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예또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는 참 오랜만이야.

[순간예또] 첫번째 편지. ‘처음’에 대한 이야기.

2024.01.09 | 조회 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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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예또

꿈과 사랑, 희망을 노래하는 행운의 편지.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어.

'내 생각을, 마음을, 느낌을, 감정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아마 잘 알고 있겠지만) 무대에서 연기를 했고, 사람들에게 정신과 신체의 건강함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을 했어.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나의 모든 도전을 응원해 주었고, 운이 좋게 인정도 많이 받을 수 있었어.

'적성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으니 내 도전들이 꽤 성공한 셈이었지.

그런데 뭐랄까. 이런 외부에서 오는 인정과 격려와는 반대로 안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공허함이 있더라.

나는 그게 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했어.

그러고 나서 이윽고 깨달은 거지.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아, 내 소개를 다시 정식으로 할게.

나는 예또(a.k.a 체성이)야.

예또라는 별명은 유튜버와 BJ, 배우 등 다양한 활동을 모색하던 2019년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단어였어.

다섯 글자를 줄여서 만든 말인데 나를 잘 알고 있다면 아마 쉽게 예측이 가능할지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수식어는 없는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꽤 만족하고 있어.

아버지가 지어주신 '송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내가 직접 지은 '예또'라는 별명도 못지않게 애정해.

나는 그저 늙어가는 내 모습도 예또스럽게 늙어갈 수 있길 바랄 뿐이야.

 

이 편지에 대한 소개도 정식으로 하자면,

바야흐로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어... 당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공유하지 않을 시 당신의 가족이....

ㅋㅋㅋㅋ미안! 장난 한 번 쳐봤어.

우연의 일치지만 하필 내 편지도 (진짜) 영국에서 시작되고 있고 행운을 가득 담아 보내는 건 사실이잖아?

기존의 행운의 편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시해도 불행 같은 건 당연히 없고) 오로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만 담아 보낸다는 것 정도?

그리고 이 편지는 나름의 체계도 가지고 있어.

매달 끝자리가 9로 끝나는 날마다 발송이 될 거고, 매 편지마다 하나의 단어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 거야.

이 편지는 첫 시작인만큼 키워드를 '처음'으로 잡아봤어.

어때? '처음'이라...뭔가 듣기만 해도 설레는 감정이 들지 않아?

첫 편지로 담기에 아주 좋은 단어인 것 같아. 처음.

 

아,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이 편지에 대한 설명을 조금만 더 덧붙일까 해.

매 달마다 월간예또 상, 중, 하편으로 나뉘어 발간이 될 거고 각각 꿈(커리어), 사랑(연애) 그리고 대인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해.

이것들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분야이기도 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아닐까 해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그리 거창하진 않아. 단지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이고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게 다야.

행복이라는 게 전혀 어려운 게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누구나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가끔 참 안타까워.

내 편지가 구독자의 일상에 행복을 단 한 방울이라도 첨가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해볼까?

오늘의 키워드는 '처음‘, 그리고 9일날 발송되는 월간예또 상편에서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잖아.

심플하게 가볼까?

어렸을 때 구독자의 처음 꿈은 뭐였어?

 

어렸을 땐 참 단순하잖아. 나는 그때 피아노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장래희망을 적는 칸이 있으면 피아니스트를 적곤 했어.

발레를 배우는 애들은 '발레리나', 미술 배우는 애들은 '화가, 게임 좋아하는 애들은 '프로그래머, 멋있는 거 좋아하는 애들은 '경찰관, 소방관, 대통령'.

어때. 구독자의 꼬꼬마시절 장래희망도 위에 있지 않아?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즈음이 되면 내 꿈에 부모님의 의견이 개입되기 시작해.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어이없는데 나는 그때 한자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었고 부모님이 의사라는 직업을 좋다고 치켜세우시길래 갑자기 내 꿈이 한의사로 바뀌었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내 사주를 보고 온 엄마가 '너는 아나운서가 잘 어울린다더라 '라고 한 말을 듣고는 다시 아나운서로 바뀌었고.

그때는 그냥 어떻게든 부모님을 만족시켜서 이쁨 받는 게 삶의 가장 큰 목표였을 때니까. 그들의 꿈이 곧 나의 꿈이 되는 게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어.

 

어렸을 때부터 불화가 있던 가정에서 자라며 사랑과 전쟁을 즐겨보던 어린날의 예또는 점점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알아?

'남편이 나를 두고 바람을 피우면 어쩌지? 시댁에서 나를 푸대접하면 어쩌지? 내가 결혼하고 나서도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랬어. 놀랍게도 이런 생각을 나는 (남자친구도 없었던;) 중학생 때부터 했었어.

다른 친구들이 남자친구와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소녀처럼 꺅꺅댈 때도 나는 속으로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했어. 버림받아도 비참하지 않으려면 나 자체가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물론 버림받지 않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불화가 있던 가정환경이 내 기초 가치관 형성에 큰 몫을 했겠지.

 

그다음부터는 꿈에 대해 생각할 때 나를 기준으로 삼을 수가 있었어.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꾸준히 생각해 봤지.

사실 난 고등학생 때까지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어. (아니, 사실은 여전히 되고 싶어.)

그래서 부모님 몰래 학원도 알아봤었는데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남양주는 연기학원이 많지도 않거니와 학원비도 우리 집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라고.

물론 내가 정말 출중한 배우가 될 재목이었다면 여기서 알바를 하든 배짱 좋게 학원에 대출신청(?)을 하든 어떻게든 학원을 다닐 방법을 마렸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그런 수준의 열정까진 없었어.

내가 또 꽤나 현실적인 사람인지라 대충 나의 외모와 재능을 봤을 때 투자한 인풋대비 만족할만한 아웃풋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이 있었던 거지.

그쪽 업계야말로 외모와 재능을 모두 갖췄어도 운과 타이밍이 워낙 크게 작용하는 업계이니까.

 

그래서 나는 결국 중국으로 대학을 가서 경제학을 전공하게 돼.

중국어로 소통 가능한 능력과 상경계열 졸업이면 어떻게든 중간이상은 가겠다는 계산이었던 거지.

아 이 얘기하다 보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내가 이때 내 미래에 대해 얼마나 고민이 많고 염려스러웠냐면,

20살 여름 때 친구랑 같이 부산 해운대에 놀러 가서 2:2로 헌팅을 했었거든.

그때 우리가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 둘은 직장인이었으니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우리보다 최소 6-7살은 많았을 거야.

내 친구랑 친구파트너는 나이와 장거리를 극복하고 뭔가 썸의 기류가 보였는데, 그 둘이 한창 꽁냥 거릴 때 나는 내 옆에 있던 오빠한테 오지게 고민 상담했던 기억이 난다...

왜냐면 그 오빠 해외 무역 직종이었거든....

나 지금 그 사람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아무것도 안 나는데 검정 뿔테 안경 끼고 되게 친절하게 내 고민 상담해줬던 기억이 나.

중국어 가능하고 중국 명문대 상경계열 졸업이면 취업시장 깡패니까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학점관리하고 영어공부 틈틈이 하라던 그의 조언까지도 생각난다.

해운대 헌팅남을 한순간에 진로고민 멘토로 만들어 버리는 나란 여자... 

 

저런 고민을 했던 때가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어느새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지도 이제 곧 5년이 되네. 와 진짜 실감 안 난다.

중국에서 대학 다니면서 이것저것 너무 고생을 해서 그런가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니까 이상한 보상심리가 생기더라?

'내가 이렇게 열심히 개고생 해서 대학교도 무사히 졸업했는데 그럼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 좀 해봐도 되지 않나?' 하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중국어랑도 경제전공이랑도 무관한 일들을 해왔어.

속으로는 언제든 실패하면 다시 내 학위 살려서 취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런데 신기한 게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살아는지더라.

엄청 잘 살지는 못해도 말이야, 살아남는데 지장은 없더라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선언한 후로 다짐한 일이 하나가 있어.

그건 바로 적어도 부모님께 손 벌리면서까지 내 이기적인 고집만 부리지는 않겠다는 거였어.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에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했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이 힘든 때를 보냈어.

그래도 나는 부러지지않았어. 꺾였을지언정 다시 일어나서 새 살 길을 찾았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이유로 아쉬운 소리도 한 번 해 본 적 없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누군가에게 손벌리지 않고 살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내가 나는 스스로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작년에(벌써 작년이라니!) 아버지가 집을 지으셨어.

짐을 옮기다 보니 어렸을 때 받았던 상장들이랑 친구들이랑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나오는 거야.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로 그렇게 많은 상을 받았었는지 몰랐었어. 물론 잊을 수밖에 없는 오래된 기억들이긴 하지만.

멀고 먼 길을 돌아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야.

험난하고 거친 길 끝에 드디어 내가 맘껏 뛰놀고 뒹굴 수 있는 잔디밭을 마주한 느낌이야.

무대에서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에도, 헬스장에서 회원님께 예상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에도, 여행유뷰트를 하며 구독자의 정성 담긴 댓글을 받았을 때에도 난 정말 행복 했지만 지금 나는 그 직업들보다도 더 내게 잘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야.

글을 쓰는 거. 내 이야기를 하는 거.

그게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장 잘했던 거고 하고 싶었던 거였어.

 

먼 길을 돌아 결국 다시 나를 찾게 된 거야.

 

구독자는 어때?

구독자의 어렸을 때 꿈은 뭐였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어?

지금은?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하지만 오해는 하지마! 내 말을 듣고 구독자도 무모하게 옛날 꿈에 다시 도전하라는 책임감 없는 이야길 하려는 건 아니니까.

가끔은 꿈으로만 남겨놓는 게 더 아름다운 꿈도 있는 법이잖아.

하지만 구독자의 일상이 즐겁지 않다면,

오늘 눈을 감으면 다시 내일 눈을 떠야 하는 일상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그땐 다시 시작해도 돼.

구독자가 어렸을 때 타인의 개입 없이 순수한 너의 선호만으로 즐겁게 했던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 봐.

어쩌면 구독자는 그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 몰라.

 

물론 가장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과정이 다 순탄할 거라는 소리는 아니야.

이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경쟁사회이고,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될 때까지 수없이 많이 무너지고 아파하게 될 테니까.

그런데 어차피 힘들 거라면 싫어하는 일을 죽어라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죽어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인생의 방향이라는 건 결국 좋아하는 것만 보고 달려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닌,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는 곳이라고 생각해.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 왜 맞지 않는 지를 깨닫는 것도 정말 중요한 교훈이거든.

 

음...첫 편지부터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했나?

아무렴 뭐 어때! 쓰는 건 나의 자유, 읽는 것은 그대들의 자유이올시다.

참고로 첫 편지는 나와 알고 지낸 지 최장 20년, 최단 6개월의 엄선된 내 초, 중, 고, 대 동창들을 대다수로한 주변 지인들 30명에게 발송될 예정이야.

만약 내가 먼저 그대의 이메일 주소를 물어봤다면, 당신이 현시점 체성이의 가까운 사람 30명 안에 속해있다는 거니 기쁘게 여겨주면 좋겠다 :-)

 

아, 참고로 내 편지에 대한 답장은 따로 해주지 않아도 돼.

읽었다는 인증을 할 필요도 없어.

사는 게 바쁘다면 그냥 새로 사서 책장 구석에 박아놓은 책처럼 뒀다가 어느 날 시간이 여유로울 때 꺼내서 몰아서 읽어봐도 돼.

그냥 나는 항상 여기에 있을 거고 구독자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대와 내가 우연으로 만났지만 인연으로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말이야.

 

내가 첫 편지를 보내는 1월 9일은 내 생일이야.

나는 지금 비행기 표값이 애매해서 런던에 남아서 룸메들과 함께 생일을 보낼지 다합으로 넘어가서 그곳에서 생일을 보낼지 고민 중이야.

뭐 크게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이 보내기엔 또 서운하니까 괜스레 고민이 되네.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지정된 요일에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생일을 기점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서 계획이 조금 바뀌었어.

생일이 너무 연초이기도 하고 하필 방학 때여서 학생 때는 그게 너무 싫었는데 오히려 새해의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도전을 뜻깊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좋네!

오늘 하루 나는 최선을 다해 행복할 거야.

그리고 구독자도, 끝내주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길 바라 :)

 

 

 

[부록]

 

초심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최예또

 

2022년 07월 27일.

첫번째 방문.

1. 런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환상적이에요. 하늘은 맑고 푸르러요.

하나도 덥지 않고 상쾌하고요. 모기도 없다니까요! 

1. 사람들은 어때요?

친절해요. 역시 신사의 나라 답네요!

 

2022년 12월 21일.

두번째 방문.

1. 런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전히 아름답지만 낮이 너무 짧아 아쉬워요.

겨울 런던은 춥진 않지만 비가 자주 오네요.

1. 사람들은요?

그냥 제 핸드폰만 무사했으면 좋겠어요.

 

2023년 11월 21일.

세번째 방문.

1. 런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리 겨울 런던 날씨가 별로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비올 거면 비만 오든지, 바람 불거면 바람만 불든지.

왜 동시에 난리를 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죠?

1. 사람들도요?

이런 날씨에 정신 멀쩡히 살 수 있는 정상인이 있나요?

1. 오...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건가요?

...망할. 이 순간 당장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제 자신이 원망스럽네요.

빌어먹을 이 아름다운 도시를 어떻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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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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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훈이

    0
    4 months 전

    하나의 색깔로 정의하기 힘든 사람. 무엇이든 되고, 또 매번 놀래키는 사람. 신이 있다면 이 사람에겐 특별한 비밀 소스를 더 넣었을거라 분명하게 확신해볼게요 .

    ㄴ 답글
  • 윤즈니

    0
    4 months 전

    어차피 힘들거라면 싫어하는 일을 죽어라하는것보다 좋아하는일을 죽어라하는것 경쟁사회라서 좋아하는일이 잘되는일로 연결되는건 힘들지만서도 죽어라 그일에 열중해볼게! 정말정말 많은 힘이되는 글 고마워 팔색조 최예또가 내옆에서 친구해줘서 정말 행운이야💚

    ㄴ 답글
  • 서영이

    0
    4 months 전

    알게된 후로부터 누군가 나에게 “네가 본 사람중 누가 제일 멋있어?”라고 묻는다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한사람 그게 송이언니야 늘 뭘해도 잘 하고 있고 잘 될것 같다는 막연한 신뢰와 믿음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지 글을 읽는데 그 글은 나에게 또한번 최송이가 송이했다 라는 느낌을 줘 그저 멋진사람! 언니랑 처음으로 떠났던 양양의 그 한여름이 아직도 강렬해 여전히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아버지도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한층 더 풍부한 꿈과 그림을 그려왔던 언니의 이야기가 궁금한걸 곧 만날 날을 기대하며 행복을 빌게🫶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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