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초의 내레이션, 하츠투하츠 스텔라

“오늘 OOTD를 소개하자면, 감딸기에 인스퍼를 받아서 입었습니다.” 하츠투하츠의 자체 콘텐츠 ‘크런치 하츠(Crunchy Hearts)’의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멤버 지우와 스텔라의 딸기 케이크 리뷰였다. 두 사람은 딸기 콘셉트에 맞춰 레드 컬러의 앙증맞은 스타일로 옷을 입었고, 이 옷에 대해 소개하며 스텔라는 ‘인스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자막에 ‘영감’으로 바뀌어 등장했다. ‘인스퍼’는 영어로 영감을 뜻하는 ‘inspiration’을 줄인 말이었다. 팬덤 플랫폼 위버스에서 스텔라는 자신의 닉네임을 ‘stell’로 쓰고, 좋아하는 영화를 얘기하며 ‘favorite’을 ‘fav’로 줄여서 사용하기도 했다.
일상적인 영어 단어를 자연스럽게 축약해 사용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스텔라는 하츠투하츠가 나오는 거의 모든 콘텐츠에서도 한국어에 영어 단어를 섞어 사용한다. 해외에 오래 거주한 경험이 언어에 투영되는 스텔라의 모습은 K팝을 오래 좋아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특정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스텔라의 본명은 Dahyun Stella Kim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캐나다 밴쿠버에서 자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에 다녔다. 또한 스텔라는 바비(Barbie) 영화 시리즈를 매우 좋아한다. 마흔 편 가까이 되는 시리즈에서도 좋아하는 작품들이 따로 있고, 그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작품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스텔라가 마음을 준 바비 시리즈는 사실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체로 접하지 못하는 콘텐츠다. 서구권에서 자란 소녀들에게 훨씬 더 익숙한 이 인형은 스텔라가 자란 환경이 다른 하츠투하츠 멤버들의 세계와는 다른 곳이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 직관을 따라가면 많은 K팝 그룹에서 볼 수 있는, 소위 해외파 멤버의 자리에 스텔라라는 인물을 대입하게 된다.
스텔라가 ‘루드!(RUDE!)’에서 맡은 내레이션 파트는 무려 12초에 달한다. 멤버 수가 여덟 명인 그룹에서 12초는 굉장히 긴 시간이다. 다인원 그룹의 경우, 자신이 맡은 파트에 한 번 등장할 때마다 짧으면 2~3초, 길어야 6초 정도를 배정받는다. 메인보컬이 주로 맡는 브릿지 파트라도 12초를 홀로 차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텔라가 12초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아이덴티티 덕분이다. 좋은 노래 실력을 지니고 있어 브릿지 파트를 맡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내레이션 파트가 화제가 됐던 것은 마치 생명력을 얻은 바비 인형처럼 자신감에 차 유려한 영어를 뱉는 스텔라의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스텔라는 내레이션 파트를 통해 발랄한 팝의 정서를 스타일리시하게 한번 더 환기한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스텔라는 영국식 영어 발음까지 구사하며 다른 출연자와 대화를 나눈다. 이 모습은 같은 소속사 선배 그룹인 소녀시대의 티파니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스텔라의 현재 행보는 티파니가 영어 내레이션을 맡아 활기차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정체성을 확립했던 시기의 행보와 무척 닮아있다. 그저 자란 환경 하나만으로 어떤 작위적인 연출 없이 자신만의 확고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굉장한 이점이다.
핑크색과 바비를 사랑하고 아리아나 그란데,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팝스타들의 곡을 듣고 자란 소녀가 한국의 아이돌로 데뷔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극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가수가 되고 싶어 유명 K팝 학원에 다녔고, 그곳에서 수십 개 기획사의 선택을 받아 데뷔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분명 스텔라만의 특별한 서사다. 주로 해외에서 개최된 오디션을 보고 한국행을 선택하는 해외파 멤버들이 많은 가운데, 캐나다에서 그곳의 감성을 체득하며 자란 소녀가 일종의 한국식 입시 시스템을 경험하며 가수로 데뷔한 사연은 서구권의 자유분방하고 에너지 넘치는 소녀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친근감을 준다. 예쁘고, 귀엽고, 노래를 잘하는 소녀는 이미 K팝 신에 많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미권 감성을 지닌 소녀가 꿈을 좇기 위해 무려 한국의 학원 시스템을 선택해 데뷔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은 스텔라라는 캐릭터에 한층 입체성을 부여한다. 나아가 12초의 내레이션을 통해 스텔라는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팬들은 요즘 스텔라가 지닌 엉뚱함과 유머러스함을 매력적인 부분으로 언급하며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 있는 중이기까지 하다. 이는 K팝 신에서 스텔라만의 성장 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스텔라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개성 강한 멤버들로 가득한 하츠투하츠에서 스텔라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자신의 캐릭터와 서사를 확립한 쪽에 속한다. 하지만 스텔라 혼자서 이런 성취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바비를 사랑하는 소녀가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한 ‘루드!’라는 곡이 다른 멤버들의 해석과 함께 어우러지며 하츠투하츠라는 팀의 개성을 만들어냈고, 그 전체적인 과정에서 해외파 멤버에게 배정된 내레이션 파트가 퍼포먼스적으로 정확하게 기능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2초의 시간 동안 누구나 이만한 화제성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느 팀에든 스텔라처럼 특정한 목적성을 지닌 킬링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멤버는 반드시 필요하고, 스텔라는 자기 몫을 꼭 맞게 해낸다. 그게 지금 SM엔터테인먼트가 스텔라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대 정중앙에 내세운 이유다. 스텔라는 SM엔터테인먼트가 팀 구성면에서 형태적으로 유구히 지키고자 하는 유산을 이어가는 멤버이며, 2026년 식으로 조립된 소녀들의 무리에서도 여전히 오래된 공식이 통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멤버다. 지금 하츠투하츠에는 스텔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거꾸로, 하츠투하츠가 스텔라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니까. 무엇보다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유쾌한 우정이 필요하고. @your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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