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설렘으로 쉬이 잠 못드는 밤

크리에이터의 짜릿함

2021.06.26 | 조회 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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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글쓰기 수업의 연장으로 '학부모가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을 맡았습니다. 저는 '학습자가 스스로 필요를 느껴 공부할 때 효과가 가장 크다'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아이를 키웠습니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공부는 효과가 없고 자기가 필요하다 느껴 학습해야 실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합니다만. 공부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독서를 강요하거나, 글쓰기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시간을 두고 구상하는 중입니다. '초등 글쓰기'로 시작하는 책을 읽으며 아이나 어른의 글쓰기 지도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버스에 탄다'에서 '탄다'의 반대말을 '못 탄다'라고 말한 아이다운 말을 정리해 두었기에 예제로 사용해볼까 하고 10년도 넘은 과거 글을 살펴봤습니다. 출간작가이고 글쓰기 수업도 진행하는 현재의 제가 읽기 부끄러운 원석이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멋지게 변모할 아이디어로 가득한 글이 보석상자에 넘쳐나더군요. 글을 잘 쓰든 아니든 기록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꾸준히 쓴 일기가 《아이 키우며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건》에 글감이 되었거든요. 이번  '학부모가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에도 다듬어지지 않은 과거 글을 예제로 활용할 겁니다.

내친김에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둔 블로그 비공개 글도 둘러봤습니다. 2006년에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을 쓰거나, 아이와 관련한 일상을 간단하게 썼어요. 아이들의 친구들이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요. 아이들의 사생활과 초상권을 보호하려고 모두 비공개로 바꾸었어요. 

첫 블로그 글, 지금봐도 귀여운 아이들
첫 블로그 글, 지금봐도 귀여운 아이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에 쓴 오션월드 2박 3일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며 이렇게 코멘트했어요.

노빈손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노빈손 시리즈를 읽는 느낌이었다. 

"노빈손 오션월드를 가다." 

요즘은 시들하지만 한때 로빈슨 크루소 따라잡기로 노빈손 시리즈가 열풍이었고 아이들은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독서나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기억하지만 지금 보니 딸의 글에 제가 숙제를 강요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심지어 딸은 ‘집에 가면 엄청난 속도로 숙제를 해야 될 거야…….’라는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ㅎ

아이들은 친구 집에 걸어서 놀러가기 어려운 시골에서 자랐어요. 놀거리라고는 마당의 토끼나 강아지가 전부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매주 대여한 도서로 탑을 쌓거나 밟고 다녔어요. 일주일 동안 가지고 놀 수 있는 책이 8권 정도라 아이들은 가지고 놀다 지쳐 읽고 또 읽었습니다. 글쓰기를 지도한 적은 없지만 딸은 글을 제법 썼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받은 유일한 상장은 글짓기 대회 우수상이었습니다. 그 원천은 아들이 중학교때 스마트폰으로 섭렵한 방대한 웹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득, 다른 사람의 경험이 담긴 책으로 강의자료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저 역시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뿐 보석상자에 경험이 가득 담겨 있네요. 강의 장표를 구상하며 다듬다 보니 어느새 밤 12시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짜릿함인지 잠자리에 누워서도 쉬이 잠들지 못했습니다.

저는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 (크리에이터, Creator)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강의할 때 현장의 느낌을 알 수 있어 좋지만, 강의 장표를 생성할 때는 수강생의 입장을 상상하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기쁨도 크거든요. 그래서 글쓰기와 유튜브 영상 제작하는 걸 즐기나 봅니다. 완성될 슬라이드, 글, 영상, 강의를 생각하며 머릿속에 구상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생각을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예전에 강의 만족도 만점만 받아오던 '5.0 강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매번 똑같은 완벽한 기초 강의를 여러 회사에서 진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해도 주 40시간 이상 강의 의뢰가 들어오는 명강사였기에 고객 맞춤화 강의는 피하고 싫어했습니다. 완벽하게 구비된 강의를 전달하기도 바쁜데 굳이 시간을 내어 강의내용을 변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세상이 바뀌면서 고객의 요구는 그 속도보다 빨리 변했고 그분은 결국 자신만의 시간 안에서 멈추었습니다.

매번 똑같은 강의를 하면 물론 편하고 시간도 절약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마이너스 성장을 합니다. 신규 강의를 맡으면 고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는 게 반드시 생깁니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새로운 연구를 하며,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성장합니다.

오늘 밤, 쉽게 잠들지 못하도록 여러분을 붙잡는 것은 무엇인가요? 설렘인가요, 불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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