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매년 느끼지만, 벚꽃이 피고 지는 속도가 무섭게 빨라요. 얼마 전만 해도 봉오리였는데 오늘은 활짝, 내일은 우수수. 붙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계절이에요. 그래서 봄에는 더 부지런해지고 싶어져요. 한 번이라도 더 나가고, 한 번이라도 더 올려다보고, 한 번이라도 더 "좋다"라고 중얼거리고 싶어요.
봄을 얼마나 누리고 계신가요? 오늘 하루도 화창한 날씨처럼 맑고 다정한 순간들로 가득 채우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구독자님. 잘 부탁해요!

✏️ 이렇게 사용해요
불친절하기로 알려진 프랑스인을 녹이는 마법의 주문이 세 개 있다. ‘봉쥬(Bonjour)’, ‘메씨 보꾸(Merci beaucoup)’, ‘실부플레(S'il vous plaît)’
서툰 프랑스어로 인사하고, 감사함을 표현하고, 공손하게 부탁하니 차갑게만 느껴졌던 프랑스인들은 언 강물이 갈라지듯 숨겨둔 다정함을 꺼내주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 나와 남편은 프랑스 여행 중 눈이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봉쥬"를 외쳤다. 공항 보안요원의 굳은 얼굴도, 니스의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친 지친 직장인도, "봉쥬" 한 마디에 슬쩍 미소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우리의 주변음은 다시 고요해졌다. 자주 들르는 편의점이나 엘리베이터에서 훨씬 더 가까운 이웃들을 만나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법을 잊어가다가 봄이 왔다. 봄이 되니 프랑스에서 배운 인사의 감각이 떠오른다. 바람이 느슨해지고, 햇빛이 한 톤 밝아지는 날에 답청하면 사람뿐 아니라 세상 만물에 인사를 건네고 싶어진다. 푸르게 열린 하늘에도, 막 피기 시작한 벚꽃에도, 얄궂게 나뭇가지를 톡톡 떨어뜨리는 참새에도. 겨우내 말없이 버티다 이제야 제 색을 드러내는 예쁨들에게, 괜히 말을 붙여보고 싶다.
두 살짜리 아이도 비슷한 마음인지 길을 걷다가 자꾸 멈춰 선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인데 봄 필터가 입혀져 더 아름답게 보이는 모양이다. 길가에 세워진 주차 금지 표지판과 행인의 눈길을 빼앗으려 조잡하게 쌓인 풍선을 갑자기 끌어안더니 “사랑해”를 외친다. 경비원을 발견하면 인사하고 싶어 멀리서부터 몸을 들썩인다. 온 세상이 인사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아이의 순수한 활기 앞에, 굳어있던 얼굴들에 환한 봄꽃 같은 미소가 피어난다. 요즘처럼 하늘이 푸르고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날이면, 나도 아이같은 답청객이 되어보고 싶다. 조금 더 과감하게 사람에게도, 계절에도 인사를 건네는 쪽이 되고 싶다. 만나는 모든 풍경을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은 봄날이다.
청명엔 답청이 제철

종교가 없는 제가 인생의 바이블처럼 두고 읽는 책이 있어요. 김신지 작가님의 《제철 행복》입니다. 각 절기의 풍경과 그때 꼭 해야 하는 작은 숙제를 소개하는 책을 머리맡에 두고, 매 절기가 되면 꼭 읽어봐요.
이 뉴스레터가 발송된 전 날인 4월 5일은 이십사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淸明)이었어요. '푸를・청' 자와 '밝을・명' 자가 합쳐진 청명은 이름 그대로 하늘이 점차 푸르고 밝아진다는 뜻이죠. 제가 사는 지역은 마침, 오랜만에 미세먼지 하나 없어 티 없이 맑아 설레는 마음으로 벚꽃을 구경했어요. 저는 아직도 봄이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들으며 답청을 나가는데, 들을 때마다 붕붕 뜨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어요. 벚꽃 옆에 돋아나는 초록 잎을 보면 벚꽃과의 이별이 가깝게 느껴지니까요. 이 풍경을 다시 보려면 찌는 더위, 매서운 추위와 씨름을 오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득해져요.
아름다운 날에는 24시간을 48시간처럼, 하루에 몇 번이고 외출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책 《제철 행복》에서 소개하는 청명의 제철 숙제를 구독자님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붙잡을 수 없으니, 부지런을 떨며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봐요!
- 골목길이나 산책로에서 앞으로 1년간 지켜볼 '내 나무' 정해보기
- 꽃달임 나갈 날짜와 장소를 정해 미리 약속 만들어두기
- 청명주와 진달래 화전을 대신할 나만의 꽃놀이 페어링 메뉴 찾기
지난주 낯선 단어: 명지바람
퇴근길에 불어오는 명지바람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 어딘가가 잠깐 비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 짧은 순간 덕분에 하루가 조금 덜 무겁게 느껴진다. 요즘 그런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한다. 설명되지 않아도, 잠깐 스쳤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날들이다. — by.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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