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느 아침처럼 출근 전 마지막으로 거울을 볼 때였다. 왼쪽 뺨의 아래쪽, 턱 바로 위에 자그마한 생채기가 나 있었다. 어쩌면 그건 사사로운 사건이었을 수도 있다. 그 날 내 옆자리에 앉은 여직원이 처음으로 커피를 건네줬고, 나는 그녀에게 아침에 발견한 생채기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상처요? 아주 매끈한데요.”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오후에 화장실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에는 여전히 상처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나를 놀리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매일 커져 차츰차츰 자라난 상처는 어느새 얼굴의 왼쪽 뺨을 덮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여직원은 그 상처의 존재를 무시한 채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나를 놀리려는 것에 다소 어리둥절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관심은 상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그런 것이라 그녀가 상처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가능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상처가 나에게만 보이는 일종의 망상일 경우를 대비해 나는 정신과에 가야할지, 피부과에 가야할지 고민해야만 했다. 어쨌거나 상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황당한 고민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벌어진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다소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상처가 이상한 상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를 바라며 피부과에 갔다.
병원은 온통 흰색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고,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죄다 흰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있던 진료실만큼은 검은색 책장으로 가득했다. 마침내 내가 의사의 맞은편에 앉자, 그는 나의 말끔한 얼굴을(이건 타인의 시각으로, 나로서는 거울을 볼 수 없었기에 실제로 그 순간에 말끔했는지 알 수 없었다.) 보고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정신과에 가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네 저도 어디로 가야할지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나는 정신과에 들르게 되었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온통 밝았으나, 정신병자들에게 때 아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편안한 베이지색이 가득했다. 물론 의사의 방은 여전히 검은 책장들이 가득했고, 그로인해 나에게 몹시 익숙한 느낌과 동시에 체념을 일으켰다. 의사는 내 설명을 듣고는 이상한 병명을 알려주며 나의 상처가 신경과민의 일종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오로지 나만을 향해 펼쳐진 거울을 하나 놓고는 “자 이걸 보세요. 그리고 심호흡을 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심호흡을 하였고, 상처를 노려보면서도 기분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치료는 정말 효과적이어서 그 뒤로 거울 속에서 자라나는 상처를 봐도 놀라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옆자리 여직원은 나에게 점점 노골적인 관심을 보여 왔는데, 결국 그녀가 나의 얼굴에 커피를 쏟은 뒤에 우리는 사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상 상처가 만들어준 관계였다. 상처가 없었다면 그녀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몇 번의 미미한 호의들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평소에도 그녀에 대해서라면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상처가 있고, 그녀가 상처를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나의 상처를 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그녀는 도시 근교의 호수를 찾아가게 됐다.
우리는 호숫가를 따라 걸었고, 그녀의 표정이 산뜻한 게 눈에 띄었다. 호수로 이어지는 냇물을 건너는 다리에 이르러 나와 그녀 사이에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곧장 우리는 고개를 숙여 수면을 들여다봤다. 우리가 상처를 발견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먼저 그녀는 물고기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고, 어쩌다 수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더라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처가 반사된 이미지 속에서만 존재하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그게 그저 강바닥의 자갈이 어우러져 만든 다소 이상한 무늬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때 나에게 반사된 내 모습은 완전히 피부가 벗겨져 벌건 악마처럼 보였다. 나는 상처에 완전히 삼켜진 얼굴을 볼 때마다 심호흡을 해야만 했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가 천천히 나와 호수를 번갈아 바라봤고,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강바닥의 이상한 무늬가 내 얼굴이고 그게 수면에 비친 세계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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