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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행2

대구대구 재밌는 도시

2024.11.17 | 조회 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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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하루쯤

구독자님 오늘도 반갑습니다! 두번째 대구 기행입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의 마지막은 그리 화려하지 못해 늘 아쉬울 뿐입니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다녀오면 꼭 감상을 쓰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비단 여행 뿐 아니라 산책이 되더라도 가능한 글자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양적인 측면으로 숙달 훈련이 되면 이는 질적인 측면으로 변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 순간을 찾기 위해 오늘 도 글자를 쓰기 시작합니다!


 나는 넓지 않은 인간관계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은 대구에 살고 있는 토박이다. 사실 그 토박이(실제로는 형)와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시간이 맞아 만남을 성사시켰다. 이 사람의 특징은 한 지역에서 계속 살아왔고 한 분야를 꾸준히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가 수준으로 올라서 있었다. 그러면서 주변으로 형성된 관계 구조도 흥미로웠는데, 계속해서 나를 데리고 다니며 들렀던 곳엔 반갑게 맞이하는 가게 주인들이 있었다. 덕분에 혼자라면 먹지 않았을 음식과 커피를 마시게 됐다. 타인에 의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순간의 연속이다.

 토박이(형)에게 들은 대구 이야기가 있다. 이 지역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데, 맛의 고장, 면의 도시, 섬유의 도시(당시 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아 현금 부자가 많다고 한다) 등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듣고 많은 흥미로운 감정이 생겨났다. 면의 도시라고 불리는 대구는 급한 성격이 비춰지는 특징이라고 한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빠르게 먹고 빠르게 다음 일을 해야 했던 걸까 작게 나마 유추를 해본다. 대표적인 면 요리 중 중화 '야끼 우동'은 대구 동성로의 한 중식당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 음식은 2000년대에 수도권으로 전파되어 현재는 많은 식당에서 다양한 개성으로 판매 되고 있다. (여담으로 일본인이 여행으로 대구에 와서 '야끼 우동'을 시키면 적잖이 당황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에서 판매하는 것과 같은 이름이지만 쓰이는 재료나 맵기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역설로 대구 시민이 일본에서 당황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영화반점의 야끼우동이다. 은은하게 매콤한 양념이 질리는 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영화반점의 야끼우동이다. 은은하게 매콤한 양념이 질리는 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섬유의 도시라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과거 활발했던 섬유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여전히 대구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현금을 가진 사람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대구는 낮은 연봉과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고 대신에 창업 비중이 높다. 비슷한 이야기로 대구는 가게마다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암묵적으로 가격이 높아지면 폐업할 확률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맛과 가격을 합리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빠른 가게 회전을 요구하고 어쩌면 대구는 서울보다 더 치열한 상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섬유와 창업은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활발했던 대구와 현재의 대구는 대비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지인과 알찬 만남을 뒤로 '동아식당'으로 향했다. '동아식당'은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 중 한 곳이다. 나는 어떤 음식 문화에 대해 깊은 탐구를 하거나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아니지만 작은 소신 정도는 가지고 있다. 나는 약 4년간 접객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했던 직종에 있었다. 내가 나를 평가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직원이었지만 낮은 별점을 받기 전 고객에게 최소한의 환대로 양쪽이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이기 때문에 맞고 틀림을 적확하게 나눌 수 없지만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내가 환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허들이 낮은 기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서비스'를 제공 받는 행위에는 다양한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덩어리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상호간 인사와 응대 말투, 그리고 한명의 고객으로서 받는 배려 섞인 행동 정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가졌고 이걸 전달하는 이 행위 자체가 얼마나 부족하고 얕은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고객의 입장으로서 바라던 환대의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보통 과거로부터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많으니까. 내가 제공하지 못했던 입장에서 제공 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 반대로 환대에 대한 경험을 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일까, 그렇게 밥 먹기 전, 동아식당의 환대가 정말 적당한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동아식당의 된장비빔면.
동아식당의 된장비빔면.
동아식당의 계란김밥
동아식당의 계란김밥

 이른 저녁을 먹고 저녁 6시가 되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새롭게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넓은 공간에서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게 즐거운 일이 되었다. 사실 넓은 공간과 좋은 스피커는 잘 갖춰진 곳이 아니라면 즐긴다는 표현을 쓰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막 감상에 대한 취미를 가진 내게는 노트북에 꽂힌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마저 좋게만 느껴진다. 대구에서 마지막 날의 기억을 좋은 향수로 남겨두기 위해 공간과 음향기기가 갖춰진 곳을 찾아갔다. '제임스레코드'. 이미 대구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곳 같았다. 이곳은 감상 뿐만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도 해내고 있었다. 바로 어제, 그러니까 대구 기행 1편에 담겼던 날에 이곳에서는 <아마도 생산적 활동> 이라는 독립출판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래서 첫 날에는 제임스레코드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제임스레코드. 오픈 직후 가게에는 나 혼자 자리해 있다.
제임스레코드. 오픈 직후 가게에는 나 혼자 자리해 있다.

 좁고 날카로운 음악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공간에 따라, 또는 DJ의 센스에 따라 잠시동안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서 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경험은 도전이 없다면 얻을 수 없는 가치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이치 중 하나이다. 직원과 어색한 눈맞춤을 몇 번 하다보면 무안한 감정을 잊기 위해 혼자 있는 가게에서 음악은 배경이 되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사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기를 여러번 하다보면 어느새 손님은 하나 둘씩 가게에 입장하는데, 대부분 여럿이서 방문했다. 가끔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위해 바 앞에 위치한 자리에 앉는 사람이 보이기도 했고 그들은 모두 혼자다. 나는 그 모습이 어쩐지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 즐거움을 이어갔다.

 음악을 듣는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들이킨 맥주 덕에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애써 붙잡는 것은 결국 과거를 파헤치는 일밖에 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나를 제외한 누군가에게 어제는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로 넘기고 싶었을 수도 있으니까, 머릿속 도굴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집에 갈 시간이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길에는 미련과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리고 추억을 곁들였다. 나는 언젠가 대구에 다시 올 것만 같다. 그것이 빠르게 다가올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한가지 분명하게 하고 싶은 것은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도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대구 기행을 마친다.


 2주에 걸쳐 대구 기행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기행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덕분에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환기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추신의 주제가 내면의 생각보다 외부적인 활동에 의존하는 것만 같아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이 싫거나 본질을 잃어버리는 행위는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습니다. 에디터란 자신이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고 있는데, 저는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에디터가 될 수 있기는 할까요? 


단풍이 짙게 물든 날, 아련하게 들어오는 햇살과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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