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최근 하늘을 보셨나요? 공활한 가을하늘을 뭉게뭉게 채운 구름을 보며 요 며칠 기뻤습니다. 하늘의 모습이 주는 잠깐의 쉼을 잊지 않고 챙기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목포 특집] CDP를 고쳐라💽
인터뷰 하기는 틀렸지만 <뮤직타워>는 목포의 안식처예요. 인터뷰 얘기만 안하면 참으로 친절한 사장님이 계시고 무엇보다 다양한 음반들이 있으니까요. 지난주, <뮤직타워>에서 신해철 CD를 샀습니다. 목포에서 주구장창 들을 음반이 있음에 기뻤는데요. 이상하게 작동이 안 되더라고요. 다른 CD를 넣어 보아도 마찬가지였어요. <전람회 1집> 을 제외한 모든 앨범은 재생이 안 되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목포 전파사를 전전했습니다.
제법 많은 전파사를 쏘다녔는데요. 돌아온 대답은 요즘 그런 거 고치는 데 없다는 답변이었어요. 상심을 이끌고 <뮤직타워>에 들러, CDP 고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사장님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 가면 호남전업사가 있다고 하셨어요. 감사하다고 했더니 거기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호남전업사에서 오른쪽으로 150미터 쯤 가면 농협이 있다고 하셨고요. 농협 오른쪽에 상승전자라는 전파사가 있다고, 거기 가면 고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에도 나오지 않는 상승전자를 찾아 열심히 걸었습니다. 투박하게 적힌 '음향기기수리'간판을 보고 마음 어딘가 안도가 찾아 들기도 했고요. 먼저 오신 손님이 흡족한 표정으로 나가는 걸 보니, 덩달아 신뢰도도 수직상승했습니다.
뭐 고치러 왔냐는 사장님께 무속인 찾아온 고민 많은 사람마냥 하소연을 했어요. 다른 CD는 다 안 나오는데 전람회 1집 CD만 읽는다고요. 어딘가 헐거워진 게 아닐까 싶어 고치러 왔다고요. 그러자, 사장님은 가지고 계신 온갖 뽕짝메들리CD를 넣어보며, 이 뽕짝도 안 나오네, 이 메들리도 안 나오네 하고 혀를 끌끌 차시더니 하나 읽는다는 그 CD를 줘보라고 하셨습니다.
트랙이 재생되는 걸 본 사장님께서는 특정CD는 읽는 걸 보니 재생하는 방식이 다른 모양인데 이게 일제, SONY 것이라서 일어를 모르는 제가 사용설명서를 숙지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집에서 이거저거 눌러가며 연구를 하다보면 모든 CD가 재생될 거라고 하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반박하려는 찰나, 정말 거짓말처럼 트랙 1번이 재생되더라고요? 어깨에 힘 들어간 사장님께서는 그거 보라며 잘 공부하면 모든 CD가 나올 거라고 돈 낼 거 없고 가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도 안 명쾌한데 순간 명쾌하게 들린 사장님의 답변을 뒤로 상승전자와 한 걸음씩 멀어지는데 멀어질수록 이게 답이 아닌 거 같았고요. 무엇보다 일제 CDP 어딜 봐도 일어는 안 적혀 있거든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뮤직타워>로 갔습니다.
또 여러가지 CD를 넣어보시던 사장님께서는 당신의 지식에 의하면 이건 기기 내부의 CD를 읽는 렌즈가 고장 났을 때 생기는 증상이라고 하셨어요. CDP의 렌즈는 사람의 눈과 같은 거라고 말을 뗀 사장님께서는 스무개의 CD를 읽던 렌즈가 열아홉 개, 열여덟개... 하나하나 못 읽기 시작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 읽고 고장 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광주에 소니공식대리점이 있으니 거기에 맡겨보라고 하셨죠. 용산에도 소니대리점이 있던데 정말 광주에 보내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와 CDP를 바라보다가 당근마켓에 'CD플레이어'를 검색해 보았어요. 비싸긴 하지만 렌즈 교체하는 비용이 더 비쌀 거 같은데...그새 정이 들어서 귀여운 스티커가 붙은 CDP를 계속 쓰고 싶기도 하고... 싱숭생숭한 며칠이었네요. 결론적으로 기기를 고치는 것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물건들이 가득했던 전업사 탐방은 즐거웠네요. <뮤직타워> 사장님과도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고요.
목포의 일상은 크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처음엔 온갖 박물관과 유적지를 들쑤시고 다닐 거라 다짐했지만 아침잠이 많고 게으른 저는 늘 남들 점심 먹을 때쯤 일어나 휘적휘적 공유오피스에 가고요. 할당량 만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인터뷰 한 만큼의 내용만 정리하며 지냅니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벌써 1/3이나 지나 갔네요. 이제는 글을 멈추고 홍어청국장을 파는 종가집으로 인터뷰를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닭장댄스를 아시나요?
<뮤직타워>가 제게 준 깨달음은 CDP의 렌즈가 사람 눈 같다는 사실 하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CD를 구경하던 중, '닭장댄스'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어요. 닭장댄스는 대체 어떤 춤사위를 보고 붙인 이름일까 궁금해서 몇 차례 검색을 거듭했습니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더라고요.
닭장의 다른 이름, 디스코텍과 롤라장
1980년대 전세계에 디스코 열풍이 불어 닥치고 모두가 사정없이 손으로 어딘가를 찌르던 그 무렵, 좁은 공간에 모여 춤을 추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닭장 속의 닭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누군가는 디스코텍을, 누군가는 롤라장을 닭장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 닭장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단연 유로음악이었습니다.
서유럽의 한방, 유로음악
유로음악은 이름 그대로 1980년대 서유럽에서 태동한 전자음악을 부르는 말입니다. 80년대와 90년대를 아우르며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음악장르인데요. 하우스, 테크노, 이탈로 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찾아보면서 재밌었던 건, 유로댄스의 선두국이 독일이라는 점이었어요. 중공업, 전자공업 위주의 발전을 이룬 독일에서 전자악기를 이용한 음악이 태동했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핫한 클럽이 베를린에 집결해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이 역시 유로댄스와 궤를 같이하는 걸까요? 이번에 유럽에 간다면 반드시 베를린에 가겠다고 다짐하는 지점입니다.
모던토킹이라는 그룹과 이들의 전설적인 명곡 you're my heart you're my soul은 익숙한데요. 이 그룹의 국적이 독일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어요. 70년대부터 이름을 널리 알린 Boney.M 역시 독일 국적의 혼성듀오였네요. 영국과 미국만을 오가던 음악사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벅찹니다. 이쯤 되니 왜 장르 앞에 유럽이라는 수식어가 등장했는지 알 것 같아요.
국내에서 유로댄스음악의 다른 이름은 디스코텍에서 틀어주는 음악이었다는데요. 앞서 언급한 모던토킹과 더불어 닭장의 닭들은 요동치게 만들었던 유로댄스음악들을 함께 보냅니다. 공유오피스에서 글쓰는데 어깨가 들썩거려 곤란한 마음도 함께 보냅니다.
Modern Talking -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Dee d Jackson - sos
London boys - Harlem desire
JOY -Touch by touch
마음이 들썩들썩 흥으로 가득해요. 오늘 열시에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가장 흥겨운 사람은 아무래도 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은 지난 주 작성하려던 글입니다. 2주에 걸쳐 닭장댄스 이야기를 마무리 했네요.
도입부에 1/3이 흘러갔던 목포 생활은 편지의 말미, 한주 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기대로 가득했던 구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을을 보내고 계신가요. 농도가 짙어져 완연한 가을로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짧은 가을은 완연한 지점에서 계절의 끝을 예고하는 것 같아 더욱 쓸쓸한 마음이 드는데요. 피하려고 애쓰지는 않으려고요. 가끔은 철저하게 쓸쓸해지는 계절도 필요한 것 같으니까요. 근데 이제 쓸쓸하기에 유로댄스가 제 몸과 마음을 너무 지배해 버린 것도 같습니다. 이따금 흥겨우며 이따금 쓸쓸한 마음으로 가을을 맛보다가 또 다른 낭만의 조각으로 편지할게요 :)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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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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