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서울 기행

시간의 제곱을 더하는 도시, 서울

2024.03.17 | 조회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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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학원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하루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 이번 추신은 기행 시리즈의 첫번째 발행입니다. 사진과 글이 여느 매거진의 수준에는 한참 도달하지 못하지만 개인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적어봤습니다.

서울은 유난히도 시간이 빨리 흐르는 도시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섬으로 내려온 뒤부터는 지역으로서의 서울은 내게 여행이란 카테고리로 분류됐다.

나의 본가에서 마포구까지는 광역 버스를 타고 경인고속도로를 지나 35-40분 정도 걸린다. 마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행보다는 외출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섬에서 서울까지의 과정은 '여정'이 됐고 미리 저장해 두었던 공간들의 목록과 위치를 보며 전략적인 계획을 세우게 됐다. 이 행위들은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행기를 자주 탄다는 것은 통에서 텅으로 체력적인 소모도 알게 모르게 크다. 설렘은 있지만 잔향은 그리 많지 않다. 관광지에서 또 관광지로 가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를 선물받았다. 소설을 항상 내외했지만 하루키의 에세이 두 편을 읽고서 본업의 장르도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은은하게 어필했고 눈치가 좋았다. 엄청나게 술술 읽히는 건 아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나의 문해력과 기억력이 형편없기 때문에 여러 번 씹다 보니 속도가 더딘 편이다). 하여튼 소설과 함께 근래에 구매한 리바이스 501 66후기와 오리엔탈 유나이티드의 루프휠 후디, 미군 폴라텍 플리스를 걸치고 출발했다. 서울은 춥다고, 추울 거라고 뉴스와 상상으로 뒤덮인 채 옷을 골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추위를 견디기 위한 차림새는 아니었다. 빈티지와 밀리터리 의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하게 지식이나 제품을 깊고 다양하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미 나와있는 정보가 충분하기에 구매 전 잠깐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서칭을 하다 보면 시간 대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 특혜를 잘 누리고 있다 생각한다. 501 66 후기를 굳이 고집한 이유는 가치를 찾았기 때문이다. 80,90 년대의 훌륭한 제품들도 있고 가성비가 뛰어난 것들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이것을 선택했다. 빈티지와 구제의 차이는 시간이 주는 가치에 따라 부르는 것이 달라진다고 한다. 구제 불능인 나는 빈티지를 입고 싶었다.

언제나 비행길에서는 창가 자리를 선호한다. 특별하거나 중요한 이유는 없지만 나는 시간과 장소 불문 머리가 안정적인 곳과 맞닿으면 자는 습관이 있기에 안쪽 자리를 선호한다. 사오정과 사촌임이 분명한 나의 잠버릇은 입을 벌린다는 것이다 (가끔은 입이 벌어진 걸 인지한 채 일어나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 못난 모습을 보여주기 전 처음으로 옆자리가 공석으로 탑승 마감된 채 이륙한 첫 경험이다. 항상 꿈꾸던 것이 정말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편하게 갔던 것은 아니지만 팔걸이 눈치 싸움에서 해방된 것과 착륙 후 비행기 밖으로 나가기 전 남이 일어나기 전까지 앉아 있어야 하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이코노미 이상의 좌석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아마 이번 비행만큼은 그 누구보다 쾌적하게 갔으리라 생각한다.

일정에는 없었던, 정확하게 말하면 잡힌 일정이지만 어떻게든 빼고 싶었던 운동이 있었다. 나에게는 스승이자 친구와 함께 또 다른 한 명의 제자와 함께 운동을 진행했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운동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갑자기 찌릿한 느낌이라도 받았는지 지금 해야겠다며 서로 자극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헬스장으로 출발했다. 운동은 잘못이 없었다. 이토록 개운하고 알찬 시간은 없었다. 물론 이틀 뒤에 오는 근육통 덕에 가방을 메고 돌아오는 날에는 후면부가 그렇게도 뻐근했다. 사진은 친구의 도시락 가방에서 떨어져 나온 콩고물인 닭 가슴살 볶음밥이다. 원래 냉동 보관으로 해동 없이 조리해 먹는 제품이지만 내가 받았을 때에는 이미 201% 해동된 상태였다. 하지만 공복 시간이 길었던 내게는 무엇이든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듯하게 먹는 모습을 그리며 현관을 열고 들어선 순간 불 꺼진 집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지금은 내가 배고프다고 본능을 허락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봉지를 뜯고 숟가락을 집어넣어 비조리 상태로 먹었다. 맛의 비유를 하자면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은 햇반과 비슷하다. 밥알은 푸석하고 씹히는 맛은 최악이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배가 고픈 건 부정할 수 없었기에 일단 먹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에 배가 조금 아팠다.

사실 서울 기행의 부제는 예비군 기행이라 해도 된다. 주 목적은 예비군이었고 이토록 귀찮은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전투복을 입을 때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2017년의 나는 얼마나 야윈 몸이었고 전투화는 왜 255mm를 보급 받았는지, 엄지와 전투화의 끝이 자꾸만 붙어 있으려 한다. 바지를 입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 배를 진공 상태를 만들어야만 바지 단추가 잠긴다. 살이 찐 것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이상했다. 미래를 생각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부터는 조금의 증량도 불안하다.

겨우 숨이 쉬어지는 전투복을 입은 채 훈련장으로 출발 전 커피를 샀다. 나는 지독한 커피 취향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카노를 지양하고 필터 커피를 지향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원두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에티오피아와 케냐, 콜롬비아에서 자라는 원두를 찾는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산미가 강하고 열대 과일의 향미를 가졌다. 틀릴 수도 있는 정보이다. 나는 깊게 찾아보지 않고 직접 경험한 뒤에 정보를 찾기에 시행착오가 많은 편이다. 로스팅은 약배전으로, 가공 방식은 내추럴을 선호한다. 원두를 자주 구매하는 카페에서 말하길 내추럴 형태로 가공된 원두는 분쇄 직후에 올라오는 향이 강하다고 한다. 약배전된 원두는 빠른 시간 내에 추출하여 식어가는 동안에 변하는 향을 느끼는 것이 즐겁다. 직접 내려 마실 때에도 아이스보다는 따듯하게 내려 두 잔 분량으로 나누어 마신다. 커피도 취향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취향이 확고하다 말할 수 있다.

커피 얘기가 나와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섬으로 다시 돌아오기 직전 동교동에 위치한 이미 커피에 들렀다.

이미 커피는 다른 길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는 슬로건으로 운영된다. 첫 방문이었지만 마치 여러 번 들른 익숙한 공간의 느낌을 주었다. 응대와 준비된 원두의 라인업, 그리고 디저트와 함께 페어링 하기 좋은 원두를 큐레이션 해주는 점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어떤 공간도 마찬가지겠지만 진정성을 기본으로 뒷받침되는 큐레이션의 중요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방문했던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순간이었고 대기하는 팀도 생겨났다. 하지만 훌륭한 응대 덕에 기다리는 동안의 사람들 표정에는 구겨진 주름을 찾을 수 없었다. 필터 커피만을 다루는 곳은 주문부터 커피를 받는 순간까지 기다림이 요구되지만 이미 커피는 그마저도 즐기게 되는 힘을 가졌다. 오늘 내가 마셨던 원두는 콜롬비아 허니 무산소 원두였다. 무산소 원두는 각자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특유의 향이 있고 첫 입을 마시는 순간에 강하게 찌르는 향미가 일품이지만 지속해서 마시기 어려운 커피라고 생각된다. 향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주관적인 의견).

커피를 다 마신 후에 공항으로 출발 전 이미 커피 앞에 있는 분식집에 들어섰다. 라면과 야채 김밥. 기본과 기본이 만나면 초월이 된다. 기숙사생인 나에게는 끓인 라면은 꿈만 같은 존재다. 3500-4000원 사이의 금액을 지불 하고서 먹는 것은 일상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이다. 하지만 달랐다. 그리던 꿈을 눈 앞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융통성이 부족한 나에게도 막힌 마음을 뚫어주었다. 과장을 보태어 말하자면, 저 두가지만으로도 평생을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참, 얼른 먹고 공항으로 돌아가야한다. 탑승 시간은 속절없이 다가온다.


이렇게 짧은 서울 기행을 마쳤다. 이곳에 적힌 정보들은 모두 사실이 아닐 수 있으며 주관적인 의견으로 치장된 것이기에 다소 틀린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 혹시나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르다면 꼭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란다. 이전에는 애매하게 알고 있는 건 그 어느 곳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틀리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더 단단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 글을 시작으로 아는 것을 적고 피드백 받으며 취향을 넓혀가 보겠습니다.


"내 여자가 부산에 내려가 있는 동안 내 고향 서울엔 눈이 내렸다. 괜히 애틋한 마음에 내 고향도 기차로 한참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리워할 장소가 없어도 그리워할 사람이 있으니 괜찮다. 고향을 위한 변변한 노래 하나 가져본 적 없는 서울 사람들을 위해, 서울 사람이 불러보았다. - 조휴일

서울은 참 생각 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유난히도 차가운 도시이며 동시에 가장 뜨거운 곳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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