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을 쓸 때면 날짜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를 테면 이번 도쿄 기행은 6박 7일의 일정이지만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내 머릿속은 이미 4-5일이 지난 상태로 봐도 좋을 지경이다. 이것이 싫거나 좋거나, 글의 흐름을 깨뜨리거나 넝쿨식물처럼 방향없이 뻗어나가거나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글쓰기'라는 것은 미래를 당겨와 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끌어와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미래에 벌어질 일 따위에 행복한 상상을 하며 꾸며낸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는 될 수 없다.
내가 도쿄에 오게 되면 '신주쿠'와 '시부야'는 배제할 수 없는 곳이 된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많고, 인스타그램으로만 보던 장소나 '한국에 없는 옷 또는 브랜드'가 가장 많이 분포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옷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여행객도 분명히 많으리라. 무엇이든 구매를 할 때면 한참을 고민하는 내게 해외 구매란 등에 식은땀을 흐르게 만드는 상황일 뿐이었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오해하지 않아도 될 직원의 호의를 오해하며 혼자서 발을 구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등장한 'DUG'를 방문했다. 신주쿠에 있는 이곳은 커피와 위스키를 판매하고 '음악'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나 또한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만 생각하며 지내다 마침 좋은 기회와 시간이 주어졌고 주저 없이 가게의 문을 열었다. 가게는 지하에 위치했다. 문을 여는 순간 묵직한 담배 냄새가 몸을 감쌌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흡연자와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점원의 안내를 기다려야만 한다. 내 앞에는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있는 내가 안내를 먼저 받았다. 흡연 좌석과 비 흡연 좌석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사실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좌석 간 구분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그곳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바 테이블로 안내를 받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일면식도 없는 나를 제대로 간파한 점원이 마침 구석 자리를 안내했다고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실내의 모습은 오래된 가게인만큼 세월의 상흔은 다분하게 존재했다. 빛 한 줌 들지않는 곳에서 조명에 의해 빛바랜 책과 주문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이미 개봉되어 있는 술병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제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이것을 찾기 위해 어쩌면 다시 처음부터 여정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준비가 되어있다.
도쿄 기행은 다음 편에서 갈무리 될 예정입니다.
완벽한 게으름이 분량 조절 실패를 불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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