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 하와이는 부곡하와이 아닙니꺼

별안간 하와이 가서 인디언 분장하던 그 시절

2023.09.27 | 조회 1.4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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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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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가을이에요 가을! 얼마나 기다렸던 가을인지 모릅니다. 바람 냄새도 다르게 느껴지는 가을을 느끼면서 금방 사라질 계절의 흔적이 벌써부터 아쉬워졌어요. 아쉬워하다가 문득,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찰나이기 때문일까 생각도 해보았고요. 방심하면 지나고 없는 우리의 가을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가로지르면 좋겠습니다.

지난 일요일, 한달간의 목포살이를 마친 저는 다시 광명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시간 정이 많이 들었더라고요. 가늠하지 못하고 있던 '정'의 무게로 아쉬운 주말이었습니다. 

🌴하와이 대신 부곡하와이 대신 부곡탕♨️

그런데요. 아쉬움으로 가득한 주말로 나아가는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놀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저는 매주마다 작성해야 하는 글의 양이 정해져 있었는데요. 중요한 건, 머리와 마음을 쥐어 짜내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목포 원도심의 중요한 스폿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작성해야 하는 글이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제 의욕이 100을 찍어도, 원도심의 쿨한 사인 분들이 인터뷰를 원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글을 쓰는 것 만큼이나, 아니 글쓰는 것보다 2배 이상 어려운 일이 섭외였는데요. 예상대로 섭외를 마쳤다고 생각했던 지난 목요일. 금요일까지 원고 마감할 생각이었는데 마감 하루 전 날이던 지난 목요일. 몇 번 인터뷰 시간을 바꾸던 홍어삼합집 사장님이 오늘도 인터뷰는 어렵겠다며 또 일자를 바꾸시지 뭐예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던 저는 홍어삼합 사장님께 뜨거운 안녕을 고하고 다른 콘텐츠로 글을 쓰면 된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일자는 하루 뿐이고 계획이 틀어지자 영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벼르던 목욕탕에 갔어요! 갑자기 이게 무슨 전개인가 싶겠지만요. 목포 원도심을 거닐다 보면 각종 탕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꼭 떠나기 전에 한번은 저중 한 곳에 가서 몸을 불리고 때도 밀겠다고 다짐했었답니다. 스트레스가 높은 가을하늘을 찌르는 오늘이 적기라고 생각한 저는 목욕탕에 가기 위해 새마을금고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했습니다. 

이제 두번째 관문은 이 숱한 00탕 중에서 제 맘에 쏙 드는 목욕탕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네이버 리뷰 하나 없는 상황에서 탕을 선택하는 건 결국 또 직감에 의존하는 일인데요. 온갖 탕 중 제 마음을 잡아끈 건... 바로바로바로바로 부곡탕!

정겨운 부곡탕의 모습 [출처 : 장아지] 
정겨운 부곡탕의 모습 [출처 : 장아지] 

하와이 못 가는 대신 부곡하와이 갔는데 부곡하와이도 못 가는 마음을 목포 부곡탕으로 해소하겠다는 꿩대신 닭대신 비둘기🐦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저를 꿈보다 해몽 전문가라고 불러주세요. 

입장료 7,500원을 현금으로 내고 들어간 부곡탕. 생각해보니까 저 목욕탕 안 간지 진짜 오래 됐더라고요? 사람이 아무도 없을줄 알았는데 부곡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평상에 누워있는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목욕탕마니아 처럼 보이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요.

심플하게 온탕과 냉탕 그리고 사우나만 갖춘 작은 목욕탕에서 현기증 날 때까지 온탕에 앉아있다가 이따금 튀어나오는 물줄기에 적잖게 놀랐다가 소심하게 찬물을 끼얹고 사우나에 들어가서 앉았다가... 혼자 소심하게 목욕탕을 즐기고 난 뒤, 세신을 요청했습니다. 

"사장님 때 미는 거 얼마예요?"

"전신?" 

"네"

"때만 밀면 삼만원~ 오이 붙이면 삼만 오천원~"

"🥒오이는 안 붙여도 될 거 같아요 ^^!"

"(무심하게 연장이 담긴 바구니를 챙기며) 준비하고 들어갈게요."

우리엄마가 벌개지도록 때미는 것만 겪어봤지 돈 내고 때 처음 밀어봤거든요? 엄마가 목에 때수건 갖다 대면 간지러워서 자지러지게 웃다가 등짝 맞곤 했던 과거가 떠올라서 절-대 웃지 말아야지 다짐 또 다짐했답니다. 전문가의 손길은 달랐어요. 노곤노곤 정말 좋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부드럽게만 밀어주셔서 때가 밀리긴 하는 건가 하다가 배드에 붙은 흔적들을 바라보고 괜한 걱정을 했군, 하고 민망해했답니다. 마지막엔 기대하지 않던 마사지 타임이 있었는데요. 힘을 실어서 절 으깨주신 덕분에 원고 고민은 사르르 날려보낸 부곡하와이, 아니 부곡탕의 추억이었습니다.

때를 밀며 생각했어요. 나는 하와이 대신 부곡하와이 대신 부곡탕에 왔지만, 낭만장아찌 만큼은 사라진 부곡하와이의 조각을 전하겠다고요. 서론이 무-척 길었죠? 그럼 오늘의 부곡하와이 이야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워터파크 부곡하와이

부곡하와이의 역사는 1973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창년군 부곡면에 온천수가 발견되면서 부곡온천이 생겨납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79년, 당시 큰손으로 알려진 재일교포 출신 백농 배종섭이 부곡관광호텔을 개관한 것이 부곡하와이 역사의 서막이었습니다.

부곡관광호텔 주변으로 야외 풀장, 실내 수영장, 온천탕을 비롯하여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테마파크 하와이랜드와 동물원이 생겨나면서 이 공간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갓 결혼한 부부가 신혼여행을 오는 장소로도 사랑 받았고 어린이들의 캠프 장소로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경상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던 장소였기 때문에, '나 하와이 다녀왔어! 부곡하와이!'라는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었다네요. 

그 시절 부곡하와이

부곡하와이가 생겨난 70년대 후반은 아직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국적인 무드의 부곡하와이가 더욱 인기를 끌었다고 하네요. 80년대 후반 해외여행이 본격화 되고 진짜 하와이를 갈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부곡하와이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재영아 미안 [출처 : 우리집 앨범]
재영아 미안 [출처 : 우리집 앨범]

특히 90년대~ 2000년대 유치원을 나온 친구들 치고 인디언 복장으로 찍은 사진 한 장 안 가지고 있는 사람 찾기 정말 힘들 것 같은데요. 저희 집 역시, 가족 앨범을 확인하다 보면 우스운 인디언 차림의 동생과 제 모습이 왕왕 발견된답니다.

굿바이, 부곡하와이

영원히 인기를 누릴 것 같던 부곡하와이는 2000년대를 지나면서 한 풀 꺾입니다. 늘 그렇듯 문제점은 하루 아침에 생겨나지 않죠. 부곡하와이는 79년, 첨단을 달리는 워터파크로 문을 연 뒤 업데이트의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해외도 나가고 캐리비안 베이 등 다른 워터파크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는데 부곡하와이는 언제고 70년대 후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보니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되었다고 해요. 게다가 부곡하와이가 있는 창녕군 부곡면은 자가용이 없으면 가기 어려울 정도로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곡하와이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워터파크가 여기에만 있다는 희소성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수도권의 캐리비안 베이가 생겨나고 경상도 내에서도 부산, 울산 등 접근이 쉬운 지역에 세련된 워터파크가 생겨나면서 부곡하와이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맥을 이어오던 부곡하와이의 역사는 지난 2017년 완전히 끊어지게 됩니다.

출처 : 부곡하와이 홈페이지
출처 : 부곡하와이 홈페이지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부곡하와이가 요즘 '폐허'로 근황을 알리고 있는 모습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 부곡하와이] 귀신의 집과 같았던 지옥의 길

부곡하와이 지옥의 길

부곡하와이를 찾아보던 중,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있어요. 부곡하와이엔 '지옥의 길'이라는 장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폐허가 되어 오싹하게 여겨지기 전부터 부곡하와이의 공포스러운 장소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고 하는데요. 에버랜드에서 열차를 타고 사파리를 즐기는 것처럼, 이 지옥의 길을 지나는 버스가 있었다고 하네요. 불교설화를 모티브로 온갖 지옥의 형벌들과 악마들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장소였다고 하는데요. 어린 아이들이 주로 방문하는 장소였기 때문에 이 공간을 개선해달라는 의견이 계속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장소라고 하고요. 오히려 에일리언과 같은 기괴한 콘텐츠가 계속 추가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워낙 뜬금없는 장소였기 때문에 부곡하와이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빠르게 회자되는 공간 중 한 곳이라고 하네요. 여러분의 기억 속엔 지옥의 길이 있나요?

오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우리들의 하와이, 부곡하와이를 담아보았습니다. 부곡하와이에 다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서글프지만요. 부곡탕에서 부곡하와이를 길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추억은 소중한 것 같아요. 오늘날 우리가 먹고 마시고 보는 것들은 어느 시점에 가서 어떤 추억으로 발아하게 될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오늘의 편지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번엔 또 다른 추억의 조각을 들고 여러분의 메일함을 두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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