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세계의 보존 [주간 묘사 제 29호]

257 짧은 소설

2023.12.13 | 조회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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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섬세한 손길로 박제된 거북이의 등껍질을 쓸었다. 그녀의 손에 쥔 붓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쓸려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죽은 거북이가 화학 처리를 통해 영구적인 생명력을 지니게 됐다고 느끼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어째서 몇몇 사람들이 박제된 동물을 좋아하는지도 그중 하나였다. 죽어서 속이 비워진 동물들. 그중에서도 거북이는 아주 오래된 동물이었다. 거북이가 언제 죽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언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거북이의 등껍질은 요란한 무늬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녀는 그 무늬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저택은 오래된 분위기를 풍겼다. 한때 저택은 관리가 잘 되어서 웅장한 풍채를 자랑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녀 외에는 관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몹시 쇠락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혼자서 박제된 동물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동물들, 이제는 윤리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박제된 동물들.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오래된 양식. 그 박제된 동물들 중에는 예전에 키웠던 고양이도 있었다. 고양이는 살아 있을 때처럼 여전히 고약한 성질을 지닌 것만 같았다.

  그녀의 기억 속의 저택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들은 고위 관료이자 아마추어 박제사였던 그녀 할아버지의 박제 기술에 몹시 감탄하고는 했다. 그녀는 그로인해 박제사가 되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람들이 박제 기술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깨달았다. 그 많은 손님들은 집의 내부를 장식하는 수많은 박제들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가장 거대한 박제 동물인 사슴의 박제를 깨끗하게 손질하고 있다. 사슴의 뿔, 사슴의 가죽, 사슴의 눈, 사슴의 모든 것. 사슴이 보는 방향에는 무언가 있을 것만 같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만 같은 이 사슴은 언제든지 움직일 것만 같다. 그래서 저 멀리, 그녀를 두고 숲으로 사라질 것 같다. 어둡고 부산스런 숲으로.

  그녀는 때때로 동물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은 분명 무덤이라고 생각했다. 짐승들의 유령이 있어 박제된 몸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밤에는 침실을 빠져나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소변이 마려워도 한밤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최대한 피했다. 혹시나 움직이는 짐승을 마주칠까봐.

  그녀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연락할 수단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따로 연락이 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그녀를 돌보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홀로 조금씩 낡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낡아가는 느낌이었다. 문짝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바람 소리가 들리면 집 안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부서지는 느낌이었고, 그럴 때면 박제된 동물들이 같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손질이 다 끝나면 침실로 가서 누워 있었다. 그녀의 삶은 풍족했다. 풍족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박제된 동물들을 돌보는 일 외에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거의 보존하고 있었다. 오래전 좋았던 순간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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