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쓸 때 유독 내 과거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은 추억에 잠겨 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이야기보따리상 같은 나는 오늘 보따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아주 신나게 달리던 시절이다. 중학교 2학년쯤이었던가? 물론 내 다리로 뛰는 것이 아닌 마장에서 뛰었다. 우연히 교육청에서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수요일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였다. 처음 가자마자 얼떨결에 헬멧을 쓰고 사이드 워커(기승을 하였을 때 사이드에서 도와주시는 분)와 리더(고삐를 잡고 앞에서 리드를 해주시는 분)과 조교님과 승마장을 달렸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나는 요일이 정해져 있지만 승마장에서 뛰어놀은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기승을 하는 법, 말과 교감하는 법부터 시작하였을 때 가장 어려웠을 때는 기승하는 법과 기승해서 승마를 할 때 텐션감을 유지하면서 시야를 멀리 보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걸을 때조차 멀리 보는 사람인 나는 승마를 하면서 시야를 넓게 멀리 보라고 하다니..
참 어렵지만 재미가 있다. 자신감이 생기고 즐거웠다.
교수님이 나를 칭찬해 주시고, 진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나는 훨씬 빠른 편이어서 나의 꿈은 '기수'가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칭찬에 목마른 아이였다. 그 목마름이 승마로 인하여 충족되어가고 있었다.
재미있게 시작한 시점은 속보를 하고, 장애물을 피하기를 하고 사이드 워커가 점점 줄어들수록 나의 흥미는 내 승마 속도처럼 속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말로만 듣던 단어인 박차를 가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만큼 내 안의 스트레스와 목마른 결핍도 해결이 되어가고 있었다. 교수님은 내가 승마를 잘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저 어린아이에게 하는 칭찬 즉, '립 서비스'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게 아니었을까?
내가 대표로 '마사과'를 홍보를 제안을 받았다. 정말로 짜릿하고,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제안이 와서 부모님 허락과 함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 사과에서 일하시는 분이 오셔서 같이 승마장을 미친 듯이 신나게 달렸다.
'초코'라는 말을 나는 주로 기승했던 아이이다. 아주 온순하고 착한 아이이다.
이 아이와 속보를 하든 뭘 하든 무섭지 않았다.
프로그램과 꽤 여러 기회들이 나에게 다가왔었다. 아주 과분할 만큼.
그런 승마를 배우는 동안 나는 날개를 단 아이처럼 배우고 달리고 또 달렸다.
나를 예쁘게 봐주시는 교수님과 학생분들(기승 시 도와주시던 분) 덕분에 그 학교에 그 학과를 가고 싶었다.
아주 간절한 만큼.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고, 전공이 사회복지과이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래도 배우고 나서 제주도 가면 '다치기 전에 승마선수'였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한 번 더 풀어볼까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느 분야에서 뛰어놀았는지 나와 공유해 주길 바라며 좋은 밤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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