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 [주간 묘사 제 28호]

서혜정 짧은 소설

2023.12.06 | 조회 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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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도착한 건 오랜만의 일이다. 작은 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 강 위에 난 작은 다리를 지나가면 보이는 할머니의 집. 오래전 그녀가 긴 학창 시절을 여기에서 보내는 동안 그녀는 맨날 꿈을 꾸곤 했다. 어디로 가든 다 아는 골목과 아는 가게, 아는 사람들이 있는 여기 말고 어디로든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당시 그녀에게 여기 이곳은 놀라울 정도로 시간이 게으르게 흐르며 모든 게 형편없고 지루한 곳이었다. 가끔 그녀와 아무 상관 없는 사건 하나둘 정도가 일어나더라도 모든 게 그치고 나서야 소문처럼 들려오는. 다 끝나버린 사건의 소문을 듣는 날이면 왜 그런 마음이 되는지 설명할 수 없게 그녀는 슬펐고 몰래 울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맨날 꿈을 꾸었다. 여기 할머니의 집을 나서 저 강 위에 난 작은 다리를 건너 이곳에 단 하나뿐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훌쩍 떠나는 꿈. 시간이 매섭게 흘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뭐든 겪고야 마는 그런 장소에서 놀라운 사건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 운명적인 사건이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뜬구름 같은 마음을 품을 때면 날씨는 폭삭 쏟아졌다.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고 그렇게 강물이 매섭게 부풀었다. 그런 날이 아주 많았고, 어느 날에는 잔뜩 술에 취한 옆집 아저씨가 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총 모양으로 손을 꽉 쥐고서는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총질을 하면서. 아저씨는 그녀를 향해서도 우두두두, 탕, 탕! 삿대질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꿈을 이루었다. 그녀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의 대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온통 새로운 것을 겪을 수 있을 것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과 처음 먹는 음식들, 처음 가보는 거리까지. 하지만 그것들을 겪으려면 필요한 게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가장 간곡한 목소리로 제발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녀의 할머니는 그녀가 대학교에 합격하였다는 사실에 조그맣게 기뻐하면서도 뒤에서는 울곤 했었다. 이제 많은 돈이 필요해질 그녀를 자신이 함께 감당할 수 있을까, 사실은 없지 않을까, 대학교가 있는 그곳은 여기 작은 마을보다 너무 크고 또 너무 비싸다고들 하는데. 모든 걱정을 가늠하면서 할머니는 자기 수중에 있는 돈을 세고 또 세곤 했다. 이후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떠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나고 그녀는 다시 여기 작은 마을에 돌아온 것이다. 작은 마을 사이를 가로질렀던 작은 강, 그리고 강 위에 난 작은 다리를 지나가면 보이는 할머니의 집 앞까지. 여기에 당도하기까지 그녀는 도시에서의 삶을 오래도록 도모했다. 도시의 대학교를 다니고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애도 하고 애인의 자취방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돈과 어느 정도의 빚으로 도시의 삶을 적당히 꾸밀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어느 회사에 아주 빠르게 취업을 했던가. 그녀의 꿈과는 아무 상관 없는 회사였지만 작은 마을로 돌아가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취업을 했어도 웬일인지 할머니는 자기 수중에 있는 돈을 계속 세어야 했었고, 그녀도 그랬다. 받은 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또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쓰고 밥을 먹는 데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어떤 사건을 발견하고 마주할 새도 없이 지금 당장이 급한 나날이 지나고 또 지났다. 그래도 도시는 그녀에게 괜찮았다. 설명할 수 없게 슬퍼지지는 않았으므로.

  하지만 도시의 생리는 그녀의 삶과 무관하다. 도시가 커질수록 그녀는 더욱 벼랑에 놓인다. 벼랑의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티던 그녀가 정말 그 끝에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이제 작은 마을, 그 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니던 옆집 아저씨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우두두두, 탕, 탕! 그녀 또한 총 모양으로 손을 꽉 쥐고서는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총질을 하면서 누구도 상관없을 부당함에 이겨보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매번 졌다.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돌이켜 보자면 도시에서 어떤 사건과 소문이 그녀와 얽힌 적이 없던 것은 아니나 지금에 와서는 왜 전부가 뜬구럼처럼 흐릿할까. 도시에서 마주친 몇몇 얼굴과 이름들이 그녀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더라도 그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제와 그녀는 궁금해진다.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 운명적인 사건을 오래전의 그녀는 어떻게 확신했으며 왜 이 순간만큼은 예감할 수가 없었는지를.

  이 순간 그녀는 다시 작은 마을에 있다. 작은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에는 이제 더 이상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 바짝 말라버린 땅에서 바짝 마른 풀이 자란다. 고로 어느 날에 날씨가 폭삭 쏟아지더라도 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매섭게 부푸는 강물도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이제 많이 늙었다. 할머니는 하얀 머리칼과 구부정한 허리, 작은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반가움과 얼마간의 간곡함이 섞인 목소리로 어서 와라 아이고, 어서 와. 할머니는 계속 말한다. 할머니가 생각하는 그녀의 미래를. 그 목소리에서 그녀는 어렴풋하게 할머니의 해방감을 본다. 아무래도 할머니는 죽음을 준비할 작정인 것 같다. 옆집 아저씨는 오래전에 죽었다고 한다. 불가피하게도 그녀는 이제 그런 목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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