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가끔은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제대로 숨은 쉬고 있는지 잊게 될 때가 있어요. 저는 너무 바빠 앞만 보고 달리는 날이면, 일이 끝났을 때 숨을 크게 들이쉬어야 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우리는 저마다의 바위와 파도를 넘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어요. 거센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깊은 곳까지 내려가 답을 찾으려 애쓰기도 하죠. 구독자님이 오늘 머무는 곳이 어디든, 너무 고단한 날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 이렇게 사용해요
※안내: 아래 본문에서 '자맥질'은 단순히 물놀이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견디며 수면 위로 숨통을 틔우기 위해 치열하게 발버둥 치는 삶을 비유합니다.
질식할 것 같은 회색 도시에서 머무르기 위해 자맥질하며 버텨온 한 여자. 발목을 잡아채는 해류에 수천 번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악착같이 버텼다. 발길질할 힘이 남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갈구한 것은 단지 온기였다.
여자는 아무 연락 없이 부모가 사는 지방 도시로 향했다. 고속 열차에서 내려, 굳이 버스를 타지 않았다. 막 여름으로 넘어가려 끈적해진 공기를 헤치며 걷는 동안, 끈덕지게 붙어 있던 해도 어느새 자취를 감춰 하늘은 붉게 물들어갔다. 약속 없이 온 길이었으므로, 여자는 재촉하지 않고 집을 향해 무겁게 걸었다.
그 길의 끝, 여자의 엄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우연인지, 자식의 기척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엄마의 감각인지는 알 수 없다. 둘은 길 복판에서 마주쳤다. 여자는 덤덤했다. 다만 측은함이 배어 있었다. 엄마는 잠깐 놀랐으나, 그 표정을 보자, 다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말없이 딸을 안았다. 그리고 다 괜찮다고, 포기하고 와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너지는 것은 무섭지 않다. 무너지는 순간을 숨겨두는 것이 무섭다.
현대 미술을 뒤흔든 자맥질, Damien Hirst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현대 미술의 '악동'이라 불리는 Damien Hirst(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요. 저는 늘 이 이름을 들으면 대학 강의실이 떠올라요. 거대한 수조 속에 떠 있는 죽은 상어 한 마리. 작품 제목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교수님께서 이미지를 보여주시며 이게 예술이 될 수 있을지 물으셨죠.
허스트의 업적은 단순히 죽은 상어를 예술로 만든 것만은 아니에요. 예술의 공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전까지 미술은 미술관이라는 막힌 공간 안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것이었죠. 허스트는 미술관의 벽을 허물었어요. 죽은 동물을 수조에 넣고,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박고, 약통을 벽에 빼곡히 채웠어요. 아름다움 대신 불편함을, 감상 대신 논쟁을 일으켰어요.
시장의 문법도 흔들어놓았어요. 허스트는 갤러리를 거치지 않고, 경매 회사인 '소더비'에 자신의 작품을 직접 내놓았습니다. 당시에는 갤러리가 작가를 발굴하고 가격을 결정하여 중간에서 거래하는 구조였으니, 허스트의 행보는 매우 파격적이었죠. 예술가가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고, 시장의 규칙을 직접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에요. 오늘날 작가들이 SNS로 자신을 알리고, 팬덤을 만들고, 직접 작품을 판매하는 방식들이 당연해 보이는 데에는 모두 허스트의 영향이 있어요.
예술의 고고함을 지키려는 세력과 자본주의의 거대한 파도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허스트의 처절한 자맥질은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덕분에 현대 미술의 영토가 훨씬 넓어진 것 같아요. 정해진 아름다움의 공식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대중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즐기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지난주 낯선 단어: 답청
날이 풀리면 괜히 답청을 하자.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괜찮다. 아직 완전히 푸르지는 않지만, 어딘가 달라진 기색이 보인다. 막 돋아나는 기운을 찾아 나서자. 잠깐 걷다가 돌아와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서보는 일. 변화를 알아보는 일. — by.요리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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