히 사람을 고용한다. 사람들은 매일 집으로 가는 길에 텔레비전을 보듯 단란하고 따뜻한 창문 안의 삶을 엿보았다. 누구도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집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베트남식 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식사하던 어떤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과 나는 함께 가정을 꾸리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부동산 일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 일에 대해 떠올리는 시간 역시 점차 줄어 들었다. 생활 패턴이 바뀌자, 나는 점차 일상적인 삶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주말에 가족끼리 카페에 가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아무 걱정 없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거나, 일찍 퇴근한 날 회사 앞으로 가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곧 플랫폼에 있는 작은 꽃집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이런 행동에 의도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또다시 찾아온 일 년의 마지막 날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러워 옆 사람과 제대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없을 때, 군중 사이를 지나는 엄마의 얼굴을 본 것만 같은 착각에 나는 그사이를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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